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젠틀맨' 강렬한 장르영화…차세대 감독의 발견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1-04 19:03:03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김경원의 ‘젠틀맨’(2022)은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웰 메이드 장르 영화이다. ‘아티스트 - 다시 태어나다’(2017)로 데뷔한 뒤 두 번째 작품이다. 전형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려 했던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1995)나 가이 리치의 ‘스내치’(2000)를 참고하면서, 김경원 감독은 리들리 스콧의 ‘블랙 레인’(1989), 한재림의 ‘더 킹’(2017)을 방불케 하는 스타일리스트의 미장센, 정교한 몽타주와 프레이밍을 숏 바이 숏으로 채워 넣었다.
영화 ‘젠틀맨’의 한 장면.
근래 한국 상업영화에서 감독의 통제력이 이처럼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거침없이 밀어붙인다는 감을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영화는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가 김화진(최성은) 검사에게 취조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도입부는 은연중 영화 전체 리듬과 플롯을 함축한다. 책상 위에 펜대를 두들기는 소리와 취조실로 향하는 발걸음, 사운드와 컷 전환이 맞물려 겹치는 ‘운율의 몽타주’는 경쾌하게 달려 나가는 영화의 흐름과 더불어, 펜대를 굴리는 설계자 현수의 큰 그림에 화진이 문자 그대로 ‘걸어 들어오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네온 조명 가득찬 도시 밤거리를 거닐던 현수는 골목에서 돈을 챙기고는 사라지는데, 법조계 고위층의 부패·환락에 관계된 사건 핵심을 파고들어간 그는 우여곡절로 곤란을 겪긴 하지만, 종국엔 돈을 쓸어가고 유유히 사라질 것임이 미리 누설된다.

현수와 화진의 진실게임을 플래시백으로 풀어내는 영화는 이야기 국면이 바뀔 때마다 현재 시점의 취조실로 돌아온다. 영화의 톤이 무거워질수록 공간 이미지는 어둠에 침윤되지만, 창밖에서 들어오는 조명이 인물의 얼굴을 스치는 순간, 연극의 막이 바뀌는 커튼 효과처럼 수렁에 빠진 상황이 역전되는 막판으로 전환된다. 사건의 중심인물인 권도훈(박성웅)이 붙잡은 동료를 폭행하는 영상을 본 화진의 경악하는 얼굴에는 핏빛 같은 붉은 조명이 잠깐 감돈다. 치밀하게 안배된 시각적 은유와 암시는 감각·심리 효과를 높이고 서사의 빈틈을 채우는 영화적 활력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이와 같은 연출의 재간은 여간해선 찾기 힘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젠틀맨’이 장르영화의 존재 의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현수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거짓말 탐지기 소견서 문구처럼, 영화는 스스로 일종의 판타지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영화의 모티브가 됐을) 별장 성접대 사건 같은 일이 벌어져도 가해자는 유유히 빠져나가는 현실 앞에 우리가 한 번쯤 고통받는 피해자 편에서 싸우고 이기는 권선징악 판타지를 갖는 게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장르영화이기에 가질 수 있는 환상의 특권이자 위안이며, 다시금 현실의 절망을 환기하고 사유할 기회를 얻는 일일 것이다.

‘젠틀맨’은 상업영화를 지향하지만 신진 감독 김경원이 보여준 완숙한 기량과 작가의 면모는 훗날 그가 산업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재량과 자유를 얻었을 때 과연 어떤 성취를 보여줄지 기대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한국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대중적 작가’의 등장을 맞이하고 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상어 ‘부캉이’ 33일 만에 수로 벗어나…유도작업 종료
  2. 2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3. 3‘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4. 4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5. 5‘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6. 6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7. 7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8. 8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9. 9‘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10. 10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1. 1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2. 2‘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3. 3부산시 국감서 전재수 시장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설전
  4. 4부산교통공사 사장 임명, 시설공단은 보류… 협치 여지 남긴 전재수
  5. 5'소장품 셀프 출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6. 6울산시 국감, 시장 발언에 국힘 의원들 퇴장
  7. 7제미나이에 물었다는 이 대통령, 野 "제미나이에 국정 의존, 처참한 수준"(종합)
  8. 8교육위 국감 화두 ‘교부금 축소’…“교육감 대응도 안일” 질타
  9. 9부산회생법원 국감 “지역언론 가치 고려 국제신문 살펴야”
  10. 10李 대통령, AI에 물었다…“중수청장 국무회의 배석불가는 억지”
  1. 1‘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2. 2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3. 3송도 바다서 만난 융드립 커피 한 잔
  4. 4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5. 5"세무조사 때 금품·향응 수수"…국세청 직원 5년간 31명 징계
  6. 6가덕 6200억 증액 확약 절실…국회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
  7. 7올해 부산 비정규직 58만명 '역대 최다'…1년새 2만5000명↑
  8. 8부산은행, 불꽃축제 등 지역축제 발전에 2억 후원
  9. 9관광과 지역민 함께 성장을…세계가 부산서 묘책 찾는다
  10. 10“친환경 항만 투자 100억 당, 부산 124억 생산유발”
  1. 1상어 ‘부캉이’ 33일 만에 수로 벗어나…유도작업 종료
  2. 2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3. 3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4. 4‘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5. 5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6. 6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7. 7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8. 8[속보]20일 부산서 70대 남성 무궁화호 열차에 치여 사망
  9. 9‘부캉이’ 수로 출구 부근까지 유도…그물 주위 맴돌며 바다로 안 떠나
  10. 10“기존 공부량 유지하며 취약점 공략…남은 주말 수능처럼 모의고사를”
  1. 1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2. 2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3. 3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4. 4"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5. 5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6. 6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7. 7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8. 8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9. 9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10. 10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