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여름날’ 관조와 침묵의 리얼리즘

  • 조휘재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0-09-16 19:38:16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여름날’(2019)에서 오정석 감독의 카메라는 시종일관 인물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와이드 숏을 즐겨 사용하면서 관객을 먼발치에서 내다보듯 관조하는 사람의 위치에 자리매김한다. 장면의 호흡도 길다. 롱테이크의 긴 호흡으로 일관하면서 영화는 인물의 동선과 생활 속 행동의 결들을 켜켜이 쌓아나간다. 이야기 또한 극적인 구성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영화 ‘여름날’의 한 장면.
영화는 서울에서 생활하다 고향 거제도로 내려온 승희(김유라)가 바캉스철 손님으로 붐비는 해안에서 옛 친구를 만나고 할머니를 보살피는가 하면, 낚시를 하던 도중 한 청년(김록경)을 만나 조금씩 관계를 맺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쭉 훑을 뿐이다. 어떠한 반전도, 감정의 끓어오름도 없이 영화는 물처럼 고요히 흘러간다. 실제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인물에게 좀처럼 클로즈업으로 다가서려 하지 않는, 카메라를 최대한 당겨봐야 바스트 숏 정도에서 그치는 카메라의 태도는 신중함의 산물이다. ‘여름날’의 거리두기는 보는 이에게 두 가지 효과를 자아낸다. 먼저 얼굴을 부각시키지 않음으로써 인물을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익명의 존재처럼 여기게 한다. 인물의 정면보다는 뒷모습이나 옆얼굴을 더 많이 잡고, 때때로 침윤하는 공간의 어둠 속에 묻어버리기도 주저하지 않는 것 또한 인물을 익명화하는 것이 작품의 의도임을 드러내 준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관객은 승희를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비슷한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우리 시대, 우리 세대의 어느 누군가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른 효과는 인물 자체보다 그를 둘러싼 풍경과 공간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통념적으로 영화의 감정은 연기하는 배우의 표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여름날’은 다르게 사유한다. 감독은 인물조차도 풍경을 구성하는 세상의 한 일부이며, 배우의 몸짓과 대화는 풍경과 맞물리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드라마와 감정을 빚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상에서 승희가 겪는 외로움과 절망감, 슬픔의 감정은 침묵과 적막 속에서도 장면의 구성과 유장한 리듬을 통해 관객에게 유추되고 전달된다. 이미지와 대사의 낭비, 감정 표현의 과잉을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연출의 미니멀리즘은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늘어놓으려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영화의 매 장면들을 곱씹게 한다.

승희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풍경들은 관객에게 현실의 많은 단면들을 환기시키고 상념에 빠지게 한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갔든, 고향인 지방에 남았든 미래의 전망은 없는 청년 세대의 막막함, 불안정한 주거 환경과 기반 산업을 잃고 점차 무너져가는 지방과 노동의 현실, 거제 둔덕기 섬을 거닐 때 인물 간의 대화에서 드러나듯 지방을 버려진 ‘유배지’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공간학적 인식 등이 어느 것 하나 특정해 지적해주는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도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통해서 제시된다. ‘여름날’은 풍경의 영화다.

영화는 어떤 주제에 국한되지도, 정치적인 주장을 내세우지도 않지만,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현실의 복잡다단한 면면들을 온전히 담아내는 작가적 역설을 실천해낸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고 정직한 리얼리즘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4. 4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5. 5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8. 8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9. 9[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10. 10[사설]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5. 5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6. 6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10. 10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무상교체 방침
  1. 1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2. 2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3. 3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4. 4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5. 5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6. 6[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한 손 뉴스] 변호사 업무 재개한 홍준표, 대선 경선 관계자 변호 맡아(종합)
  10. 10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3. 3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