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은 영화를 만들 때마다 당대 영상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온 감독이지만, 테크놀러지의 첨단을 달려온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내러티브는 다분히 고전적인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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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바타-물의 길’ 스틸컷. |
‘터미네이터’(1984)와 ‘어비스’(1989)의 바탕에는 남녀의 사랑과 구원의 테마가 깃들었고, ‘에이리언 2’(1986)는 모성(母性)을 통한 인간성 회복 드라마이며, ‘트루 라이즈’(1994)는 첩보 액션 이면에서 위기에 처한 부부관계의 긴장과 갈등을 다룬다. ‘타이타닉’(1997)은 여객선 침몰이란 역사 사건을 계급이 다른 남녀의 사랑이라는 멜로드라마 형식을 통해 그렸고, ‘아바타’는 개척민과 원주민의 운명이라는 서부극 서사 전통을 답습한다.
‘아바타-물의 길’(2022) 역시 이러한 제임스 카메론 필모그래피의 일관된 발전선상에 있다. 소니 시네알타 베니스 카메라의 초고해상도 3D 리그 촬영, 광원 효과와 디테일 표현이 진일보한 컴퓨터 그래픽을 총동원해 판도라 행성의 신세계를 관객의 목전에 다시금 펼쳐 내보이는 이 영화의 근간에 깔려있는 건 가족 드라마이다. 인간의 침공을 물리치고 온전히 나비족 일원이 된 제이크 설리는 어느덧 가정을 꾸린 가장이 되어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고 더욱 커진 규모의 침략, 숙적인 쿼리치의 부활을 맞게 된 그는 일가족을 데리고 숲을 떠나 해안가 다른 부족인 멧카이나족에게 의탁한다.
창작 영역 관점에서 ‘아바타’는 한 편 자체로 깔끔하게 완결된 이야기를 갖추고 있었다. 다시 말해 속편을 위해 남은 요소랄 것이 없는 내재적 한계가 있었다. ‘아바타-물의 길’이 가족 이야기로 등장인물의 외연을 넓힌 건 두 가지 요인 때문으로 보이는데, 하나는 이야기를 확장할 당위성을 찾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새롭게 소개되는, 영화의 주된 공간이 되는 판도라의 바다로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심리적 유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가장의 책임감은 가족을 이사하게 하고, 낯선 곳에 정착한 아이들은 현지인 아이들과 교류하다 다투고 때론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다 주변과 동화돼 친구를 만들어 간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생존과 성장을 염려해 엄격히 대하지만, 진심을 모르는 아이에게 그런 아버지는 야속하기만 하다. 인물들이 겪는 상황은 현실에서도 흔히 겪는 인간사의 보편적 경험이며, 관객은 가족관계의 현실적인 묘사를 매개로 거부감 없이 판도라의 바다라는 새로운 세계의 리얼리티에 더 쉽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의 통속성은 진보적인 비전을 추구하는 평론가나 관객에게는 참신하지 못한 것으로 비치는 명확한 한계점을 갖는다. 그러나 ‘카사블랑카’(1942)를 두고 움베르토 에코가 한 말처럼 ‘한 두 개의 상투성은 웃음이 나오게 만들지만, 수천 개의 상투성은 감동을 준다.”(‘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문제는 스토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 즉 말하는 방식에 있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 점을 영악스러우리만치 잘 이해하는 작가(auteur)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