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일본 영화의 현실 도피…공동체 문제엔 침묵만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1-07-28 18:31:36
  •  |   본지 1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2020)는 남편과 사별한 노년의 미망인이 겪는 일상과 삶 속에 깃든 환상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는 한 쌍의 청춘 남녀가 만나서 사귀고 헤어짐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이 두 영화는 현재 일본영화의 경향성을 대표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소시민 영화’ 그리고 ‘세이슌모노’(靑春物)라고 명명할 법한, ‘남자는 괴로워’(1969)와 ‘태양의 계절’(1956) 이래 일본영화 전통의 두 계보를 잇고 변주하는 영화들. 주인공들은 서사극의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나 순박하고 선량하며, 영화 속 세계는 어떠한 파란도 부침도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며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할 것 같다.

세상은 투명하고 평온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어떠한 악의 없이 주인공을 환대한다. 노년의 모모코(다나카 유코)는 홀몸이 되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나름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고 있고,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와 무기(스다 마사키)는 졸업 후 취업전선에 나서면서 관계의 균열을 겪지만, 헤어진 이후 저마다의 인생 행로를 찾아갔음에도 서로를 추억한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는 일본 다도의 이상을 따르는 정적인 프레임 속에 만화적으로 과장된 표현 방식을 결합해 일상과 환상이 교차하는 노가쿠(能樂)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고,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 속에 청춘남녀가 겪는 현실의 문제를 끌어들이지만, 그것을 겪고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날 고통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하고 눙치고 있다.

현재 일본 대중영화에는 역사 현실이 없다. 두 영화는 현실의 배경을 무대 삼아 피사체를 담지만, 정작 영화가 제시하는 해맑은 정감(情感)에 온전히 빨려 들기에는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극장 밖에선 코로나 대유행의 와중이고 도쿄 올림픽이 강행되고 있다. 불 꺼진 극장은 상영 시간 동안 바깥으로부터 차단된 순간의 낙원을 제시하지만, 노인복지의 취약함, 좌절하다 못해 무기력해진 청춘 세대의 모습 등 현실의 잔영이 말끔히 지워진 팬시 상품을 보는 일은 도중에 억지로나마 거듭 영화 밖 현실의 존재를 환기토록 만든다.

‘1987’(2017), ‘택시 운전사’(2017), ‘더 킹’(2017)의 경우처럼 한국영화가 역사를 극화하면서 정치를 장르화한다면, 일본영화는 다실이란 소우주 안에서 현실의 실패를 위안받던 ‘일일시호일’(2018)처럼 스크린 밖에 도사리는 역사 현실의 그림자를 지워내며 극을 탈정치화시킨다.

영화가 막을 내려도 해결된 것은 없다.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면서 손쉽게 개인의 도원경으로 도망치는 이 ‘무책임의 체계’(마루야마 마사오)는 역설적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는 몰정치성이 암묵적 미덕이 되어버린 일본의 현재를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구로사와 기요시는 각각 ‘바람이 분다’(2013)와 ‘스파이의 아내’(2020)에서 우경화의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느 가족’(2018), 제제 다카히사는 ‘실’(2020)을 통해 헤이세이라는 시대상을 정직히 대면하고자 했다. 그리고 일본영화 작가주의의 최전선이라 할 이들은 점점 일본 안에서 다음 작업을 맡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아베의 장기집권을 통과한 지금 일본영화의 현주소이다. 영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3. 3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4. 4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5. 5“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6. 6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7. 7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8. 8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9. 9“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10. 10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1. 1“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2. 2“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3. 3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4. 4李 비판 유시민에 김민석 “대응 불필요”
  5. 5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6. 6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7. 7국민의힘 곽규택 의원 등 동구 주요 당직자, 북항 돔구장 정부 공모 참여 환영
  8. 8[뉴스 분석] 종교인·언론사주가 국회 권위 훼손…도덕성 논란까지
  9. 9李 대통령 지지율 2%p 오른 46%…조희대 탄핵 반대 45%
  10. 10부울경 광역의회 협력강화 선언 “미래산업 함께 육성”
  1. 1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2. 2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3. 3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4. 4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5. 5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7조 역대 최대…반도체로만 106조(종합)
  6. 6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7. 7롯데, 영도대교 복원 인연 축제로 잇는다
  8. 8AI드론으로 참치 찾는 선박 부산 출항
  9. 9가계대출 금리 5% 턱밑…고정형 주담대 사상 첫 5% 뚫어
  10. 10‘덕후 천국’ 부산에 떴다…롯데百 전국 첫 IP 전문관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3. 3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4. 4“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5. 5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6. 6본사 비대위·퇴직자, 지광 고소…실질경영자에 ‘체불 책임’ 추궁
  7. 7기말고사에 EBS 유사 문항, 처음 아니었다
  8. 8“대화 거부한 건 대주주…당당하면 왜 국회서 소명 안 했나”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30일
  10. 10검증 체계 없는 유가보조금…줄줄 샌다
  1. 1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2. 2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3. 3“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4. 4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5. 5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6. 6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7. 7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8. 8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9. 9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10. 10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