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2020)는 남편과 사별한 노년의 미망인이 겪는 일상과 삶 속에 깃든 환상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는 한 쌍의 청춘 남녀가 만나서 사귀고 헤어짐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이 두 영화는 현재 일본영화의 경향성을 대표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소시민 영화’ 그리고 ‘세이슌모노’(靑春物)라고 명명할 법한, ‘남자는 괴로워’(1969)와 ‘태양의 계절’(1956) 이래 일본영화 전통의 두 계보를 잇고 변주하는 영화들. 주인공들은 서사극의 주인공이 되기엔 너무나 순박하고 선량하며, 영화 속 세계는 어떠한 파란도 부침도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며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할 것 같다.
세상은 투명하고 평온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어떠한 악의 없이 주인공을 환대한다. 노년의 모모코(다나카 유코)는 홀몸이 되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나름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고 있고,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와 무기(스다 마사키)는 졸업 후 취업전선에 나서면서 관계의 균열을 겪지만, 헤어진 이후 저마다의 인생 행로를 찾아갔음에도 서로를 추억한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는 일본 다도의 이상을 따르는 정적인 프레임 속에 만화적으로 과장된 표현 방식을 결합해 일상과 환상이 교차하는 노가쿠(能樂)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고,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 속에 청춘남녀가 겪는 현실의 문제를 끌어들이지만, 그것을 겪고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날 고통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하고 눙치고 있다.
현재 일본 대중영화에는 역사 현실이 없다. 두 영화는 현실의 배경을 무대 삼아 피사체를 담지만, 정작 영화가 제시하는 해맑은 정감(情感)에 온전히 빨려 들기에는 어딘가 불편함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극장 밖에선 코로나 대유행의 와중이고 도쿄 올림픽이 강행되고 있다. 불 꺼진 극장은 상영 시간 동안 바깥으로부터 차단된 순간의 낙원을 제시하지만, 노인복지의 취약함, 좌절하다 못해 무기력해진 청춘 세대의 모습 등 현실의 잔영이 말끔히 지워진 팬시 상품을 보는 일은 도중에 억지로나마 거듭 영화 밖 현실의 존재를 환기토록 만든다.
‘1987’(2017), ‘택시 운전사’(2017), ‘더 킹’(2017)의 경우처럼 한국영화가 역사를 극화하면서 정치를 장르화한다면, 일본영화는 다실이란 소우주 안에서 현실의 실패를 위안받던 ‘일일시호일’(2018)처럼 스크린 밖에 도사리는 역사 현실의 그림자를 지워내며 극을 탈정치화시킨다.
영화가 막을 내려도 해결된 것은 없다.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면서 손쉽게 개인의 도원경으로 도망치는 이 ‘무책임의 체계’(마루야마 마사오)는 역설적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침묵하는 몰정치성이 암묵적 미덕이 되어버린 일본의 현재를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구로사와 기요시는 각각 ‘바람이 분다’(2013)와 ‘스파이의 아내’(2020)에서 우경화의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느 가족’(2018), 제제 다카히사는 ‘실’(2020)을 통해 헤이세이라는 시대상을 정직히 대면하고자 했다. 그리고 일본영화 작가주의의 최전선이라 할 이들은 점점 일본 안에서 다음 작업을 맡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아베의 장기집권을 통과한 지금 일본영화의 현주소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