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장르 줄거리에 얹는 시대의 변화

‘강호아녀’

  • 조재휘
  •  |   입력 : 2021-06-30 19:37:32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강호아녀’(2018)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카메라가 담담히 풍광을 훑으며 공간의 이미지에 담긴 시간성을 포착하는데서 발견된다. ‘스틸 라이프’(2006)에서 익히 그랬듯, 지아장커의 카메라에는 배경을 소개한다는 기능성을 넘어, 무너져가는 우리 시대의 진실을 투영하려는 인문주의자의 정직성이 있다. 반면 극영화의 면모를 풀어내려는 순간 지아장커의 영화들은 본유의 에너지를 잃은 채 따분하고 지리해진다. ‘천주정’(2013) 이후 지아장커의 영화들은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리얼리즘과 장르 서사의 요소를 결합하는데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의 긴장을 지속하는 작업들이었고, 이 영화도 그러한 필모그래피의 경향에 들어있다.
   
영화 ‘강호아녀’ 스틸컷.
줄거리는 통속적인 느와르와 멜로의 전형을 답습한다. 조직의 두목 빈(리아오판)과 그의 애인 차오(자오타오)는 도박장을 운영하며 삶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빈이 습격을 당해 위기에 처하고, 애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차오는 사제 총기를 꺼내든다. 결국 차오는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5년 간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그녀는 수소문해가며 빈의 행방을 찾지만(이 부분은 묘하게 ‘스틸 라이프’에서 주인공이 남편을 찾아 싼샤에 온 것과 닮아있다.) 그에게 새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결별한다. 나중에 반신불수가 된 빈이 고향 마을로 돌아와 차오와 재회하지만 종국에 그는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영화의 주제는 형식을 위한 핑계’(로베르 브레송)라는 말처럼, 지아장커의 영화에서 스토리란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강호아녀’의 서사는 인물의 설정이나 감정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설명과 사건의 인과, 진행 과정을 대거 생략하고, 편집은 시간대와 동선의 흐름을 널뛰곤 한다. 그러나 여행에서 소중한 기억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인생의 역설처럼, 차오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이 범장르적 로드무비에서 중요한 건 도중에 목격하게 되는, 2001년 4월 2일에서 2018년 1월 1일까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풍경들이다.

자본주의 발전으로 대변되는 근대화의 과정은 진보와 개발의 화려한 성과를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기적으로 묶여있던 공동체의 해체, 관계의 상실이 뒤따른다. 광업의 쇠퇴로 탄광촌은 몰락했고, (‘첩혈쌍웅’(1989)의 주제가인 ‘천취일생’과 ‘삼국지’의 영웅 관우의 동상에도 불구하고) 술잔을 나누며 의리를 외치던 옛 형제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으며, 싼샤댐 건설로 수위가 높아져가는 펑제에는 당장 관광객이 들끓지만, 언젠가 발생할 새로운 이재민을 예고한다. 낡은 것을 부순 자리에 새로운 것을 세우고, 그것을 또다시 부수고 몰아내는 가건물의 시대로 중국의 현대를 보는 지아장커의 관점은 ‘강호아녀’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그러나 이야기를 부수적인 것으로 대하는 그의 작품관에는 어딘가 매너리즘이 느껴진다. 지아장커 영화의 힘은 풍경의 이미지가 현실의 정치적인 지점을 겨냥하는 순간 폭발하지만, 장르 서사의 틀을 서툴게 끌어들이는 근작들에서는 형식과 주제에 조화를 이뤄야 할 서사성의 결여로 인해 위력이 반감되고 만다. 인습을 거부하는 작가의 고집이라도, 스토리텔러로 완숙해진 지아장커의 새 영화를 바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4. 4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5. 5“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6. 6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7. 7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8. 8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9. 9“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10. 10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속보]조희대 작심 발언 “국회·대통령은 대법원장 제청에 관여 못 해”
  4. 4이 대통령 "북극항로 시범운항 선박 귀항 부산의 미래 깃발, 신경써달라"
  5. 5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6. 6검찰개혁, 중수청장 임명 두고 커지는 집안싸움
  7. 7강신철 “DMZ 北지뢰제거작전은 역사상 처음…단호한 대응이라고 본다”
  8. 8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9. 9조희대 “재제청 요구 헌법적 근거 없어" 거부 입장 재확인
  10. 10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부산지역 농지 41%, 외지인이 소유
  3. 3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4. 4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5. 5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6. 6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7. 7기업 보유 토지 공시지가 공시 의무화…‘땅부자’ 상장사 수면 위로
  8. 8“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9. 9[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10. 10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8. 8[속보] 북항 상어 '부캉이', 체장 3m 흑상어 암컷으로 최종 확인
  9. 9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10. 10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