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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에 날 깨운 건, 목탁 아닌 마음의 소리

순천 선암사 템플스테이

  • 국제신문
  •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  |  입력 : 2020-01-29 18:50:01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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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하차 후 1㎞ 남짓 도보
- 대웅전 근접한 숙소에 짐 풀어
- 이른 저녁 식사 후 예불 참가

- 한 시간가량 즉문즉설
- 참가자, 주변 사람 밉다 하소연
- 스님 “본인이 미운 존재일 수도”

- 유일하게 새벽 예불 참가
- 아침엔 편백 숲 트레킹하며
- 아늑하고 평화로움 만끽

- “산에 오르는 건 하산 위한 것
-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봐야”

한국 불교문화를 오롯이 보여주는 템플스테이를 초창기에는 외국인이 많이 찾았다. 최근에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 휴식을 위해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추세다. 산사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인생의 해답이라도 있는 걸까. 나를 돌아본다는 마음을 품고 전남 순천 선암사로 향했다. 한국불교 태고종 유일의 태고총림인 선암사는 산사 자체가 하나의 한옥마을 같은 느낌을 내뿜는 천년 고찰이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한국 불교문화를 느낄 수 있다. 순천 선암사에서 스님들의 식사를 뜻하는 ‘발우공양’을 체험하는 참가자들. 선암사 제공
■단출한 숙소, 소박한 식사

선암사는 순천역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에 내려서도 1㎞ 남짓 더 올라가야 한다. 불균형하게 깔린 자갈과 진흙이 보도블록에 익숙한 발바닥을 자극한다. 선암사의 유명한 무지개다리인 승선교(신선이 되는 다리·보물 400호)가 보이면 거의 다 온 것이다.

   
고즈넉한 선암사(사진 위). 머무는 동안 시간마저 평화롭다. 김미주 기자·선암사 제공
일반 템플스테이 숙소는 대웅전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지만 선암사에서는 대웅전과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다. 아늑한 방에 세간이라고는 작은 테이블 하나와 옷걸이 침구 선반이 전부다. 거울과 시계도 없다. 간단한 규칙과 안내를 받은 후 절에서 입는 조끼와 바지, 고무신을 받는다. 몇 가지 일정을 제외하고 예불, 식사 등에 참여하는 것은 순전히 참가자의 의지에 달렸다.

이곳에서 저녁 식사는 오후 4시40분부터 시작된다. 직접 먹을 만큼 덜어 먹고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연근조림과 나물 같은 익숙한 반찬 사이로 완자(동그랑땡)를 닮은 전이 보였다. ‘고기반찬이 나올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5개나 덜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입 베어 물었다. 고기가 아니라 당근으로 만든 완자였다. 기분 좋은 ‘배신감’에 실소가 터졌다.

식사가 끝나면 대웅전에서 저녁 예불이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예불문을 외는 스님들을 곁눈질로 보며 타이밍을 맞춰 절을 따라 해야 한다. 가끔 타이밍을 놓친 참가자들이 엉거주춤하며 뒤뚱거렸지만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 소망이 예불문 사이로 간절히 스며드는 경건한 시간이다.

한 시간가량 참가자와 스님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있다. 한 참가자는 주변 사람들이 점점 미워진다고 하소연했다. 스님은 “본인 또한 그들에게 미운 존재일 수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참가자에게는 “그 잔소리의 원인을 먼저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뜻이다. 방으로 돌아와 허전한 벽을 마주 보고 그 말의 의미를 되새겼다. TV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밤이 어색했다. 침묵의 방을 두드리는 건 이따금 산을 지나가는 바람뿐이다. 사색과 평온의 경계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자신 낮추고 아래로 내려가는 길

새벽 3시께. 고요한 산사에 목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신호다. ‘속세’에서는 뒤척이다가 잠들기 시작하기도 하는 시간이 이곳에서는 아침을 여는 시간이다. 참여는 자율이라는 사실과 잠의 유혹 사이에서 잠시 방황했다. 초심을 되살려 온몸에 덕지덕지 묻은 잠을 털어내고 새벽 공기를 가로질렀다. 그날 머물던 템플스테이 참가자 중 새벽 예불에 참여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 덕분에 대웅전에 들어서기 전 한 스님에게 ‘엄지 척’을 받았다. 앞서 템플스테이 관계자가 “규율을 최소한이라도 지키려고 긴장하는 것 또한 명상”이라고 일러준 만큼 최대한 일정에 참여하도록 신경 쓰는 게 좋다.

미세먼지 한 점 없는 청명한 아침, 편백 숲 트레킹이 시작됐다. 하늘을 향해 뻗은 울창한 편백이 바람에 흔들리며 파도 소리를 냈다. 오솔길을 앞장서던 스님이 새소리를 흉내 내면 어디선가 새가 ‘짹짹’하고 응답했다. 그 순간이 너무나 아늑하고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워서 마치 일행 모두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머물던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산림욕을 하니 심신이 정화된 듯한 기분이 한층 강해졌다.

이제 짐을 정리하고 산 아래로 내려갈 시간이다. 스님은 우리가 산에 올라온 이유는 다시 내려가기 위함이라고 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보라고 조언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는 어쩌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어렴풋이 헤아려본다. 길을 내려오다가 뒤돌아 선암사를 바라봤다. 고요한 산사는 어제도 오늘도 변함이 없다.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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