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헤어질 결심(2022)’ 진부한 소재 잊게 한 연출의 묘미

  • 조재휘 영화 평론가
  •  |   입력 : 2022-07-06 19:17:00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헤어질 결심’(2022)의 줄거리는 흔하디흔한 필름 느와르 영화같다. 한 남성이 의문의 추락사를 당하고 살인사건의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하던 해준(박해일)은 미망인이자 용의자인 서래(탕웨이)를 알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매혹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지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핑계”(로베르 브레송)일 뿐, 진정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시네아티스트로서의 박찬욱 감독의 진면목은 진부하고 관습적인 이야기를 심후한 깊이의 텍스트로 역전시키는 연출의 정묘함에서 드러난다.
영화 ‘헤어질 결심’(2022) 스틸컷.
잠복근무를 하는 해준은 쌍안경으로 멀리서 서래의 집안을 들여다본다. ‘이창’(1954)의 영향이 감지되는 이 장면은 한 술 더 떠 바라보는 주체가 대상의 공간에 직접 들어가는 환상처럼 연출되는데, 지켜볼 수는 있으나 다가갈 수는 없는 관음증적 상황은 상대에게 닿고자 하는 인물의 갈망을 강조한다. 다가가려고 하였고, 붙잡으려 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미완(未完)으로 남을 안타까운 사랑의 테마는 이쯤에서 미리 누설되는 것이다.

해준은 아내와 육체관계를 갖지만 권태를 맞은 둘의 시선은 좀처럼 마주치지 않는다. 반면 서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지만 서로의 눈을 맞춘다. 불면에 시달리는 해준을 잠들게 해주는 서래의 비결은 서로의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다. 접촉하진 않지만 시선이 교차하고, 박자를 맞추는 섬세한 동조의 과정은 어떠한 통정(通情)보다도 애틋하다.

수사는 상대의 마음을 파고드는 과정이며, 관찰과 탐색을 빙자한 밀회의 순간들이다. 관계가 진척되고 감정의 결이 켜켜이 쌓여 갈수록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서서히 좁혀진다.

해준은 심심하면 버릇처럼 눈에 안약을 넣는다. 물은 눈을 씻음으로써 사건을 맑은 눈으로 보고자 하는 형사의 직업의식을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벽에 곰팡이가 번지듯 그의 마음에 촉촉이 스며드는, 바다로 표상되는 서래의 존재이기도 하다. 보살핌 또는 치유와 연관되어 부드럽게 유동하는 액체의 이미지는 서래의 관계가 친밀해지면서 비로 변했다가, 그녀의 감정과 의도, 진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이 오자 안개로 화하며, ‘마침내’ 키스를 나누었을 때는 허공에 흩날리는 눈으로 변주된다.

반면 해준을 비롯한 남성들은 산과 바위처럼 투박하고 고체화된 이미지로 폭력과 죽음에 연관되어 있다. 학대를 일삼던 서래의 남편 기도수는 산에서, 살인용의자 산오는 건물 옥상에서 추락사하는데, 해준은 반려자의 위치에 서서 서래를 갖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기도수, 떳떳치 못한 연애 관계라는 점에서 산오와 공통점을 갖는다. 그의 얼굴이 두 사람과 겹쳐 보이는 순간은 이러한 동일시에 확증을 더해준다. 절벽에 부딪힌 파도가 물보라로 산산조각 나는 풍경은 앞서 절의 북을 두드리던 장면과 대구를 이루며, 진심을 전하고자 한 서래의 뜻이 마음을 닫아버린 해준의 강고함에 무너지고 마는 비극적인 엇갈림을 시적으로 함축해낸다.

그리고 해준이 서래의 행방을 찾아 바다에 이르렀을 때, 가레산스이(枯山水)처럼 기암괴석이 깔린 해안에 만조의 바닷물이 밀어닥치며 ‘현기증’(1958)을 상기시키는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휘몰아치는 물의 갈기는 안개를 부르며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한용운)처럼 해준을 휩싸고 돈다. 시간의 미로에 영영 갇힌 채,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부캉이’ 그물도 무용지물…하루만에 수로 안으로
  3. 31244회 로또복권 1등 18명…당첨금 16억469만 원
  4. 4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5. 5[속보]만취상태로 예인선 오르던 선원 추락사…법원 “직무상 재해”
  6. 6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40.8원… 전주보다 0.9원 ↓
  7. 7LH 미매각 토지 22조 육박…19년간 못 판 상업용지도
  8. 8[속보] 투자사기 치고 돈세탁은 카지노 칩으로…40대 징역 1년8개월
  9. 9[속보] 영화 ‘암살자(들)’ 투자 외부 개입 논란에…국책은행 “사실무근”
  10. 10“바다로 안 돌아갈래”…‘부캉이’ 추가 구조 없이 당분간 움직임 주시
  1. 1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2. 2李대통령, ‘정청래 그만 괴롭히라’는 글에 “괴롭힌 거 아냐”
  3. 3軍 “北,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발사”
  4. 4추미애 “김지용, 언제든 국민과 정의에 등 돌릴 수 있는 자”
  5. 5靑, 北 탄도미사일 발사에 긴급회의…“안보리 위반, 즉각 중단 촉구”
  6. 6‘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7. 7[속보] “전두환 내란 아냐” 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의결
  8. 8김민석 부산 찾아 “전재수 시정 성공시키겠다”
  9. 9李대통령 “우크라, 상대국 원수 거짓말쟁이 만들어…사과 거부시 추가 조치”
  10. 10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1. 11244회 로또복권 1등 18명…당첨금 16억469만 원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40.8원… 전주보다 0.9원 ↓
  3. 3[속보] 영화 ‘암살자(들)’ 투자 외부 개입 논란에…국책은행 “사실무근”
  4. 4"삼전닉스 ETF 출시 때 투자자 보호 대신 시장 확대만 급급"
  5. 5예가람저축은행 해킹 피해로 고객 4만명 정보 유출
  6. 6당국, '해킹사고' 확산에 내일 금융업권 긴급소집
  7. 7현대캐피탈도 해킹 피해…주택대출 모집인 146명 개인정보 유출
  8. 8“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9. 9삼성중공업, 올해 LNG운반선 20척 수주. 글로벌 경쟁력 입증
  10. 10"건보료 재정누수 심각…1000만원 초과 고액체납 2배 급증"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부캉이’ 그물도 무용지물…하루만에 수로 안으로
  3. 3[속보]만취상태로 예인선 오르던 선원 추락사…법원 “직무상 재해”
  4. 4LH 미매각 토지 22조 육박…19년간 못 판 상업용지도
  5. 5[속보] 투자사기 치고 돈세탁은 카지노 칩으로…40대 징역 1년8개월
  6. 6“바다로 안 돌아갈래”…‘부캉이’ 추가 구조 없이 당분간 움직임 주시
  7. 7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8. 8“택시부제 풀었더니 매출이 쑥”…밀양시, 시범운영 거쳐 전면 해제
  9. 9“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10. 10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1. 1[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2. 2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3. 3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4. 4서채현,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리드 금메달
  5. 5한국, AG 남자 축구 4회 연속 금메달…결승 한일전 1-0 승리
  6. 6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7. 7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8. 8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9. 9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인도에 져 은메달…8연패 무산
  10. 10성적 부진·단장 공백·감독 결별·구단주 경고…김해FC ‘사중고’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부산 야구장 미래는
사직 역사성 있지만 대체구장 부담…북항 돔은 재원 관건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