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Pole) 댄서는 나비처럼 우아한 동작을 위해 팔다리에 생기는 수많은 멍과 살이 쓸리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숙명을 가진다. ‘노출 있는 옷을 입고 봉을 타는 섹시한 춤’이란 편견이 있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아직 많다. 그러나 폴댄스는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로부터 프로스포츠 지위를 인정받은 ‘스포츠’이고, 업계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 중이다. 여기 갖은 편견과 고통에도 개의치 않고 운명처럼 폴댄스에 빠진 남녀 폴댄서 2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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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광 씨가 어깨 부상 전 폴댄스 대회 연습 도중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찍은 사진. 김 씨는 낮에는 동아대 입학사정관으로, 밤에는 폴댄서로 폴을 잡는다. 김신광 씨 제공(왼쪽), 허원지 더제이 폴댄스 아카데미 원장이 우아한 동작의 폴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허 원장은 폴댄스 저변 확대와 제자 양성을 위해 폴을 잡는다. 허원지 씨 제공 |
★ ‘열정 부자’ 남성 폴댄서 김신광 씨
- 낮엔 입학사정관, 밤엔 폴댄서… ‘단독 입상’ 꿈 현재 진행형
김신광(32) 씨는 주변에서도 인정한 ‘열정 부자’다. 그는 낮에는 동아대 입학사정관으로 근무하고 저녁에는 폴을 잡는다. ‘2018 서울 국제 폴댄스 챔피언십(SIPC)’ 더블(Double) 부문에서 남자로서는 처음 대회에 출전해 허원지 씨와 함께 1위에 올라 당시 화제를 모았다. 취미로 프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김 씨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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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린시티 인근 구조물을 활용한 김신광 씨가 스트리트 폴댄스 동작을 연출했다. |
김 씨의 첫 번째 꿈은 연예인이었다. MC의 꿈을 갖고 서울에서 몇 차례 오디션을 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온 김 씨는 운동인으로서의 삶을 꿈꿨다. 생활체육학과를 나와 웬만한 운동에는 모두 자신 있었던 김 씨는 남들이 잘하지 않는 운동에 전문성을 키우고자 마음먹었다. 김 씨는 “당시 운동학과 출신에게 인기 있던 스피닝 강사나 헬스 트레이너 쪽은 실력자가 많았다. 그래서 줌바 필라테스 폴댄스 등 주로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된 운동으로 눈길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2016년, 그는 운명처럼 폴과 마주했다.
유연성과 근력이 중요한 폴댄스는 김 씨의 적성에 처음부터 잘 맞았다. 별다른 훈련 없이 ‘다리 찢기’가 가능할 정도로 유연성도 갖췄다. 남자 특유의 강한 근력은 파워풀한 동작을 선보이는 데 알맞았다. 폴댄스에 빠진 김 씨는 학원에서 청소 등을 마다하지 않고 하루 10시간 이상 폴에 매달렸다. 낮에 수강생들이 폴댄스를 배울 때는 곁눈질로 동작을 익혔고, 저녁이 되면 직접 폴을 잡았다. 김 씨는 “멍든 흔적 정도는 훈장으로 생각했다”며 크고 작은 부상도 개의치 않았다.
폴을 배운 지 3개월 만에 학원에서 주최한 폴댄스 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출전자 중에서도 남자는 김 씨뿐이었다. 국내 남자 폴댄서는 2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드물다. 이 같은 환경은 일정 수준 이상 폴댄스 실력을 키운 김 씨에게는 악조건이었다. 기술을 더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직접 수소문해 서울까지 가서 배우거나 유튜브에 나온 외국 폴댄서의 동작을 눈으로 보고 직접 해보는 방식으로 연습을 거듭했다. 동아대에 입사하며 직장인이 되고부터 폴댄스는 일과 후에야 가능한 취미 영역이 됐다. 그러나 김 씨는 허투루 폴을 잡지 않았다. 일반 수강생의 레슨이 끝난 늦은 밤에 연습을 계속했다. 그렇게 집에 오면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힘들 법도 하지만 김 씨는 “폴 앞에만 서면 재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김 씨가 폴댄스에 흠뻑 빠진 동안 주변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그를 쳐다 봤다. 폴댄스, 게다가 남자와의 조합을 생소하게 여겼고 노출 있는 옷을 입고 폴을 타는 김 씨의 모습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김 씨는 “나만 즐거우면 됐다”는 마음가짐으로 막상 주변의 반응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김 씨는 폴댄스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고부터 여러 시합에 출전해 성과를 냈다. 2016 전국 익스트림 폴스포츠대회 아마추어 레벨2 부문 2위를 시작으로 2017 엔젤컵폴댄스 아마추어 레벨3 부문 1위에 오르며 아마추어 신분을 벗었다. 이어 2017 코리아폴스포츠챔피언십 남자 3위에 올랐고, 2018 서울 국제 폴댄스 챔피언십(SIPC)’ 더블(Double) 부문에서 허원지 씨와 출전해 1위를 차지했다. 김 씨의 활약에 주변 시선도 달라져 이제는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다.
