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각으로 보여줘야 하는 만큼, 대사가 아닌 장면의 연출을 통해 느낌과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점을 짚어보고 읽어내는 관객이 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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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스틸 컷. |
수년 전 아무개 감독과 만나 이야기하던 중 들은 말이다. 관객과 시장이 더는 창조적인 비전을 수용하지 않고, 틀에 박힌 진부함, 빈곤한 만듦새의 상업영화가 흥행 성적을 자랑하는 한국영화 전반의 분위기에 대해서 그는 깊은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국영화의 암담한 풍경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영화적 인프라는 외견만 보면 풍부해졌다. 국제영화제들이 우후죽순 자리 잡아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접하기 쉬워졌고, 전국의 어지간한 대학에는 영화과가 있어 문화원을 찾거나 해외 유학을 가야 했던 시절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비디오나 DVD, Blu-ray 같은 물리 매체는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다운로드, 스트리밍 서비스로 대체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홈 비디오를 사용할 것이다. 모두가 영화를 만들 것이다”라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예언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단편을 찍는 현실로 돌아왔다. 이처럼 환경이 개선됐다면 영화에 대한 대중 전반의 식견과 안목도 높아졌음 직하다.
그러나 ‘기생충’(2019)의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석권이라는 영광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의 질적 저하, 관객 문화의 퇴행은 여전하다.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고, ‘영화다운’ 영화를 만나는 경험이 줄어든다면 창조성과 다양성을 잃은 산업은 종국엔 붕괴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영화를 모르는 자본이 창작자의 목에 족쇄를 채우고, 한국영화에 기대할 것 없는 상황에 익숙해진 관객은 좋은 영화를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상영관을 독식한 기획영화를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인터넷상에선 찬반과 호오의 언설이 넘칠 뿐, 영화를 분석하는 내실 있고 논리적인 의견은 찾기 어려워졌다.
문맹을 면하는 최소한의 해독에 그치지 않고, 텍스트가 지닌 심층적인 의미와 표현의 결을 읽어내는 소양을 ‘리터러시’(Literacy)라 부른다. 문학, 미술, 음악 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문화적 리터러시는 근대 이전에는 특정한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대중문화가 출현하면서 리터러시의 용례 또한 확장되었고,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근본적인 과제는 영화를 섬세하게 다루고 읽어내려는 리터러시의 부재인지 모른다. 전통적인 예술 장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에도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리터러시는 엄연한 교육과 훈련의 산물이다. 따라서 문화적 운동의 차원에서 ‘시네마 리터러시’(Cinema-literacy)라는 개념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영화를 일차원적 오락이 아닌, 엄연한 예술 장르이자 문화적 소양으로 다룸으로써 안목 있는 관객과 영화인을 육성하려는 교육적, 문화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이상론처럼 들리겠지만 언젠가 이것이 수렁에 빠진 한국영화를 다시 끌어올릴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하고 작은 낙관을 전망해보는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