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기담’, 장르를 통해 역사를 질문하다

  • 조재휘
  •  |   입력 : 2021-07-14 19:37:02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기담’(2007)은 공포물인 한편으로는 시대극의 성격 또한 갖는 작품이다.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옴니버스 영화의 귀환은 마치 다락 한구석에 밀어둔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쌓인 먼지를 털고 열어 보는 듯한 기분으로 다가온다. 다시 대면하고 싶지 않았기에 한편에 치워두고 있었던, 하지만 누군가는 새로이 조명할 필요가 있었던 역사의 상흔들. 정가 형제(정범식, 정식 감독)는 일제강점기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암흑기를 무대 삼아, 호러의 통념을 비껴나가는 멜로드라마의 구도를 접목시키며 상징과 은유를 통한 시대에의 해석을 펼쳐보인다.
   
영화 ‘기담’ 스틸컷.
영화의 이야기들은 안생병원이란 공간을 중심축으로 삼아 벌어진다. 의대 실습생 정남은 원장의 딸 아오이와 정략결혼을 앞두고 시신보관소에 들어온 한 소녀의 시체를 마주하면서 그 소녀와 맺어지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교통사고로 일가족을 모두 잃고 실어증에 걸린 소녀 아사코는 죄의식으로 악몽을 꾸며 피투성이가 된 엄마의 귀신이 자신 앞에 나타나는 걸 본다. 의대 교수 동원은 어느 날 부검의인 아내 인영에게 그림자가 없음을 보게 되고, 인근에서 벌어지던 일본군에 대한 연쇄살인 사건에 그녀가 연관되어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각 에피소드는 서서히 전모가 밝혀지면서 의외의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미스터리 추리극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사코는 엄마를 새 아빠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고를 일으켰고, 동원은 아내 인영이 일본군을 수술하다가 살해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죽은 건 동원이었고 극 중의 동원은 정신이상자가 된 인영의 환상이었다. 양상은 다르지만 이상의 이야기들은 관계의 상실과 고통을 그린다는 점에서 같은 주사위의 서로 다른 면들이다. 원하지 않게 개입해오는 외부의 힘에 휘둘리고 인생이 파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식민지 시대를 견뎌내고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었겠는가라고, ‘기담’은 쓸쓸히 읊조린다.

좀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건 정남의 경우다. 노인이 된 정남의 회고로 들어가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얼핏 드러나는 그의 강점기 시절 이름 고목정남(高木正男)은 일본어로 읽으면 박정희의 창씨개명 이름이었던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와 발음이 같으며, 영화가 다루는 시간대인 1942년과 1979년은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졸업, 그리고 유신체제가 종식되는 10.26 사건과 시기상으로 일치한다. 정남이 영혼결혼식으로 맺어진 아오이와의 단란한 한때를 꿈꾸는 장면은 양식미로 가득 찬 연출의 환상성 만큼이나 강점기 지배이념의 구호였던 내선일체가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끝까지 붙어있는 아오이의 귀신은 해방 이후에도 한국의 근현대사가 식민지 시대에 옭아매여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감독의 관점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장르 안에서 역사를 질문하는 ‘기담’의 작가주의는 정신적 후속작이라 할 ‘곤지암’(2018)에서 폐허가 된 정신병원의 귀신들이 유신 시대에 강제로 입원당한 피해자들이라는 설정으로 이어진다. 14년 만의 재개봉임에도 ‘기담’이 낡아보이지 않는 건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하는 영화의 관점이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원에 이르지 못한 20세기의 유령들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시대의 공기 속을 횡횡하고 있을 것이기에.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4. 4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5. 5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6. 6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7. 7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8. 8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9. 9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10. 10[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3. 3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4. 4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5. 5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6. 6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7. 7李대통령 “국무회의 비공개 동의못해…할말 못하는 국무위원 없다 확신”
  8. 8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9. 9이혼소송 중 주소 노출…서울고법원장, 아내 살해 공무원 사건에 “제도개선”
  10. 10이 대통령, 김지용 첫 출근에 "피아구별 없이 엄중 수사하길"
  1. 1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2. 2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3. 3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4. 4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5. 5‘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6. 6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7. 7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8. 8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9. 9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10. 10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6. 6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7. 7고성서 세계적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등산축제
  8. 8“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9. 9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10. 10거짓자백 받았나…法, 17년전 ‘창원 택시기사 살인’ 재심청구 인용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