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1948) 재개봉을 맞아 영화의전당(부산 해운대구)에 들렀다. 35㎜ 오리지널 카메라 네거티브 필름을 다시 4K 스캔하고 디지털 복원한 새 판본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세월의 흔적을 감추지 못하는 낡고 손상된 자국들, 뿌연 질감의 흑백화면 속 배경과 사람들의 옷차림새는 영화가 전쟁 이후 거리를 찍은 필름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는 위력적이다. 영화역사 한 시절을 풍미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사조는 시대의 뒤안길로 밀려났지만, ‘자전거 도둑’에는 여전히 시간을 넘어서는 몰입감과 설득력이 있다.
 |
| 영화 ‘자전거 도둑’의 한 장면. |
공개된 당대부터 걸작으로 인정받았고 무수한 비평과 분석이 쏟아진 지금, ‘자전거 도둑’을 다시 말한다는 건 ‘침묵과 무위에 묻은 불필요한 얼룩’(사무엘 베케트)을 더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다시 만난 영화가 오히려 지금 와서 더욱 생생하고 절절하게 다가오는 점에 놀라고 만다.
줄거리는 단출하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직업소개소 근처에서 죽치던 안토니오는 영화광고 전단지를 붙이는 일을 얻는다. 그는 전당포에 저당 잡힌 자전거를 찾아와 일을 시작하지만, 잠시 눈을 파는 사이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경찰의 도움을 얻을 수 없던 그는 어린 아들 브루노와 함께 로마 시내 곳곳을 누비며 도둑의 행방을 찾는다. 기껏 찾아낸 도둑의 정체는 간질을 앓는 빈민가 청년이었고, 자전거는 찾을 수 없다. 절박함에 내몰린 안토니오는 독하게 마음먹고 자전거를 훔치기로 작정하고 만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이데올로기적인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굳이 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찾는다면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는 중산층 가족을 두고 “저들처럼 번듯하게 먹으려면 한 달에 100만 리라는 벌어야 해”하는 대사 정도일 것이다.
대신 영화는 생계수단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작은 여정에 관객을 동참시키며 필름에 기록된 세상 풍경을 펼쳐낼 따름이다.
안토니오가 일자리를 얻고 자전거를 찾았을 때 아내 앞에서 기뻐하는 모습이나 식당에서 아들에게 자전거가 있다면 벌어들일 수 있었던 수입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자. 그는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 건실한 가정을 꾸리고자 한다. 하지만 자전거가 없으면 일할 수 없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상황은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어려운 지경으로 내몬다. 노력과 선의(善意)에도, 비인격적인 세상의 벽에 부딪혀 절망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두고 공감하며 연민을 품지 않는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직업소개소 밖에 진을 친 사람들로 시작한 영화는 위기를 모면한 뒤 고개를 떨군 채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부자(父子)의 모습으로 끝난다. 수미상관으로 중첩되는 군중 이미지는 영화가 특정 주인공이 아닌, 부박한 현실의 중력에 짓눌린 민중 보편의 이야기임을 속삭인다. ‘자전거 도둑’은 행복하게 살고자 했지만, 그 꿈을 짓밟힌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다. 75년 전 영화임에도, 난 이 작품이 너무나도 오늘날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눈물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