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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철길, 못 박힌 철조망…저 강 너머 언제쯤 갈 수 있을까

강원도로 떠난 안보여행

  •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  |   입력 : 2021-06-23 19:32:57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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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간 포탄 30만 발 오갔던 ‘백마고지’

- 밤낮 없는 전투 1만4000여 명 사상
- 푸른 숲은 안식 찾은 듯 조용하기만
- 옛 北노동당사 탱크·포탄 자국 여전
- 금강산철도 아래 강물만 자유로워

# 철조망 둘러싸인 오지마을 ‘비수구미’

- 중공군 3만 명 수몰된 호수 ‘파로호’
- 물줄기 따라 거대한 평화의댐 만나
- 댐 중앙엔 강 흐르는 듯한 트릭아트
- 비목공원선 전사자 추모의 시간도

우리는 종종 남북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건 38선 인근에서 어제와 다름없이 국경을 지키는 이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6·25전쟁 71주년을 맞아 새영남여행사의 ‘안보 여행’에 동참해 지난 19·20일 강원도 철원·화천을 찾았다. 휴전선 아래 북한과 가장 근접한 이들 지역엔 전쟁 당시의 상흔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화천과 철원을 오가며 보이는 철조망과 초소들, 민간인통제선, 전차 저지 시설물 등에는 여전히 초연(화약의 연기)의 흔적이 묻어 있다.
   
더는 북쪽으로 갈 수 없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에는 분단 이후 기차 운행이 멈추고 철길이 끊어진 금강산철도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금강산까지는 기차로 단 여섯 정거장. 인적이 끊겨 무성해진 수풀 너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건 강물과 새들뿐이다.
■열흘간 30만 발…격전의 백마고지전

휴전회담이 결렬된 1952년 가을, 남북은 조금이라도 더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철원 서북방에 있는 ‘395고지(백마고지)’는 그중 가장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중공 제38군 3개 사단과 국군 제9사단이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30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고지의 주인은 열흘 새 무려 24번이나 바뀌었다. 밤낮 할 것 없이 전투가 벌어지고 승패가 반복됐다는 뜻이다. 결국 국군이 최종 승리하며 중공군 2개 사단이 와해되고 1만4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투가 끝나고 남은 건 흙먼지와 시체뿐이었다.
   
열흘 새 주인이 24번이나 바뀐 철원 백마고지(위 사진)와 노동당사. 6·25전쟁 당시 쏟아진 총탄 포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백마고지 기념관에선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마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과 닮아 백마고지로 불리나 무자비한 전투 이후 그 모습을 잃어버렸다. 과거 이곳 사진을 보면 백마의 형상이 확연히 나타나지만, 지금은 푸른 숲으로 뒤덮였다. 비로소 백마는 ‘안식’을 찾은 듯하다. 기념관 입구 시계탑 정면은 6시25분에 시곗바늘이 멈춰 있다. 고지전 희생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전사자비 앞은 선뜻 지나치기 힘들다.

기념관에서는 DMZ평화의길 철원코스가 시작돼 새로운 평화를 꿈꾼다. 이 코스는 화산암 분출로 이뤄진 용암대지인 철원평야와 그 사이를 깊게 흐르는 한탄강 등을 지나는 길이다. 사전예약 후 당첨되면 군인의 인솔하에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백마고지에서 1분 1초마다 혈투가 벌어졌을 때, 인근 마을에서는 참혹한 학살이 자행됐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에서 5년간 철원 김화 포천 평강 일대를 관리하던 노동당사(등록문화재 22호)에 그 흔적이 남았다. 북한군이 떠난 뒤 노동당사 건물 뒤편 수로에서만 수백 구의 인골이 발견됐다. 수돗물을 저장하던 물탱크는 사람을 빠트려 죽이는 도구로 사용됐다.

노동당사에는 당시 탱크가 계단을 오른 흔적과 포탄 총탄 자국이 커다란 흉터처럼 새겨졌다. 건물 뒤쪽은 뼈대만 남아 더 처참하다.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철원군이 지지대를 세워뒀다. 고문실로 썼을 법한 건물 1층 내부는 한낮에도 새까맣게 그늘져 안을 감춘 채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향하면 민간인통제선이 나오고, 이곳을 통과해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갈말읍 정연리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더는 북쪽으로 갈 수 없다. 정연리마을은 평강 출신의 실향민이 1972년 정부의 이주정책으로 입주해 조성됐다. 기차가 달리지 못하고 철길이 끊어진 금강산철도는 분단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금강산철도는 일제강점기 관광을 목적으로 건설된 한국 최초의 철도선이다. 새영남여행사 정경해 대표에 따르면 이곳에서 여섯 정거장이면 금강산역에 도착한다. 단절된 철도 아래로는 북한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흐른다.

