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2022)의 줄거리는 흔하디흔한 필름 느와르 영화같다. 한 남성이 의문의 추락사를 당하고 살인사건의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하던 해준(박해일)은 미망인이자 용의자인 서래(탕웨이)를 알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매혹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지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핑계”(로베르 브레송)일 뿐, 진정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시네아티스트로서의 박찬욱 감독의 진면목은 진부하고 관습적인 이야기를 심후한 깊이의 텍스트로 역전시키는 연출의 정묘함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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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어질 결심’(2022) 스틸컷. |
잠복근무를 하는 해준은 쌍안경으로 멀리서 서래의 집안을 들여다본다. ‘이창’(1954)의 영향이 감지되는 이 장면은 한 술 더 떠 바라보는 주체가 대상의 공간에 직접 들어가는 환상처럼 연출되는데, 지켜볼 수는 있으나 다가갈 수는 없는 관음증적 상황은 상대에게 닿고자 하는 인물의 갈망을 강조한다. 다가가려고 하였고, 붙잡으려 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미완(未完)으로 남을 안타까운 사랑의 테마는 이쯤에서 미리 누설되는 것이다.
해준은 아내와 육체관계를 갖지만 권태를 맞은 둘의 시선은 좀처럼 마주치지 않는다. 반면 서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지만 서로의 눈을 맞춘다. 불면에 시달리는 해준을 잠들게 해주는 서래의 비결은 서로의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다. 접촉하진 않지만 시선이 교차하고, 박자를 맞추는 섬세한 동조의 과정은 어떠한 통정(通情)보다도 애틋하다.
수사는 상대의 마음을 파고드는 과정이며, 관찰과 탐색을 빙자한 밀회의 순간들이다. 관계가 진척되고 감정의 결이 켜켜이 쌓여 갈수록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서서히 좁혀진다.
해준은 심심하면 버릇처럼 눈에 안약을 넣는다. 물은 눈을 씻음으로써 사건을 맑은 눈으로 보고자 하는 형사의 직업의식을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벽에 곰팡이가 번지듯 그의 마음에 촉촉이 스며드는, 바다로 표상되는 서래의 존재이기도 하다. 보살핌 또는 치유와 연관되어 부드럽게 유동하는 액체의 이미지는 서래의 관계가 친밀해지면서 비로 변했다가, 그녀의 감정과 의도, 진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이 오자 안개로 화하며, ‘마침내’ 키스를 나누었을 때는 허공에 흩날리는 눈으로 변주된다.
반면 해준을 비롯한 남성들은 산과 바위처럼 투박하고 고체화된 이미지로 폭력과 죽음에 연관되어 있다. 학대를 일삼던 서래의 남편 기도수는 산에서, 살인용의자 산오는 건물 옥상에서 추락사하는데, 해준은 반려자의 위치에 서서 서래를 갖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기도수, 떳떳치 못한 연애 관계라는 점에서 산오와 공통점을 갖는다. 그의 얼굴이 두 사람과 겹쳐 보이는 순간은 이러한 동일시에 확증을 더해준다. 절벽에 부딪힌 파도가 물보라로 산산조각 나는 풍경은 앞서 절의 북을 두드리던 장면과 대구를 이루며, 진심을 전하고자 한 서래의 뜻이 마음을 닫아버린 해준의 강고함에 무너지고 마는 비극적인 엇갈림을 시적으로 함축해낸다.
그리고 해준이 서래의 행방을 찾아 바다에 이르렀을 때, 가레산스이(枯山水)처럼 기암괴석이 깔린 해안에 만조의 바닷물이 밀어닥치며 ‘현기증’(1958)을 상기시키는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휘몰아치는 물의 갈기는 안개를 부르며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한용운)처럼 해준을 휩싸고 돈다. 시간의 미로에 영영 갇힌 채,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