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1977)을 내놓았을 당시, 그는 이 영화가 장대한 시리즈로 확장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내부 시사회에서 첫 편집본을 본 동료들은 영화가 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가 성공할 것이라 장담한 사람은 ‘미지와의 조우’(1977)를 작업 중이던 스티븐 스필버그와 훗날 ‘갱스 오브 뉴욕’(2001)의 시나리오를 쓰는 평론가 제이 콕스뿐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공전절후의 흥행을 기록하며 할리우드의 판도를 뒤바꾸었고,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19)에 이르기까지 40년이 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리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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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스틸. |
오래 살아남는 영화들은 얼핏 유치하고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옛날 동화 같은 이야기의 심층에는 심오한 사상이 담겨있고, 관객의 의식에 호소해 불멸의 생명력을 얻곤 한다. ‘스타워즈’는 대규모 특수효과 블록버스터의 효시이지만, 이 영화를 성공시킨 원동력은 작품이 담고 있는 정신적 가치관이었다. 루카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같은 고대 신화의 중심 모티브인 ‘영웅의 여정’이라는 단순한 이야기 틀을 답습하면서, 한 개인의 성장 드라마와 그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담았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인간의 행동에 따라 발현되거나 성취되기도, 반대로 억압되어 일그러지기도 하는 생명과 인간성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루크 스카이워커처럼 ‘가슴 속 깊이 잠재된 자신의 인간성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다스 베이더처럼 ‘제복과 헬멧으로 자신의 인간성을 부정한 채 조직의 일부가 되어 선악의 분별을 잃은 기계처럼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워즈-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완벽한 실패작이다. ‘라스트 제다이’에 쏟아진 팬덤 일각의 비난에 당황한 감독 J.J 에이브람스와 제작자 캐슬린 케네디는 전작을 부정하며 한 편에 2~3편의 플롯을 욱여넣는 무리수를 감행했고, 그 결과는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쉴 새 없이 이야기 단락을 건너뛰는 난삽한 편집과 납득하기 어려운 구멍투성이의 서사로 돌아왔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전작들이 블록버스터의 역할을 충족시키는 가운데 지속해왔던 신화적, 철학적 심도를 단 한 순간도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시리즈의 중심을 이루는 ‘포스’의 개념을 철저히 파괴해버렸다. 인간의 선택에 따라 선한 힘으로 발현되기도, 폭력과 파괴의 힘으로 일그러지기도 하는 포스에 관한 윤리적 성찰은 사라진 대신 일차원적 수준으로 펼쳐지는 초능력의 과시만이 스크린에 명멸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종장은 깊은 여운을 안겨주었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리즈 본연의 메시지를 망실한 채, 오로지 관객의 시선을 현혹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141분짜리 불꽃놀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