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얼굴이 그것과 뒤섞일 풍경, 바다와 산을 부르지 않겠는가. 어떤 풍경이 (중략) 얼굴을 환기시키지 않겠는가.(들뢰즈 ‘천 개의 고원’)
‘스즈메의 문단속’(2022)은 폐허를 돌아다니는 한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마을은 적막에 휩싸인 무인지경이 되어있고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길을 헤맨다. 이윽고 우리는 이것이 스즈메의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밝혀지지 않은 주인공의 과거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재해가 휩쓸고 간 이후인 듯 어둡고 황량한 폐허의 이미지는 등교하는 스즈메의 동선을 따라가며 비치는 맑고 화사한 마을의 풍광과 극단의 대비를 이룬다. 죽음과 생명, 과거와 현재의 대비는 영화 전체에서 일관되게 관철되는 모티브이다.
작중의 일본에는 재난을 막기 위해 전국을 방랑하는 도지시(閉じ師)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자연물을 인격화된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령 신앙, 그리고 에도시대 설화집의 채색판화에서 재해를 의인화해 묘사하는 것처럼, 열도의 지각 아래에는 언제든 지진을 일으킬 준비를 하며 꿈틀거리는 재난의 근원, 미미즈라는 존재가 도사리고 있고, 각 지역마다 열려있는 뒷문을 닫지 않으면 언제든지 지표면으로 올라와 인간세상을 뒤엎을 준비를 하고 있다. 도지시의 일은 미미즈가 뛰쳐나올 출구가 되는 문을 찾아 일일이 닫아 잠그는 ‘문단속’이다.
우연한 계기로 도지시인 소타를 만나게 된 스즈메는 저주에 걸려 의자로 변한 그와 함께 재앙의 진원지마다 출몰하는 고양이 다이진을 쫓아간다. 이건 규슈 남단에서 시고쿠, 고베와 도쿄를 거쳐 종국엔 도호쿠로 향하는, 사실상 일본 전역을 좌우로 횡단하는 한 편의 로드무비다.
운영 적자로 버려진 유원지가 버블 시대의 거품이 꺼진 후 일본 사회의 길었던 침체를 반영하는 것처럼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애니메이션임에도 공간 이미지의 사실성을 통해 현실의 일면을 상기시키는 리얼리즘의 미덕이 있다. 긴 여정의 끝에 도달한 도호쿠의 폐허, 어린 시절 주인공이 떠나온 고향의 인적이 끊긴 풍경은 현실에 있었던 재난의 역사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너의 이름은’(2016)의 연장선상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소멸해버린 폐허와 죽음의 반대편에, 위태위태함 속에서도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배치함으로써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시킨다.
미미즈가 출몰하는 뒷문을 닫을 때마다 스즈메의 뇌리에는 지금은 버려졌지만 한때 사람으로 붐볐던 공간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미지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는 영화 매체의 본령은 상실한 것을 되찾으려는 인물의 동기와도 절묘하게 겹친다.
저승의 영역으로 간 소타를 다시 산자의 세상으로 불러오려는 (남녀의 역할이 역전된 오르페우스 신화의 변주에 다름 아닌) 스즈메의 여정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 보편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또 하나의 ‘포스트 3·11’ 영화이다. 영화는 재난을 겪은 뒤에도 이어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림과 동시에 상실한 것의 회복을 희구(希求)하고자 한다. 이것은 영화가 추구할 수 있는 휴머니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우의 한 형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