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풀린 ‘승리호’(2021)를 회의에 찬 심정으로 보았다. 이 글은 ‘승리호’라는 한 편의 영화에 관한 글도, 조성희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글도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의 영화가 아니며, 단지 영화산업의 요구와 필요에 철저히 복무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아도 ‘승리호’는 윤제균의 ‘해운대’(2009)나 ‘국제시장’(2014)으로 대변되는 ‘K-블록버스터’, 즉 할리우드 스펙터클의 열화된 복제와 한국적 신파 드라마의 혼종이라는 장르적, 상업적 경향성을 따르고 있지, 자기화한 장르의 변주를 보여주었던 ‘늑대소년’(2012)과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2016)의 발전선상에 놓여있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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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승리호’ 스틸컷. |
돈과 가족주의라는 동인(動因)을 갖고 행동하는 인간군상의 등장은 일일이 열거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반복되고 복제되어 온 바 있다. 방송 드라마가 아침 드라마에서도 연애를 하고 사극에서도 연애에 목을 매듯, K-블록버스터는 쓰나미가 밀어닥치고 화산이 터진 재난 상황에서도 실없는 농담을 하고 가족을 찾아 통곡하며, 복수의 스타캐스팅에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기술적 스펙터클을 따라하는 것으로 한국영화가 그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변해왔다. ‘승리호’에서는 단지 배경이 우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아진 지점이 있다면 230억의 예산이 허투루 쓰인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고자 발전감을 뽐내는 컴퓨터 그래픽, SF 장르에 최적화한 시각 디자인이지만 그마저도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나 ‘엘리시움’(2013)의 기시감이 역력한 모방에 가깝다.
영화의 근본적인 실패는 시각 매체로서 영화언어에 대한 고민이 실종된 데에 있다. 두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승리호 조종사 태호(송중기)가 도로시를 제압하기 위해 끈을 들고 접근한다. 이때 끈을 준비하는 행동과 발걸음, 다가가는 인물의 시점 숏 등 3~4개의 커트만 추가해줘도 장면의 리듬과 긴장감, 대상을 위험무기로 보는 인물의 감정선이 살게 되지만 영화는 그저 한 컷에 다가갔다가 놀라 넘어지는 식으로 연출된다. 제임스 설리반(제임스 아미티지)의 첫 등장도 단지 그가 비서의 부름에 정원에서 고개를 드는 두 컷으로 단출하게 연출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인물일지를 궁금해하게 하는 호기심, 사건의 흑막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위압감을 부여하지 못한다. 심리적 밀도가 부족한 연출과 편집이 충분히 가능한 서스펜스를 포기하는 방만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만듦새는 ‘승리호’가 영화라기보단 값비싼 드라마처럼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규모에 짓눌려 개성을 잃은 감독은 마지못해 각본의 내용과 배우의 얼굴, 스펙터클을 영상에 옮겨 담을 뿐, 산업 안에서 자신의 인장을 남기며 어떠한 영화적 언어로 장면의 구성과 호흡을 조율할지를 고민하는 연출가의 역할을 잃었다. 클리셰로 점철되고 타성에 젖은 각본은 후반에 몰아서 설명해 편의적인 방식으로 인물의 배경을 풀어, 암시와 복선을 틈틈이 배치해 극의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스토리텔링의 정석을 해내지 못한다. 감독의 역할 부재, 시나리오 작가층 역량의 퇴조. 그렇게 ‘승리호’는 현재 한국영화 산업이 어떠한 지점에 와있는지를 진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만다. ‘엑시트’(2019)와 같은 상업영화 웰메이드의 교훈은 사라지고 없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