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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위대한 계약’ 공간과 일상 속 인간과 생태계의 상호작용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05-25 18:43:57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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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말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물론 인간의 문화와 의식은 살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 맞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공간을 재구성하며, 환경과 맺는 관계와 배치, 장소성을 바꾸는 능동성을 지닌 존재 또한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종신, 정다운 감독의 다큐멘터리 ‘위대한 계약 : 파주, 책, 도시’(2022)는 바로 이러한 인간과 공간의 상호작용과 그에 관련한 역사의 흐름을 다루는 영화다.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2022) 스틸 이미지.
휴전선에 인접한 허허벌판과 늪 지대가 생태 도시이자 문화 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을 영화는 담담한 톤으로 풀어낸다. 방대한 양의 인터뷰와 자료 화면에 기반해 파주 출판도시의 기원과 현재를 펼쳐내는 아카이빙 형식은 호흡이 단조롭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그러나 극적 구성의 완급을 절제한 채 연대기적 서술에 치중하는 방식은 도시 공간과 그에 얽힌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풍경이 한데 엮이며 자아내는 총체성의 모자이크를 조망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과포화 상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을 아우르려는 인문주의자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출판인과 건축가의 연대, 경계를 넘어선 문화예술인의 참여가 빚어온 파주 출판단지의 형성 과정은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에 대한 미시사적인 기록이자 증언이며, 현재진행형인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다. 뜻 있는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만들어진 공간이 그 안에 속한 사람의 뜻을 새롭게 하며, 바뀐 삶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를 통해 개발 논리 일변도로 달려왔던 산업화 시대의 터널을 벗어난 한국 사회가 인간 삶의 질과 생태주의(ecology)에 대한 관심으로 도시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담론적인 문제제기로까지 나아간다.

정보의 여백을 채우는, 수려한 영상미로 담아낸 풍경의 이미지즘 역시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갈대밭과 습지의 자연물이 인공의 건축물과 어울려 혼연일체를 이루는 작품 속 파주의 독특한 풍광은 도시와 자연의 영역을 분리시켜 사유해왔던 통념을 깨고, 인간의 주체성이 환경과 어떠한 사회적 관계를 이루며 융합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에코(eco)의 그리스어 어원인 오이코스(oikos)가 자연만이 아닌 인간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함축하는 단어이듯, 생태주의란 도시 공간과 일상 속에서 인간이 환경과 관계 맺는 방식을 재구성하고 삶의 총체를 바꾸는 기획이라는 점을 파주 시가지의 이미지들은 말없이 시사한다.

‘이타미 준의 바다’(2019)에서 정다운 감독은 바람과 물이 지나가는 틈새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과 일본 양쪽을 오갔던 한 경계인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해냈다. 그리고 ‘위대한 계약 : 파주, 책, 도시’에서 우리는 분야의 차이와 국경과 인종, 인공과 자연, 옛 것과 새 것 등, 모든 경계가 해체되고 혼재하며 조화를 이루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건축의 화두에서 길어올린 이 곡진한 사유의 깊이가 다음 작품에서도 연결되기를 바란다. 만일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묶어 ‘경계와 공간’ 3부작으로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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