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2020)의 도입부는 다급하다. ‘부산행’(2016)이 있은 지 4년 뒤에나 도착한 이 속편은 영화 속 좀비 재난이 벌어진 이후의 시간을 압축하는 데 여념이 없다. 최후의 보루인 부산까지 무너지면서 휴전선 이남은 무인지경이 되었고, 감염을 피해 살아남은 이들은 난민이 되어 홍콩 등지에서 박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화술을 구사하는 이 프롤로그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세계관 설정의 변화를 단번에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이처럼 수다스럽고 번잡한 서두에선 일종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공교롭게도 ‘반도’는 ‘인랑’(2018)이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
| 영화 ‘반도’ 스틸 컷. |
‘부산행’이 호응을 얻고 성공했던 건 ‘제한된 공간에서의 탈출’이라는 장르적 구성을 취하는 동시에, 좀비 발생이란 재난 상황을 가정하고 명암이 엇갈리는 인간군상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사는 관객의 정서적 리얼리티와 조응했기 때문이었다. 그 영화는 ‘각자도생‘이 화두로 떠올랐던 박근혜 시대에 대한 영화적 반영이자 충무로의 우회적인 대답이었다. 반면 ‘반도’가 그리는 한국의 풍경에는 현실을 반영하거나 풍자하는 면면이 드러나지 않는다. 통일 이후를 가정한 ‘인랑’의 영화 속 시간이 관객의 현재와 동떨어지면서 설득력을 잃었던 것처럼, ‘반도’에서는 붙잡고 몰입할 현재에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객차의 유리문 너머, 좀비의 시야를 막는 도구를 신문지로 설정하면서 언론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다는 모종의 정치적 은유를 조형해냈던 연상호의 작가주의는 ‘반도’에선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발화의 여지를 말끔히 치워낸 디스토피아 공간을 대신 채우는 건, 한국형 상업영화의 진부한 도식이다. ‘해운대’(2009)에서부터 익히 질리도록 봤음직한 가족 신파극과 할리우드 영화를 무성의하게 복제한 아류 스펙터클의 전시. 이 영화 최대의 어트랙션(attraction·끌림)이라 할만한 카체이싱 시퀀스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2015)의 열화된 모방이며, 이 지점에서도 연상호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먼저 연출상의 실수. 액션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피사체의 움직임이 명료하게 파악되어야 하는데, 어두운 배경은 액션의 쾌감을 깎아 먹는 악수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장 큰 실책은 핍진성이 결여된 어트랙션은 끝내 장르적 쾌감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부산행’의 모든 액션은 극 중 인물이 처한 상황의 인과와 당위성에 적확하게 맞물리면서 강렬한 실재감과 몰입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반도’는 역으로 액션을 위해 극의 개연성을 스스로 파괴한다. 좀비들이 어두운 밤엔 시야가 막히는 대신 청각이 예민해진다는 초반의 설정은 아무런 조심성 없이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심야의 추격전에서 산산조각 나고 만다.
사실 ‘반도’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는 축약하고 넘어간 4년의 시간 속에 있었을 것이다. 좀비가 창궐하는 가운데 피난처이자 임시수도인 부산은 어떤 세계가 되었을지, 그 안엔 어떠한 사회적 갈등과 계층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을지를 치밀한 세계관 설정을 통해 묘사함으로써 좀비물이 지니기 마련일 정치적 해석의 미덕을 이어갈 의무가 이 속편에 지워져 있었다. ‘시체들의 새벽’(1978) 또는 ‘랜드 오브 데드’(2005)가 될 수 있었던 ‘반도’는 그 모든 기대와 잠재성을 저버리고 말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