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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닫히고 봄이 열리는 동백꽃 필 무렵 ‘여수 동백섬’ 거닐다

전남 여수 오동도

  • 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
  •  |   입력 : 2021-02-24 19:14:38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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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0여 그루 동백 군락지 유명
- 1월 피기 시작해 4월까지 개화
- 다음 달 중순~말께 흐드러져

- 방파제 끝서 시작되는 산책로
- 여수·오동도·동백 소재로 쓴
- 詩 읊으며 걸으니 문학기행 온 듯

- ‘하트존’ ‘바람골’ 연인들에 유명
- 암석해안 절경인 해돋이전망대
- 섬 정상엔 69년 불 밝힌 등대도
   
봄을 앞두고 전남 여수 오동도에 ‘봄의 전령사’ 동백꽃이 하나둘 망울을 틔우기 시작했다. 동백꽃 군락지가 있는 전망대로 가는 길.
‘동백꽃 필 무렵’인 지난 18일 찾은 동백꽃 명소 전남 여수 오동도에는 동백꽃이 아직 흐드러지지 않았다. 푸른 잎 사이로 빨간 꽃이 하나둘 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으나 겨울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는 매서운 추위로 다시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휘몰아치는 바다 칼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진 동백꽃으로 뒤덮인 산책길은 뜻하지 않은 장관을 이룬다. 보통 1월 피기 시작해 4월까지 개화하는 동백꽃. 그래서 이 꽃은 겨울과 봄을 이어주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불린다. 동백꽃이 내뱉는,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 그 숲길을 천천히 걸어들어가 봤다.

■‘여수 동백섬’서 터지는 꽃망울

   
이제 막 작고 빨간 꽃을 피운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여수의 작은 섬 오동도는 섬 모양이 오동잎처럼 보이고 오동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렇게 불렸다. 특히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우거져 동백꽃 군락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오동도의 ‘동’은 동백꽃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동백나무뿐만 아니라 이대, 참식나무, 후박나무 등 400여 종의 수목이 섬 전체를 둘러싸고 울창한 숲을 이룬다. 섬은 768m 길이의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는데, 방파제 끝에서 시작되는 산책로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 2.5km에 이르는 산책로는 나무 덱으로 조성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둘러볼 수 있게 꾸며졌다.

산책로 초입에 들어서자 시 한 수부터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품에 안은 여수에서는/바람이, 바다보다 먼저 보인다/바람의, 젖을 물고 있는 섬들과/바람의, 근육으로 다져진 해안/바람의, 등뼈에는 파도 꽃이 하얗게 핀다/바다를, 놓아 기르는 여수에서는/바람이, 그물치고 그물 걷는다’(강영은의 ‘여수’).

   
이 섬의 인증샷 명소인 동백 ‘하트존’.
몇 걸음을 떼자 금세 다른 시가 펼쳐졌다. ‘지금은/누구의 꽃잎 되어/살고 있을까/오동도/동백 그늘에 앉아/아픈 이름 하나 꺼내/바람결에 헹구면/붉은 동백꽃 그리움으로/뚝 뚝 떨어져’(이옥근 ‘이름 하나’). 오동도 산책로 곳곳에는 이처럼 여수와 오동도, 동백을 소재로 한 수십 개의 시가 걸려 있다. ‘시로 읽는 여수’ 주제의 여러 시를 읊으며 찬찬히 둘레길을 걸으면 마치 문학기행을 온 듯 느껴지기도 한다. 오동도를 둘러보는 또 다른 재미다.

초입에서 오르막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동백꽃으로 만든 ‘하트존’이 나온다. SNS에서 유명한 오동도 인증샷 구간이다. 동백 꽃말이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여서인지 특히 연인에게 인기가 높다.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용굴을 지나쳐 둘레길 사이로 난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오동도의 명소 바람골에 이른다. 기암절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골짜기로, 이곳 역시 오동도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애타는 사랑과 푸른 정절

