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2007)은 공포물인 한편으로는 시대극의 성격 또한 갖는 작품이다.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옴니버스 영화의 귀환은 마치 다락 한구석에 밀어둔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쌓인 먼지를 털고 열어 보는 듯한 기분으로 다가온다. 다시 대면하고 싶지 않았기에 한편에 치워두고 있었던, 하지만 누군가는 새로이 조명할 필요가 있었던 역사의 상흔들. 정가 형제(정범식, 정식 감독)는 일제강점기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암흑기를 무대 삼아, 호러의 통념을 비껴나가는 멜로드라마의 구도를 접목시키며 상징과 은유를 통한 시대에의 해석을 펼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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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담’ 스틸컷. |
영화의 이야기들은 안생병원이란 공간을 중심축으로 삼아 벌어진다. 의대 실습생 정남은 원장의 딸 아오이와 정략결혼을 앞두고 시신보관소에 들어온 한 소녀의 시체를 마주하면서 그 소녀와 맺어지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교통사고로 일가족을 모두 잃고 실어증에 걸린 소녀 아사코는 죄의식으로 악몽을 꾸며 피투성이가 된 엄마의 귀신이 자신 앞에 나타나는 걸 본다. 의대 교수 동원은 어느 날 부검의인 아내 인영에게 그림자가 없음을 보게 되고, 인근에서 벌어지던 일본군에 대한 연쇄살인 사건에 그녀가 연관되어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각 에피소드는 서서히 전모가 밝혀지면서 의외의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미스터리 추리극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사코는 엄마를 새 아빠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고를 일으켰고, 동원은 아내 인영이 일본군을 수술하다가 살해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죽은 건 동원이었고 극 중의 동원은 정신이상자가 된 인영의 환상이었다. 양상은 다르지만 이상의 이야기들은 관계의 상실과 고통을 그린다는 점에서 같은 주사위의 서로 다른 면들이다. 원하지 않게 개입해오는 외부의 힘에 휘둘리고 인생이 파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식민지 시대를 견뎌내고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었겠는가라고, ‘기담’은 쓸쓸히 읊조린다.
좀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건 정남의 경우다. 노인이 된 정남의 회고로 들어가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얼핏 드러나는 그의 강점기 시절 이름 고목정남(高木正男)은 일본어로 읽으면 박정희의 창씨개명 이름이었던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와 발음이 같으며, 영화가 다루는 시간대인 1942년과 1979년은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졸업, 그리고 유신체제가 종식되는 10.26 사건과 시기상으로 일치한다. 정남이 영혼결혼식으로 맺어진 아오이와의 단란한 한때를 꿈꾸는 장면은 양식미로 가득 찬 연출의 환상성 만큼이나 강점기 지배이념의 구호였던 내선일체가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끝까지 붙어있는 아오이의 귀신은 해방 이후에도 한국의 근현대사가 식민지 시대에 옭아매여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감독의 관점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장르 안에서 역사를 질문하는 ‘기담’의 작가주의는 정신적 후속작이라 할 ‘곤지암’(2018)에서 폐허가 된 정신병원의 귀신들이 유신 시대에 강제로 입원당한 피해자들이라는 설정으로 이어진다. 14년 만의 재개봉임에도 ‘기담’이 낡아보이지 않는 건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하는 영화의 관점이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원에 이르지 못한 20세기의 유령들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시대의 공기 속을 횡횡하고 있을 것이기에.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