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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파워 오브 도그’ 마초에 종언 고한 여성주의 서부극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03-02 18:55:4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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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Power of Dog)에서 구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파워 오브 도그’(2021)는 이중성과 모호함의 영화다. 서부극의 전원적인 배경을 깔고 스릴러의 첨예한 긴장감을 지속하는 이 퀴어 멜로의 인물들은 간단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몬태나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필(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조지(제시 플리먼스) 버뱅크 형제의 관계는 얼핏 권위적인 형과 유약한 동생처럼 보이지만, 실은 잔정 많고 집착하는 형을 쌀쌀맞게 대하는 냉정한 동생의 구도다. 거친 마초성을 뽐내는 필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과거의 연인 브롱코 헨리를 그리워하는 게이이며, 조지는 과부인 로즈를 동정해 결혼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부부 관계는 갖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사랑을 추구하며 변모하는 여성상을 그린 ‘피아노’(1993)와 달리, ‘파워 오브 도그’에서 로즈(커스틴 던스트)는 수동적이고 피학적인 입장에 머문다. 그녀는 남성중심 사회의 피해자다. 동생의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는 필은 로즈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가학성은 내밀한 여성성을 감추려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정작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보였던 조지는 아내의 알콜중독을 돌보지 않고 방관하며 양아들이 된 피터(코디 스밋맥피)가 모욕당하는 걸 막지 않는 냉담한 태도를 취한다. “남자들은 다 그래”라는 대사에서 드러나듯, 로즈의 눈에는 말을 타는 구시대인인 필이나, 자동차를 모는 조지, 사별한 전 남편 모두 그녀를 억압하거나 학대를 방조하는 가부장이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토머스 새비지의 1967년 작 동명소설을 움켜쥐고 12년 만에 영화로 돌아온 제인 캠피온의 연출은 녹슬기는커녕 더욱 깊고 치밀한 세공력을 자랑한다. 단적인 예가 소도구인 밧줄을 활용하는 방식인데, 필에게 있어 끈을 꼬아 엮은 밧줄은 과거의 애인 브롱코 헨리, 그리고 이 밧줄을 선물로 받을 피터와 이어지고자 하는 소망과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피터에게 밧줄은 전혀 다른 섬뜩한 의미를 갖는다. 자살했다는 아버지는 모종의 사건으로 피살당했음이 밧줄에 묻어있는 피로 암시되며, 일부러 죽은 짐승의 가죽을 재료삼아 밧줄을 만들도록 종용해 필을 탄저병에 감염시킨 것 또한 피터였다.

야만의 서부, 즉 ‘개의 세력’은 필의 장례식과 더불어 종언을 고한다. 그리고 다음 세상은 가부장제의 폭압으로부터 해방된 여성과 현대 의학을 공부하는 피터처럼 문명화된 남성의 가치관이 정립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파워 오브 도그’는 서부 사나이의 종말과 문명의 도래라는 수정주의 서부극의 테마를 계승하면서 그 위에 한 겹 층위를 더해, 여성주의적 관점을 정교하고 세련된 영화적 언어로 구현한 걸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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