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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에 물든 갯벌, 춤추는 갈대…순천만에 가을이 내렸다

전남 순천만 여행

  •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  |   입력 : 2021-10-06 19:13:56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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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대밭·갯벌 광활하게 펼쳐진 순천만
- 세계 5대 자연습지로 람사르협약 등록
- 식물 340여 종·철새 230여 종이 공존
- 잠시 휴식중인 백로 등 평화로움 가득

- 용산전망대서 갯골·갈대 군락 잘보여
- 해무 덮이면 무진기행의 도시로 변신
- ‘천연기념물’ 흑두루미떼 구경도 가능

전남 순천만(순천시 순천만길)에 가을이 내렸다. 검은 갯벌 위로 황금빛 갈대가 출렁이고, 자줏빛 칠면초도 화사한 모습을 드러냈다. 강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점인 갯벌은 갯지렁이 게 맛조개 참꼬막 짱뚱어 등의 갯벌 생명을 품고 키우느라 언제나처럼 여념이 없다. 갈대숲 위를 오가는 백로가 붉은 노을 아래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흑두루미떼가 겨울을 나기 위해 이곳에 날아들 날도 다가온다.
황금빛 갈대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순천만 습지 갈대밭. 머리 위로 이따금 철새 무리가 오간다.
순천만은 가을이 되면 눈처럼 휘날리는 갈대 씨앗과 S자로 휘감아 치는 선명한 갯골, 이를 뒤덮는 신비한 안개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연출한다. 천혜의 자연은 유네스코세계유산도 인정했다. 지난 7월 25일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는 ▷충남 서천 갯벌 ▷전북 고창 갯벌▷ 전남 신안 갯벌▷ 전남 보성-순천 갯벌을 ‘한국의 갯벌’로 묶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했다. 여름 태양의 기세가 한풀 꺾인 지난달 말, 가을이 스며든 순천만 습지를 찾았다.

■황금빛 갈대 사이 생태계 형성

순천만 습지 내 용산전망대 풍경. 자연이 빚은 S자 형태의 갯골과 원형 갈대군락 등이 신비롭게 펼쳐진다.
순천만은 전남 남해안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있는 만으로, 순천시 보성군 고흥군 여수시 등과 접해 있다.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로 뻗어 내린 지맥이 침강해 형성됐다. 갈대밭 5.4㎢(160만 평)과 갯벌 22.6㎢(690만 평)이 광활하게 펼쳐진 순천만은 2003년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됐고, 2006년에는 람사르협약(습지와 습지의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환경협약)에 등록됐다. 세계 5대 자연습지로 340여 종의 식물과 230여 종의 철새가 이 곳에서 공존한다.

갈대는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지점부터 30리(약 11.78㎞)까지 뻗는다. 찬 바람이 불면 하얀 깃털 같은 갈대 씨앗이 눈처럼 흩날려 장관을 연출한다. 흑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등 국제적으로 보호되는 철새 희귀종도 겨울을 나기 위해 순천만을 찾아온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철새는 순천만의 귀한 손님들이다.

황금빛 파도가 일렁이는 갈대 사이를 한없이 걸었다. 잠시 운행을 멈춘 생태탐방선이 정박한 다리(무진교) 위에 오르면 사방이 갈대밭이다. 나무 덱의 갈림길마다 표시된 화살표는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철새 무리와 닮았다. 발아래로는 관람객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와 짱뚱어 등이 갯벌에 흔적을 남겼다가 다시 사라진다. 날개를 접고 잠시 휴식 중인 백로를 보고 있으면 그 평화로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자줏빛 칠면초 군락은 갈대의 단조로움을 없애준다. 칠면초는 갯벌 상부에서 자줏빛 새싹으로 시작해 초록 잎으로 변신했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자줏빛으로 변한다. 코로나19로 습지 관련 실내 전시실은 당분간 둘러볼 수 없다.

■원형 갈대군락 미스터리서클 같아

갈대숲을 걷다 보면 만나는 생태탐방선.
순천만을 제대로 보려면 자연생태공원 동쪽에 있는 용산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높이 77m의 낮은 산은 용이 순천을 향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용산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순천만 습지 입구에서는 2.4㎞가량, 전망대 전 ‘마지막 화장실’에서 1.2㎞ 떨어진 거리다. 4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초반 오르막이 가팔라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다. 한낮에 이곳을 찾을 경우 모자와 생수는 꼭 준비하자. 오르막이 이어져 땀이 꽤 흘렀다. 갯바람다리를 지날 때는 오른편 갯벌에서 불어온 바람이, 솔바람다리를 건널 때는 소나무 사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줬다. 중간 전망대에서 나무 사이 모습을 드러내는 드넓은 순천만 경치는 정상으로의 발길을 재촉했다.

용산전망대에 오르자 가장 먼저 S자 모양의 갯골이 펼쳐졌다. 강의 하구가 댐으로 막히지 않아 자연스레 바닷물이 들고 나며 생긴 자연의 흔적이다. 이 갯골은 갯벌에서 자라는 생물에 탯줄 같은 생명선이 된다. 동그란 원형군락의 갈대는 미스터리서클처럼 신비롭다. 갈대는 잘린 뿌리로 번식하는데, 잘린 갈대뿌리가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갈대는 갯벌에서 자기 영역을 확장하다가 다른 군락과 만나 더 넓은 갈대군락을 형성해 지금의 커다란 원형 갈대밭을 만들었다. 그 너머로 일출명소인 화포마을과 일몰 명소인 와온해변도 보인다.

가을이 되자 자줏빛으로 잎이 바뀐 칠면초.
조금 전 걸어온 갈대밭이 전망대 오른편으로 까마득히 펼쳐지고, 이따금 해무가 순천만을 뒤덮으면 이곳은 현실과 이상이 뒤섞인 가상 도시 ‘무진’으로 또 한 번 변신한다. 순천만을 주 무대로 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은 그 오묘한 찰나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무진에 명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무진기행 중>

순천만은 국내 유일의 흑두루미 월동지다. 매년 10월 중순이면 1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이곳에 날아든다. 흑두루미의 학명 ‘GRUS MONACHA’ 중 GRUS는 라틴어로 두루미, MONACHA는 수도자를 뜻한다. 흑두루미는 마치 하얀 베일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성직자처럼 거룩히 내려와 이듬해 3월 시베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순천만에서 머문다.


# 전남도립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作 21점 전시

■ 근처 가볼만한 곳

인근 광양읍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건희 컬렉션’.
올 초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광양읍)은 유리로 이뤄진 건물 외벽이 시시각각 아름다운 광양의 하늘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최근 이곳은 ‘이건희 컬렉션’으로 전국 단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중이다. 광양터미널에서 도보로 3분이면 닿을 수 있어 접근성도 좋으니 순천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시간을 내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전남도립미술관은 다음 달 7일까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고귀한 시간, 위대한 선물’을 진행한다. 전남 출생인 김환기와 천경자 등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9명의 작품 21점을 만날 수 있다. 특별전에서는 전남 신안 출생인 김환기가 뉴욕 거주 시절 완성한 특유의 점화 양식을 볼 수 있는 ‘무제’를 시작으로 전남 고흥 출생인 천경자의 1973년 작품인 ‘화혼’,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월남한 유강열의 석판화 ‘무제’ 등을 차례로 감상할 수 있다. 당시 이들 화가의 작품을 다룬 출판물도 함께 전시돼 보는 재미를 더한다.

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외에도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 전과 ‘AES+F. 길 잃은 혼종, 시대를 갈다’ 전 등을 전시 중이다. 유리 벽을 통해 실내에서 미술관 밖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글·사진=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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