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2022)은 ‘대중적 작가’의 열망이 담긴 영화이다. 한재림 감독은 메이저 스튜디오의 거대 예산과 유명 배우들로 영화를 만들면서 장르 영화가 갖는 흥분과 작가주의라는 두 대립적인 항을 한데 아우르고 결합하려 한다. 어쩌면 이것이 비극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매끄러운 재난 영화의 전형을 기대한 관객과 장르의 외양을 취하면서도 시대상에 대한 발언을 담고 싶었던 창작자의 의욕 사이에 놓인 괴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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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상선언’ 스틸컷. 주식회사 쇼박스 제공 |
항공 재난 상황의 서스펜스와 스펙터클를 중반부까지 롤러코스터처럼 끌고 간 영화는 항공기의 안전과 착륙 여부를 둘러싼 주변 세계의 반응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사회파 드라마의 성격을 드러낸다. 형식미는 다르지만 ‘관상’(2013)과 ‘더 킹’(2017)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의 행적이 몰입감을 자아내는 전반부가 장르의 영역이라면, 인물의 행적이 하강 곡선에 접어들고 극의 분위기가 진중해지는 후반부에서 감독의 계몽적 의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2막의 구성.
문제는 후반부에서의 전환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충분한 예비서사가 안배되지 않은 비약은 작위이자 강요처럼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만약 형사 인호(송강호)가 자신의 몸으로 항바이러스 실험을 감행하려는 극단의 선택이 내려졌을 때, 확률이 희박한 도박 같은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적 고뇌와 출입이 제한된 실험실로 잠입하는 과정의 장면이 더해졌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느끼는 심리적 저항감은 상당부분 완화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흠결에도 ‘비상선언’에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면면이 있다. 대응책에 부심하고,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국토부장관 숙희(전도연)의 등장은 재난 상황에서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의 작동을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의 현실을 역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상념에 잠긴 채 미묘한 미소를 짓는 숙희와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보이는 갇힌 학생들의 모습, 분열된 국론과 시위대의 등장 등 영화의 이미지들은 지워지지 않을 역사적 상흔(傷痕)의 우울한 정경을 거듭 환기시킨다.
생존한 승객들이 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꿈과 같은 분위기로 연출돼 현실이 아닌, 모두가 구조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환상처럼 모호하게 보인다. 그리고 드뷔시의 ‘월광’이 들리면서 보게 되는, 착륙한 여객기를 포착한 부감의 앵글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뒤집어진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세월호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분명 ‘비상선언’은 무리수를 둔 전개의 결함이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블록버스터를 통해 ‘포스트 세월호’를 이야기하고 애도의 정념을 담고자 한 감독의 결기를 지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