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삶…문 너머 상실을 치유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스즈메의 문단속’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3-01 18:50:30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어떤 얼굴이 그것과 뒤섞일 풍경, 바다와 산을 부르지 않겠는가. 어떤 풍경이 (중략) 얼굴을 환기시키지 않겠는가.(들뢰즈 ‘천 개의 고원’)

‘스즈메의 문단속’(2022)은 폐허를 돌아다니는 한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마을은 적막에 휩싸인 무인지경이 되어있고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길을 헤맨다. 이윽고 우리는 이것이 스즈메의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밝혀지지 않은 주인공의 과거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재해가 휩쓸고 간 이후인 듯 어둡고 황량한 폐허의 이미지는 등교하는 스즈메의 동선을 따라가며 비치는 맑고 화사한 마을의 풍광과 극단의 대비를 이룬다. 죽음과 생명, 과거와 현재의 대비는 영화 전체에서 일관되게 관철되는 모티브이다.

작중의 일본에는 재난을 막기 위해 전국을 방랑하는 도지시(閉じ師)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자연물을 인격화된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령 신앙, 그리고 에도시대 설화집의 채색판화에서 재해를 의인화해 묘사하는 것처럼, 열도의 지각 아래에는 언제든 지진을 일으킬 준비를 하며 꿈틀거리는 재난의 근원, 미미즈라는 존재가 도사리고 있고, 각 지역마다 열려있는 뒷문을 닫지 않으면 언제든지 지표면으로 올라와 인간세상을 뒤엎을 준비를 하고 있다. 도지시의 일은 미미즈가 뛰쳐나올 출구가 되는 문을 찾아 일일이 닫아 잠그는 ‘문단속’이다.

우연한 계기로 도지시인 소타를 만나게 된 스즈메는 저주에 걸려 의자로 변한 그와 함께 재앙의 진원지마다 출몰하는 고양이 다이진을 쫓아간다. 이건 규슈 남단에서 시고쿠, 고베와 도쿄를 거쳐 종국엔 도호쿠로 향하는, 사실상 일본 전역을 좌우로 횡단하는 한 편의 로드무비다.

운영 적자로 버려진 유원지가 버블 시대의 거품이 꺼진 후 일본 사회의 길었던 침체를 반영하는 것처럼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애니메이션임에도 공간 이미지의 사실성을 통해 현실의 일면을 상기시키는 리얼리즘의 미덕이 있다. 긴 여정의 끝에 도달한 도호쿠의 폐허, 어린 시절 주인공이 떠나온 고향의 인적이 끊긴 풍경은 현실에 있었던 재난의 역사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너의 이름은’(2016)의 연장선상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소멸해버린 폐허와 죽음의 반대편에, 위태위태함 속에서도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배치함으로써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시킨다.

미미즈가 출몰하는 뒷문을 닫을 때마다 스즈메의 뇌리에는 지금은 버려졌지만 한때 사람으로 붐볐던 공간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미지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살리는 영화 매체의 본령은 상실한 것을 되찾으려는 인물의 동기와도 절묘하게 겹친다.

저승의 영역으로 간 소타를 다시 산자의 세상으로 불러오려는 (남녀의 역할이 역전된 오르페우스 신화의 변주에 다름 아닌) 스즈메의 여정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 보편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또 하나의 ‘포스트 3·11’ 영화이다. 영화는 재난을 겪은 뒤에도 이어지는 사람들의 삶을 그림과 동시에 상실한 것의 회복을 희구(希求)하고자 한다. 이것은 영화가 추구할 수 있는 휴머니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우의 한 형태일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회 마을버스뿐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8. 8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9. 9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10. 10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1. 1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4. 4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5. 5“통합 진에어, 처음 취지대로 부산 이전해야”
  6. 6박철우 서울공소청장 “李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검토한 적 없다”
  7. 7“‘재정빨대’ 사과 바라시니 사과” 秋 순직 소방관 빈소 발언 파장(종합)
  8. 8퐁피두 중단에 국힘 박수영 1인 시위…시민사회 “토건 논리 부활 시도” 반발
  9. 9[속보] 강화도 해안서 '北 유실 추정' 대인지뢰 또 발견…이달에만 4번째
  10. 10이 대통령 지지율 3주만에 반등한 37.3%…민주 36.2%·국힘 40.9%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3. 3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4. 4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5. 5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6. 6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7. 7기술유출 엄단…산업부 ‘특사경’ 도입 추진
  8. 8해양진흥공사, 상임이사 공개 모집
  9. 9양현재단 20년, 해운·항만 새 항로 모색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19일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회 마을버스뿐
  2. 2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3. 3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4. 4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5. 5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6. 6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7. 7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8. 8“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9. 9재개발 조합장 수사 정보 채팅방 올린 공무원 벌금
  10. 10주 15시간 넘기면 인건비 30%↑…생존 위해 쪼개기 고용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8. 8‘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