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아녀’(2018)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카메라가 담담히 풍광을 훑으며 공간의 이미지에 담긴 시간성을 포착하는데서 발견된다. ‘스틸 라이프’(2006)에서 익히 그랬듯, 지아장커의 카메라에는 배경을 소개한다는 기능성을 넘어, 무너져가는 우리 시대의 진실을 투영하려는 인문주의자의 정직성이 있다. 반면 극영화의 면모를 풀어내려는 순간 지아장커의 영화들은 본유의 에너지를 잃은 채 따분하고 지리해진다. ‘천주정’(2013) 이후 지아장커의 영화들은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리얼리즘과 장르 서사의 요소를 결합하는데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의 긴장을 지속하는 작업들이었고, 이 영화도 그러한 필모그래피의 경향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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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강호아녀’ 스틸컷. |
줄거리는 통속적인 느와르와 멜로의 전형을 답습한다. 조직의 두목 빈(리아오판)과 그의 애인 차오(자오타오)는 도박장을 운영하며 삶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빈이 습격을 당해 위기에 처하고, 애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차오는 사제 총기를 꺼내든다. 결국 차오는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5년 간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그녀는 수소문해가며 빈의 행방을 찾지만(이 부분은 묘하게 ‘스틸 라이프’에서 주인공이 남편을 찾아 싼샤에 온 것과 닮아있다.) 그에게 새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결별한다. 나중에 반신불수가 된 빈이 고향 마을로 돌아와 차오와 재회하지만 종국에 그는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영화의 주제는 형식을 위한 핑계’(로베르 브레송)라는 말처럼, 지아장커의 영화에서 스토리란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강호아녀’의 서사는 인물의 설정이나 감정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설명과 사건의 인과, 진행 과정을 대거 생략하고, 편집은 시간대와 동선의 흐름을 널뛰곤 한다. 그러나 여행에서 소중한 기억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인생의 역설처럼, 차오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이 범장르적 로드무비에서 중요한 건 도중에 목격하게 되는, 2001년 4월 2일에서 2018년 1월 1일까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풍경들이다.
자본주의 발전으로 대변되는 근대화의 과정은 진보와 개발의 화려한 성과를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기적으로 묶여있던 공동체의 해체, 관계의 상실이 뒤따른다. 광업의 쇠퇴로 탄광촌은 몰락했고, (‘첩혈쌍웅’(1989)의 주제가인 ‘천취일생’과 ‘삼국지’의 영웅 관우의 동상에도 불구하고) 술잔을 나누며 의리를 외치던 옛 형제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으며, 싼샤댐 건설로 수위가 높아져가는 펑제에는 당장 관광객이 들끓지만, 언젠가 발생할 새로운 이재민을 예고한다. 낡은 것을 부순 자리에 새로운 것을 세우고, 그것을 또다시 부수고 몰아내는 가건물의 시대로 중국의 현대를 보는 지아장커의 관점은 ‘강호아녀’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그러나 이야기를 부수적인 것으로 대하는 그의 작품관에는 어딘가 매너리즘이 느껴진다. 지아장커 영화의 힘은 풍경의 이미지가 현실의 정치적인 지점을 겨냥하는 순간 폭발하지만, 장르 서사의 틀을 서툴게 끌어들이는 근작들에서는 형식과 주제에 조화를 이뤄야 할 서사성의 결여로 인해 위력이 반감되고 만다. 인습을 거부하는 작가의 고집이라도, 스토리텔러로 완숙해진 지아장커의 새 영화를 바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