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2021)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여기에는 실화를 다룬다는 명목을 내세운 영화들이 흔히 빠지는 선정주의, 소재의 유명세에 기대어 허술한 만듦새의 변명으로 삼으려는 안이함이 없다. 영화는 다이애나가 크리스마스 연휴의 3일 동안을 왕실의 별장인 샌드링엄에서 보내는 과정을 그린다. 그 기간 벌어지는 사건들은 굳이 실존 인물을 내세우지 않아도 성립될, 지극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현상들이다. 남편의 집안과 불화를 겪으며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는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다른 게 있다면 그녀의 시집은 전통에 엄격한 영국식 귀족주의의 정점인 영국 왕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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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펜서’ 스틸 컷. |
다이애나는 별장으로 가는 길을 잃고 당황한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즉 다이애나의 정체성은 길 잃은 사람이다. 목적지 근처까지 왔음에도 다이애나는 농장 한 가운데 선 허수아비를 보고는 허수아비가 입은 낡은 외투를 벗겨 가져온다. 그 헌 옷은 과거 아버지의 것이고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친정 집안의 추억과 현재의 자신을 이어주는 몇 남지 않은 연결고리이다.
결혼 이전의 성이었던 ‘스펜서(Spencer)’를 영화의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는 도입부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녀가 찾아 헤매고 돌아가고자 하는 길은 표면상의 목적지인 왕실의 별장이 아니라,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지만 폐허만이 남은 옛 친정의 추억, 자유분방했던 유년기의 삶이다.
어쩌면 그녀는 내키지 않아서 일부러 길을 지체한 것이 아닐까? 과거를 상실한 채 껍데기만 남은 유령처럼 살아가는 다이애나의 쓸쓸한 내면은 황량한 폐가가 된 옛 본가의 을씨년스러운 풍광을 통해 말 없이 전달된다. 반면 차량이 들어서는 순간 부감으로 비춰지는 샌드링엄은 정문 외에는 출구가 차단되어 있는 중세의 성채로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가부장적 종법 질서의 압박과 사방에서 옥죄는 듯한 공간의 위압감으로 단번에 각인된다. 16㎜ 필름 특유의 흐릿한 해상력은 종종 출몰하는 앤 불린의 유령처럼 커튼마저 닫고 죄인마냥 갇혀 지내는 다이애나를 점점 개인성을 잃고 지워져가는 쇠약한 인상으로 담아낸다.
‘재키’(2016)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한 번 현대판 귀족 사회의 내부에 처한 여성상을 다룬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연출은 철저히 계산적이다. 얕은 초점 심도는 인물이 느끼는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단절감과 외로움을 강조하고, 좌우 폭이 좁은 1.66 대1의 화면비는 클로즈업 숏에서 프레임의 남은 여백을 줄여 인물의 얼굴을 우리에 가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와이드 숏조차도 다이애나 비를 둘러싼 주변 공간이 닫혀있음을 매번 확인시키며 포위감을 조성하고, 심지어 야외 장면에서도 밤에 안개를 깔거나 스카이라인을 낮춰 잡는 등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것만 같은 시각화로 일관한다.
한껏 억눌려있던 다이애나의 감정은 두 아들을 데리고 샌드링엄을 떠나는 영화의 말미에서 비로소 숨통을 트고 해방감을 얻는다. 런던 시가지에서 치킨을 사먹는 사소한 일상이야말로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적당히 바보 같아도’ 용납되는 소시민적 일상의 자유 아니던가? ‘스펜서’는 다이애나의 이름과 일화를 빌려오지만, 실상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과 주인공 노라에 대한 현대적 리메이크이며, 한 개인을 넘어서 억압받는 여성 보편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