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시절은 없었어.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라 믿었어.”
영화 ‘휴고’(2011)에는 초창기 영화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조르주 멜리에스의 실화가 등장한다. ‘달세계 여행’(1902)으로 SF 영화의 물꼬를 트고, 오늘날 영화적 기법의 기초를 만들어낸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정작 그의 만년은 불우했다. 파산한 그는 소유한 극장과 필름들을 헐값에 넘겨야 했고, 장난감을 파는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근근이 먹고 살았다. 공장에 넘겨진 필름들은 녹여져 신발 굽을 만드는 데 쓰였다고 한다. 1차 세계 대전의 가공할 현실을 목격한 사람들은 영화에 관심을 잃었고, 이것이 멜리에스가 몰락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스콜세지는 말한다.
| |  |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렸지만 한산했던 지난달 전북 전주시 고사동 영화의 거리 모습. 연합뉴스 |
1895년 탄생 이래 영화 산업은 여러 차례 위기를 맞곤 했다. 1920년대에는 라디오와 경쟁해야 했고, 1950년대 들어서는 텔레비전 방송에 관객을 빼앗기며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그때마다 영화는 기술 혁신을 통해 활로를 개척해나갔다. ‘재즈 싱어’(1927)로 유성영화가 도입되면서 대사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안방극장’에선 체험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시각적 체험으로 차별화를 꾀하고자 한 노력은 컬러 필름과 초창기 3D, ‘벤허’(1959)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의 웅장함을 가능케 한 시네마스코프의 개발로 이어졌다. 영화는 엄연히 극장에 기반한 예술 양식이었고, 많은 시네아스트들은 이를 염두에 두고 영화예술을 발전시켜왔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으로 영화 산업은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작의 개봉 일정이 지연되거나 넷플릭스 공개로 전환되는 중이고, 칸이나 로테르담 등 국제영화제들은 개최를 취소했다. 더불어 한동안 지속했던 영화의전당 운영 중단,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온라인 영화제 선언은 영화 산업과 예술의 근간이었던 극장이 흔들리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는 한동안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공생 관계였다. 그러나 극장을 찾는 인적이 뜸해지고, 극장에 걸릴 작품마저 디지털 ‘안방극장’으로 쏠리는 지금의 트렌드는 극장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관람하는 일도 얼마 남지 않은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작금의 팬데믹 사태로 말미암아 영화는 텔레비전이나 모니터로 보는 흔한 콘텐츠의 ‘일종’으로 인식되고, 스크린이었기에 가능했던 고유의 미학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극장이 지금까지 영화와 한 몸으로 살아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죽음을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평론가로 관객과의 만남 행사를 준비하면서 모니터로 스크리너 영상을 먼저 보지만, 그럼에도 상영관에서 스크린으로 접하는 영화는 전혀 다른 감각과 감회로 다가온다. 물론 이것은 잠정적인 사망 선고를 받은 극장을 위한 향수 어린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극장은 환경이 바뀐 탓에 병을 앓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 뿐 언젠가 돌아올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그것이 주는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큰 스크린이 관객에게 주는 매혹의 힘을 위해 싸우고 싶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말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