김 씨의 꿈은 현재 잠시 유보 중이다. 2018년 대회를 준비하다가 어깨에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어깨 통증 탓에 주사를 맞고 대회에 임했던 김 씨는 수상 직후 어깨 관절이 30% 이상 닳아 더는 운동하면 안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 씨는 “프로 대회를 준비하던 중 받아 든 결과라 상실감이 컸다. 이 때문에 1년간 슬럼프에 빠져 방황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김 씨는 적극적으로 재활치료에 임하고 있다.아직 폴댄스를 하면 통증이 있어 몸을 완전히 회복한 후 다시 대회에 나설 계획이다. 그의 꿈은 ‘프로 부문 단독 입상’에 향해 있다. 김 씨는 “지금은 몸을 완전히 회복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다시 폴을 잡으면 대회에 출전해 프로 부문 단독 1위에 오를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 제자 키우는 선생님 변신 허원지 씨
- 운명처럼 취미반 입문했던 직장인… 동작 성공 성취감에 힐링
더제이 폴댄스 아카데미 허원지(28) 원장은 2017 세계폴스포츠선수권대회(WPSC)시니어 우먼 부문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프로 선수다. 1년에 두세 차례 꾸준히 국내외 대회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보였다. 최근에는 본인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폴댄스의 저변 확대와 제자 양성을 위해 폴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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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원지(왼쪽) 원장과 김신광 씨가 ‘2018 서울 국제 폴댄스 챔피언십’ 더블 부문에 출전해 1위를 차지한 모습. 동아대 제공 |
유치원에서 근무하던 허 원장은 2014년 학원 취미반으로 처음 폴댄스에 입문했다. 당시에는 폴댄스 학원을 찾기도 어려울 만큼 알려지지 않은 종목이었다. 허 원장은 남들이 잘 배우지 않는 폴댄스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처음 폴댄스를 했을 때도 “이거다”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의 실력을 눈여겨본 강사의 권유로 고민하던 허 원장은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폴댄스를 배웠다.
폴을 배운 지 10개월 만에 출전한 첫 대회를 시작으로 허 원장은 꾸준히 실전 경험을 쌓았다. 2017 JPSA(일본폴스포츠협회) 인터내셔널 우먼 2위, 같은 해 열린 KPSC(대한폴스포츠협회) 프로페셔널 2위와 AKPC 프로페셔널 1위로 국내외 폴댄스 대회 수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폴댄스 대회는 참가자가 여러 동작으로 구성한 안무 작품으로 우열을 가린다. 직접 만든 하나의 안무로 여러 대회에 출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쉽게 얻은 결과는 아니었다. 허 원장은 “처음에는 춤도 잘 못 췄고 다리 찢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폴 동작을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성취감이 너무 컸다”며 “그래서 매년 대회를 준비하며 성장한 거 같다”고 스스로를 노력형이라고 평가했다.
수천 가지의 폴댄스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허 원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동작은 ‘버드 오브 파라다이스’다. 그를 가장 괴롭혔던 애증의 기술이어서다. ‘천국의 새’라는 뜻답게 우아한 몸동작을 연출해 한눈에 시선을 붙잡지만, 어깨의 유연성과 힘이 동시에 필요한 고난도 기술이다. 폴댄스 입문 3년 차에 버드 오브 파라다이스 동작에 도전한 허 원장은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 속에서도 연습을 강행했다. 대회 직전 한 달간 이 동작에만 매달린 적도 있었다. 결국 대회에서 깔끔하게 버드 오브 파라다이스 동작에 성공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을 얻었다.
그런데 이때 연습으로 허리를 다쳐 한동안 폴을 잡지 못했다. 아픈 몸보다는 당장 폴을 잡지 못한다는 상실감이 더 컸다. 허 원장은 “허리가 아파서 괴로운 것보다는 간단한 폴댄스 동작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답답한 시기였다”고 표현했다. 허 원장은 지난해 1월부터 선수로서의 삶을 멈추고 제자 양성으로 방향을 바꿨다. 허 원장에 따르면 그가 처음 폴댄스를 시작한 2014년보다 지금은 환경이 훨씬 나아졌다. 사람들의 편견 역시 많이 개선됐다. 허 원장은 “최근 3, 4년 새 폴댄스가 방송에도 여러 차례 나오고 대중화하며 배우는 사람이 확실히 늘었다”고 덧붙였다.
폴댄스 대중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최근 허 원장은 국제한국폴연맹에서 발급하는 POSA(포사) 국내 심판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는 “폴댄스는 유연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운동이란 인식이 강해 아직 문턱이 높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막상 해보면 전혀 위험하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폴댄스를 더 빛내줄 의상인 폴웨어의 브랜드를 함께 운영하며 폴댄스의 저변 확대를 꿈꾼다.
그는 “폴댄스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필라테스나 요가처럼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폴을 마주하길 바란다”고 폴 잡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독려했다. 김미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