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그 시절 녹여낸 홍콩 감성, ‘왕가위’식 스타일 전환점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0-12-30 19:23:17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화양연화(2000)’는 사랑 이야기의 외양을 쓴 시간에 관한 영화, 더 나아가 그리움에 대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두 남녀는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다가 뜻하지 않은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헤어진다. 자칫하면 삼류 치정극으로 전락할 위험이 다분한 이야기를 왕가위는 스타일을 통해 극복해낸다. 드라마의 통속적인 군더더기를 들어낸 영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 축적되는 감정의 농밀함을 절제된 대사와 행동의 디테일, 유장한 호흡과 관조의 거리를 갖는 촬영, 탐미적이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장센에 담아냈다.

   
영화 ‘화양연화’ 스틸컷.
다시 보면서 놀란 건 영화의 공간학적 지형도가 줄곧 폐쇄적인 실내공간 일변도라는 점이었다. 극 중 인물들의 동선은 사무실과 집을 오가고 좁은 복도와 골목, 계단을 오간다. 심지어 두 남녀가 자주 마주치는 실외공간인 건물 바 깥이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Nightstalker’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거리조차 낮이 아닌 밤의 공간으로 폐쇄적 실내공간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실내에서 실내로, 점에서 다른 점으로 향하는 공간의 영겁회귀. 반복되는 일상의 동선 속에서 스치고 교차하길 거듭하며 감정과 인연은 켜켜이 쌓여 나간다. ‘화양연화’의 세계는 마치 미로와 같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어디로 나가는지 출구나 입구조차 알 수 없으며 밖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을 각자의 배우자들은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영화 속 공간은 두서없는 꿈과 같은 몽환적인 인상을 준다. 다시 말해 그곳은 기억의 공간, 영화를 통해서 재창조된 추억의 장소이다. 1960년대의 홍콩.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만 겨우 숨 쉬고 살아있을 수 있는 사라진 세계. 시간을 애무하듯 유려하게 미끄러지는 수평의 달리숏과 슬로우 모션을 통해 왕가위는 “멈추어라. 너는 너무나 아름답도다”는 파우스트의 외침처럼 안타까운 사랑의 순간을 가능한 한 길게 늘이고 붙잡아두려 애쓴다.

원래 이 영화는 미완의 프로젝트 ‘북경지하’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해피투게더(1997)’를 작업하던 도중 일부 장면을 미리 촬영하고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영화는 중국정부의 검열로 인해 무산되었고, 본래 구상되었던 작가와 요리사, 식료품 가게 주인의 이야기 중 작가의 이야기만이 떨어져나와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홍콩의 본토 반환이 있었다. ‘열혈남아(1987)’와 ‘중경삼림(1994)’ 그리고 ‘타락천사(1995)’에서 프레임의 일부 구간을 건너뛰는 스텝 프린팅 기법과 핸드헬드 카메라로 이미지의 윤곽을 뭉개고 형해(形骸)화하던 왕가위의 영화적 스타일은 ‘화양연화’를 기점으로 큰 전환점을 맞았다.

   
‘타락천사’까지의 왕가위 영화가 견딜 수 없는 현재의 시간, 홍콩 반환 직전의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면, ‘해피투게더’와 ‘2046(2004)’은 홍콩이란 지리적 토포스를 떠나서도 삶과 역사적 전망은 가능한가를 묻고자 하는 미증유의 탐색이었다. 그리고 ‘화양연화’와 ‘일대종사(2013)’는 각각 홍콩의 한 시절과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왕가위는 항상 멜로드라마를 만들어왔지만 사실은 그 껍데기의 이면에서 홍콩의 역사적 전망을 은유하는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영화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3. 3'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4. 4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5. 5[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6. 6'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7. 7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8. 8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9. 9“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10. 10[속보] 트럼프 “UFC 회장에 백악관 대변인 제안, 광기 어린 좌파로부터 우리 지켜야”
  1. 1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2. 2오세훈, 증시 폭락 직격... “국민연금으로 지방 선거용 주식도박"
  3. 3[속보]이용철 법무장관 후보, 청문 준비 돌입…12일 준비단 첫 출근
  4. 4장동혁 “중도확장, 말로하는 연대·통합으로 되는 것 아냐”
  5. 5서영교 “조작기소 특검법안 ‘대통령 이해충돌’ 논란은 헛소리”
  6. 6임광현 “소방재원 확보 위해 미래대응기금 활용, 국회와 긴밀 협의”
  7. 7[속보]당정 “소방 필수투자에 2조원 재정지원…지방부담 완화 검토”
  8. 8민주 “정부에 ‘실거주 구분 없이 종부세 공제 14억’ 강력 요구”
  9. 9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10. 10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3. 3'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4. 4“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5. 5녹색전환 핵심 ‘전기화’, 기업10곳 중 3곳만…“인센티브 필요”
  6. 6올해 3분기 상용직 증가분 75%는 60세 이상…20·30대는 감소
  7. 7식품·외식 분야에서 ‘웰니스 소비’ 앞으로도 지속된다
  8. 8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9일 개막…"K-GX 전략 소개"
  9. 9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10. 10[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1. 1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2. 2[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3. 3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4. 4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5. 5정풍송 노래비 건립 재추진 움직임에 밀양시의회 “반대”
  6. 6부산서 부탄가스 난로 폭발 사고... 2명 화상
  7. 7진보당 "기본소득 8개 군 배제는 직권남용, 도지사 고발"…도 "하자 없어"
  8. 8[속보] 검찰총장 인선 절차 연기... 후보 추천위 이달 중 개최 예정
  9. 9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10. 10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1. 1‘승률 98.6%’ 배드민턴 안세영,사상 첫 2시즌 연속 11승
  2. 2삼성,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 탈환…통산 9번째 우승
  3. 3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4. 4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5. 5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6. 6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7. 7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8. 8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9. 9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10. 10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