   
중공군 3만 명이 수몰된 ‘파로호’ 인근 원시림의 모습을 간직한 화천 비수구미 마을 초입.
■평화의 물줄기 흐르는 화천

화천과 양구에 걸친 호수 ‘파로호’는 한국군의 아군이었던 미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곳이다. 당시 중공군 3만여 명이 이곳에 수장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의미로 ‘파로호’란 이름을 붙였다.

파로호가 흘러드는 북한강 상류에 있는 오지마을 비수구미를 걸었다. 과거에는 차가 오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일부 구간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원시 숲길과 계곡의 물소리, 지저귀는 새들이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강과 숲길의 경계를 나누는 철조망이 전쟁의 상처를 내내 상기시킨다. 적군이 수몰된 파로호 위를 달리던 유람선 물빛누리호는 감염병 확산 이후 운행을 멈췄다. 대신 비수구미 현수교에서 보트를 타고(3분 남짓) 물살을 갈랐다. 낚시꾼과 관광객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호수는 내내 고요하다.
   
전 국민의 성금이 투입된 평화의 댐.
물줄기를 따라가면 거대한 ‘평화의 댐’과 만난다. 1987년 1단계 건설 당시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전 국민이 성금(639억 원)을 모은 ‘국민성금 댐’이다. 북한이 임남댐을 지어 남한을 물에 잠기게 하는 수공을 방어한다는 게 초기 건설 목적이었다. 18년에 걸쳐 세 차례 보수되는 동안 댐 외에도 평화와 관련된 볼거리를 늘렸다.

그중 대표적인 게 댐 바깥쪽 벽면에 있는 ‘통일로 나가는 문’이란 초대형 트릭아트 벽화다. 높이 93m, 폭 60m 크기의 벽화는 기네스에 등재될 만큼 압도적인 크기다. 댐 중앙에 문이 뚫려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데, 남과 북의 물이 통해 평화로 가는 길이 가까워지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댐 아래에 조성된 비목공원은 한국의 대표 가곡 ‘비목’을 기린다. 비목은 1960년대 비무장지대서 근무하던 청년장교가 6·25 때 전사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나무로 된 비를 발견하고 노랫말을 지었다. 비목의 가사가 적힌 바위 앞에서 차분히 노래를 불러보는 방문객들 머리 위로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안보 여행 상품 문의는 새영남여행사(051-557-0133)로 하면 된다.


# 철원 정연리마을 ‘힐링 집밥 뷔페’

- 민통선 마을주민, 각자 만든 음식 모아 한상 차렸네

   
대한민국 최북단 민간인통제구역인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마을의 집밥 한 상(사진)은 ‘안보 여행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귀한 미식이다. 이곳에는 별도의 식당이 없어 마을 주민이 각자 집에서 만든 음식을 한데 모아 방문객에게 대접한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비무장지대에 흐르는 맑은 물과 해발 250m의 고지대는 농산물이 자라기 좋은 청정 환경이다. 그래서 철원에서 재배한 농산물은 맛과 품질이 모두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정연리마을 집밥 한 상은 이러한 최상의 농산물로 차려진 ‘힐링 밥상’이다.

방문객들은 뷔페처럼 원하는 만큼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연한 순두부국은 심심하면서도 은은한 고소함이 맴돌았다. 또 무로 만든 장아찌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새콤달콤한 맛이 나도록 절여 입맛을 돋운다. 뿌리채소 등을 넣어 얇게 썬 무로 돌돌 말아 모양을 낸 무순말이는 채소 본연의 싱그러운 맛이 입안 가득 터져 여러 번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계란말이 역시 메밀 같은 이곳 특산물 천연재료로 색을 입혀 평범함을 거부했다. 특히 철원 오대쌀로 지은 흰쌀밥은 윤기가 반지르르하고 입안에 맴도는 찰기가 최상의 식감을 안겨준다. 철원평야에서 자라는 오대쌀은 무기질 성분이 많고 조직이 치밀해 전국에서 맛있는 쌀로 통한다.

주민이 직접 담근 고추장 간장 된장 등 기본 장은 방문객이 구매할 수도 있다. 특히 일대는 블루베리가 자라기 좋은 환경으로 알려졌다. 주민은 매일 블루베리를 수확해 잼이나 진액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사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건 마을에서 집밥을 먹어본 사람이면 모두 안다.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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