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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엽문’으로 본 홍콩 무술영화의 정치성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5-06 19:32:17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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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더 파이널’(2019)은 홍콩 무술영화의 익숙한 요소들을 고스란히 이어받는다. 무술가인 주인공의 발걸음이 외국을 향한다는 건 ‘황비홍-서역웅사’(1997)를 끌어오고, 육체적으로 우월한 서구인의 힘을 동양의 기술로 제압한다는 콘셉트는 현대 복싱에 중국 남파권법 전통으로 대항하는 전작 ‘엽문 2’(2010)를 반복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압제를 가해오는 적이 영국이 아닌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인종차별주의자인 미 해병대 중사에 맞서, 엽문은 생애 마지막 대결에 돌입하고 당연히 승리한다. 장르의 식상한 공식은 충실히 답습되고, 중화민족의 자부심은 다시 한 번 지켜진다.
   
‘엽문-더 파이널’ 스틸.
이 영화에서 건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은 이소룡이 1967년 롱비치 가라데 선수권 대회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원인치 펀치를 시연했던 모습과 스승 엽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것 두 가지뿐이다. ‘엽문’(2008)부터 이 시리즈는 철저히 허구 위에 서 있었다. 실존 인물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이긴 했으나 항일 영웅은 아니었고, 국민당 치하에서의 경찰 경력 때문에 공산당을 피해 홍콩으로 몸을 피한 일개 소시민이었다. 서극이 ‘황비홍’(1991)을 통해 광동 지역에서 의원을 경영했던 실존인물을 우국충정의 영웅으로 각색한 것처럼, 엽문 또한 현대에 들어서 무용담의 소재로 동원돼 윤색되고 미화된 셈이다.

‘브레히트의 교훈적인 희곡에서보다는 보들레르와 랭보의 시 속에 더 강력한 정치적 잠재성이 있다’(허버트 마르쿠제 ‘미학의 차원’)는 한 줄의 통찰처럼, 시대의 정치적 상황은 작가주의 영화보다는 역설적으로 상업 장르영화를 통해 더욱 솔직한 형태로 투영되기 마련이다. 과거 무협 영화의 중흥기를 열었던 장철과 호금전의 무협영화들은 중국 역사와 문화적 전통 이면에 영화가 만들어진 당대의 시대상과 대중의 정치적 무의식을 담보하고 있었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나 ‘심야의 결투’(1968) 등에서 장철의 젊은 협객들은 피를 뒤집어쓰고 온 몸이 난자당하며 죽어간다. 이 육체적 처절함에는 영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홍콩 내 반영국 투쟁, 실패한 혁명의 비극성이 깃들어 있다. 호금전의 ‘용문객잔’(1967)에서 추방당한 충신의 가족들은 협객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남쪽을 향하는데, 여기에는 본토에서 추방당해 홍콩과 대만을 새로운 중화로 삼아야 했던 유민의 상실감이 배어있다.

   
반면 왕가위의 ‘일대종사’(2013)까지 포함해 엽문을 다룬 일련의 영화들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일대종사’의 홍콩 상영본(이 판본은 세부적인 편집과 결말이 완전히 다르다)은 홍콩에 정착한 엽문과 본토에서의 추억을 곱씹는 궁이의 내밀한 관계를 통해 장래에 있을 본토에의 합병을 암시한다. (이 태도는 홍콩반환의 시간을 회피하고자 한 ‘중경삼림’(1994)이나 ‘해피투게더’(1997)와는 상반된다.) ‘엽문’ 시리즈에서 엽문은 일본과 서구를 제압하며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정작 그가 본토의 공산화를 피해 도망한 난민이었다는 사실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완전히 탈각된다. 액션의 쾌감과는 별개로 ‘엽문 4’는 ‘하나의 중국’이란 미명 하에, 애국과 민족을 강제당하는 오늘날 홍콩 영화의 암담한 정치 현실을 증명하고 만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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