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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흙·불·물·바람, 옹기에 숨을 불어넣다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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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장 저장용기 등으로 사용하는 ‘옹기’
- 전국 생산량 절반 이상 이곳서 빚어져
- 고즈넉한 마을 쉬엄쉬엄 걷기 좋아
- 옹기박물관선 지역별 도기류 구경도

- 아카데미관서 7000원 내면 제작 가능
- 단순한 모양일수록 성공 확률 높아
- 흙가래 빚고 다듬다보면 잡념 사라져
- 건조 뒤 가마서 구워 나만의 옹기 완성

‘귀족의 청자 백자/유혹을 물리치고/구중궁궐 안방마님/호사도 마다하고/장독대 느긋이 앉아/정을 품고 살았네(후략)’. ‘흙의 노래, 옹기의 노래’ 중 김강호 ‘옹기’.

흙색에 가까운 투박한 옹기는 선사 시대부터 사용된 한국의 생활 용기다. 영롱하고 화려한 백자나 청자와 달리 다양한 용도로 서민의 실생활에서 가까이 쓰였다. 김치 된장 등 발효음식을 담는 저장 용기도 되고 화분으로도 쓴다. 옹기의 주재료는 찰흙이고, 구울 때는 낙엽 등이 썩어서 생긴 부엽토와 재를 섞은 잿물(천연 유약)을 입힌다. 흙은 섬세한 장인의 손길을 거쳐 불 바람 물을 만나 옹기로 태어난다. 잘만 쓰면 백 년 이상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사용하다가 깨진 옹기는 흙으로 부식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울산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이 같은 옹기를 만들고 옹기 문화의 전통을 잇는 사람들이 산다.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옹기의 전통을 잇는 사람들이 산다. 마을 곳곳에 늘어선 옹기들의 정감 있는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근처에는 옹기박물관과 울주민속박물관 등이 모여 있다.
■옹기종기 정감 있는 풍경

옹기마을은 1957년 경북 영덕군 오천리에서 옹기업을 하던 허덕만 씨가 이주해 옹기점을 설립한 데서 시작됐다. 전국 각지에서 여러 옹기장이 모여들며 한때 국내 최고의 옹기마을로 명성을 떨쳤다. 지금도 전국 옹기 중 절반 이상은 이곳에서 생산한다.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4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옹기장인 7명이 이곳에서 전통을 빚는다.

옹기마을은 어딜 가나 정감이 넘친다. 가로등 전구는 옹기 모양으로 덮여 있고 담벼락에 삐죽삐죽 벽돌처럼 옹기가 튀어나와 있다. 눈과 입 모양이 뚫린 익살스러운 표정의 옹기도 있다. 옹기마을에는 옹기박물관과 옹기아카데미관, 울주민속박물관 등이 모여 있어 쉬엄쉬엄 고즈넉한 마을을 걷기에 좋다.

옹기박물관에는 세계 최대의 옹기가 있다. 높이 223㎝, 최대 둘레 517.6㎝, 무게 172㎏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독이다. 건조와 소성 과정을 거쳐 다섯 차례 실패를 거듭한 뒤 여섯 번 만에 완성돼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웅장한 크기로 옹기박물관 입구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밖에 지역별로 다른 옹기 등 1000여 점의 도기류를 전시해뒀다.

옹기를 빚는 모습을 형상화한 포토존.
옹기아카데미관은 옹기의 맥을 잇기 위해 인력을 양성하고 제작 기술을 교육·연구하는 곳이다. 직접 흙을 만지며 옹기를 만들어볼 수 있다. 아카데미관 뒤에 있는 아카데미공방에는 옹기를 굽는 가마가 줄지어 설치됐다. 좁고 기다란 기와집과 비슷한데 언덕의 경사를 따라 지어진 게 독특하다. 아카데미관 강사가 “가마에서 불을 피우면 연기가 자연스럽게 언덕 위로 빠져나가도록 설계된 구조”라고 설명했다.

울주민속박물관에서는 울주군의 역사와 세시풍속 자료 등을 전시한다. 마을의 쉼터인 옹기마을공원지구에는 산책로를 따라 옹기가 늘어섰다. 매년 이곳에서 열리던 옹기축제는 지난달 개최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탓에 오는 10월로 연기됐다.

길가에 늘어선 옹기.
■나만의 옹기 만들기

옹기아카데미관에서 1인당 7000원의 체험료를 내면 직접 옹기를 만들 수 있다. 10㎝ 정도 두께의 원반 모양 옹기토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간이 물레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옹기토는 따로 물을 섞을 필요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어 어린아이도 다룰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단순한 모양일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 서툰 솜씨로 손잡이나 장식 등을 만들면 굽는 과정에서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크게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 중에서 자신이 만들 옹기 종류를 선택한다. 접시와 그릇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애매한 크기의 국그릇을 만들어 밥그릇과 혼용하면 일석이조라는 판단을 내리고 내심 흐뭇해졌다.

옹기아카데미관은 옹기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촉촉한 옹기토를 손에 쥐니 찰흙 놀이가 떠올랐다. 강사는 “옹기를 구우면 크기가 20% 정도 줄어들어 생각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릇의 경우 준비된 옹기토의 4분의 1을, 접시는 절반가량을 떼어내 각각 바닥을 만든다.

옹기토를 쥐고 주먹으로 두드렸다. 불필요한 공기를 빼고 탄탄하게 다지는 과정이다. 찰진 옹기토를 물레에 올리고 평평하게 펴 바닥 부분을 만들었다. 이때 두께가 너무 얇거나 두꺼워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옹기마을을 지키듯 위엄 있는 ‘옹기 장승’.
그다음에는 흙가래를 쌓아 올려 옹기의 몸체를 만든다. 흙가래는 검지손가락 두께 정도로 가래떡처럼 기다랗게 만들어 바닥 부분 위에 한 층씩 이어 붙인다. 가래떡처럼 굴려도 중간 부분은 너무 얇고 끝부분은 두꺼워 일정한 두께로 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 강사가 “손에 힘을 빼라”고 조언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머릿속에 잡념이 가득한 탓이라고 생각한 뒤 마음을 비워본다.

흙가래를 올리면 손끝으로 옹기토를 비벼 바닥과 흙가래 사이를 채우고 울퉁불퉁한 곳은 매끄럽게 다듬어야 한다. 물레를 돌리며 다듬다 보니 잡념이 사라졌다. ‘슥슥’ 흙을 다듬는 소리가 ASMR(청각 시각 촉각 등으로 뇌를 자극해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것)처럼 들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릇은 5번, 접시는 2번 정도 흙가래를 쌓아 올린다.

옹기박물관에서 옹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강사의 도움으로 마무리 작업을 끝내면 그럴듯한 나만의 옹기가 완성된다. 이제 문양이나 글자를 새길 수 있다. 이니셜이나 격언을 쓰고 싶었지만 실패했을 경우 갓 완성된 나의 ‘피조물’에 흉터가 남을 수 있다. 비교적 실패 확률이 적은 문양 찍기를 택했다. 참가자들의 작품은 모아 일정 기간 건조를 거쳐 가마에서 구워진 완성된 옹기를 만나려면 한 달 정도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체험 시간 오전 10시, 오후 1시30분, 3시.

글·사진=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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