   
기암절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바람골.
암석해안의 절경을 볼 수 있는 갯바위와 일출명소로 이름난 해돋이전망대 등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면 150년가량 수령의 동백나무와 울창한 대숲을 만난다. 오동도의 전설이 깃든 지점이다. 옛날 이 섬에 어부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이 바다에 일하러 나간 사이 부인은 도적떼를 만났다. 여인은 정절을 지키고자 벼랑 창파에 몸을 던졌고 뒤늦게 돌아와 그 사실을 안 남편은 오동도 기슭에 무덤을 지어 아내를 그리워했는데, 그해 겨울 하얀 눈이 쌓인 무덤가에 동백꽃이 피어나고 푸른 정절을 상징하는 시누대(山竹)가 돋아났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 때문인지 동백꽃은 애타는 사랑의 상징, 특히 여인의 사랑을 뜻하는 ‘여심화’로 불린다. 그래서 보통 꽃은 남자가 여자에게 주지만, 동백꽃은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꽃이라고 한다. 문화해설사의 이러한 설명을 들으니 동백꽃이 왜 진정한 사랑을 뜻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곳 정상에는 오동 등대도 있다. 1952년 불을 밝힌 25m 높이의 등대는 여수항과 광양항을 오가는 선박의 뱃길을 안내해왔다. 등대 옆 찻집에서 달콤한 동백꽃차 한 잔으로 늦겨울 한파에 언 몸을 녹인 뒤 ‘하산’을 준비한다. ‘너와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힘들면 어때요’ ‘꽃길만 걸어요’ 등 사랑의 글귀가 담긴 현수막 길을 지나 나무 모양이 남성의 주요 부위와 닮았다는 남근목을 구경하고 오동도 중앙광장으로 내려가면 산책로는 끝이 난다.

   
일출명소인 해돋이전망대. 여수항과 광양항을 오가는 선박이 보인다.
중앙광장에는 방파제부터 이곳까지 오갔으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운행이 중단된 동백열차가 덩그러니 놓였다. 거북선 조형물과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비석도 광장에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본영이 있던 이곳 여수를 거점으로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말로, 제해권 장악에 필요한 호남만은 반드시 수호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대변한다. 이 문구는 조국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정절로도 읽혀 오동도 동백꽃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방파제 입구부터 섬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느린 걸음으로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활짝 핀 동백꽃을 보고 싶다면 3월 중순에서 말께 방문하면 된다.


# 1004m의 골목마다 벽화…부산인 듯 원도심의 익숙함 간직

■ 여수 산복도로

- 이순신 군령 내리던 고소대
- 달빛갤러리선 그림 감상을

- 탁 트인 바다 전망 정상엔
- 일제 때 정오 알린 오포대도

   
여수 산복도로의 핫플레이스인 고소1004벽화마을.
여수는 부산이나 통영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도심에 산복도로가 있고 그 끝에 올라서면 다닥다닥 붙은 집과 분주한 항구, 시원한 바다 전망이 한눈에 펼쳐진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에 여행자는 금세 매료된다.

고소동 산복도로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 조성된 벽화마을은 요새 떠오르는 여수의 핫플레이스다. ‘고소1004벽화마을’ 주택가 담벼락 곳곳에는 길고양이와 강아지, 꽃길을 걷고 그네를 타는 가족의 모습, 이순신 장군 일대기, 여수 풍경 등 여러 주제의 그림이 알록달록 그려져 있다. 고소동 마을주민이 골목길 경관 개선을 위해 성금을 모아 1004m에 이르는 골목 담장에 벽화를 그려넣으면서 조성됐다고 한다. 골목골목 그림을 구경하다가 달빛갤러리에 이르렀다. 여수 시가지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여수시가 건립한 갤러리로, 여수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신축년 소의 해를 맞아 여수여성미술작가회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를 나와 산복도로의 정상인 오포대에 오르면 여수 시가지와 바다의 탁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오포대는 일제강점기 정오를 알리는 포를 쏜 곳으로, 지금은 이런 기능을 하지 않고 근대시설물로만 남아 있다.

   
이 마을 정상에 있어 여수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오포대.
벽화마을 초입에 있는 문화유적 고소대도 둘러볼 만하다. 해발 117m 계산(鷄山) 정상에 설치된 고소대는 성 위에 세운 포루로, 장수들의 지휘소인 장대로도 사용돼 이순신 장군이 군령을 내리던 곳이다. 고소대 안에는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기리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그의 노량해전 전사를 슬퍼하면서 부하들이 세운 타루비가 있다. 고소대를 지키는 당산나무는 여수 8경 중 2경으로 꼽히는 고소제월(姑蘇霽月)의 무대이기도 하다. ‘비 갠 고소대 당산나무에 걸려있는 달이 아름답다’는 뜻의 고소제월은 이곳 고소동 일대에서 보는 여수의 경치가 예로부터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여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달빛갤러리.
산복도로를 걷다가 지치면 벽화마을에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카페거리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여유를 부려도 좋다.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처럼 산복도로 중턱 곳곳에 들어선 카페마다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을 꾸며놓아 여수여행 인생샷을 남기기 딱이다.

글·사진=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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