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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나를 이끌고 간 곳…제주의 너른 품 있었다

제주 한라산 백록담 등반기

  •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
  •  |   입력 : 2023-06-14 19:18:33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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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주먹밥·초콜릿·스틱 등 챙겨
- 초보 등산러의 느릿느릿 등반
- 탐라계곡 목교 다음부터 난코스
- 숨 넘어갈 즈음 삼각봉 대피소

- 나만의 속도로 계단 밟아가자
- 눈 앞 구름과 눈부신 백록담
- 오래 기다려도 인증샷은 못 참지
- 12시간 걸어 버킷리스트 달성

‘한라산 백록담’. 해발 1950m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등산 소요시간 8~10시간. 제주의 정체성이며 생물자원의 보고이자 생명의 요람. 버킷리스트에 누구나 한 번은 품었을 법한 한라산 백록담 등산을 최근 올랐다. 배낭 등산화 스틱 무릎보호대까지 단단히 챙겨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한라산에서 12시간을 걸었다. 한라산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화창한 햇살로 등산객들을 맞아 고지대의 절경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오르기 시작한 지 5시간 만에 마주한 한라산 백록담 전경. 둘레 3㎞의 분화구에 물이 고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배낭엔 가벼운 짐부터

지난달 26일 오전 7시.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이날 아침기온은 제주시 기준 17도로 제법 선선한 편. 밤 사이 내린 비로 숲은 짙은 초록이었다. 자외선과 벌레 등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반팔 티셔츠 위에 얇은 바람막이 자켓을 걸치고 등산화 끈을 동여맸다. 이날을 위해 준비한 무릎보호대도 양쪽에 단단히 착용했다. 오르막을 대비해 허리 높이 정도로 스틱 길이를 조절했다.

배낭은 짐을 최소화하되 꾸준한 에너지원을 공급할 수 있도록 신경 써서 꾸렸다. 500㎖ 물 2병, 650㎖ 이온음료 1병, 에너지바 3개, 주먹밥 1개, 하나씩 까서 먹을 수 있는 초콜릿 등. 정상에서 마실 단백질 음료도 하나 넣었다.

백록담을 내려다보며 컵라면을 먹는 상상도 했지만, 따뜻한 물을 담은 무거운 보온병으로 체력에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아 눈물을 머금고 뺐다. 올라갈 때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려 척추에 무리를 주면 안되므로 가벼운 짐을 가방 아래에, 무거운 짐을 가방 입구에 배치했다. 탐방로 입구에서는 예약 확인 메시지에 첨부된 QR코드와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나만의 속도 찾는 게 중요

탐방로 입구에서 탐라계곡 목교까지 2.9㎞(1시간)는 평지 위주의 트레킹 코스가 이어진다. 조릿대와 양치식물 각종 버섯류 등 다양한 식물로 우거진 숲은 탐방로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야생의 생태계를 바로 곁에서 보여줬다.

탐라계곡을 지나 눈앞에 경사 80도 정도로 가파른 계단이 펼쳐졌다면 이제부터는 심호흡하고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곳에서 삼각봉대피소까지 3.1㎞(2시간25분) 구간은 가파른 돌계단과 숲길이 이어져 등산객의 체력 인내심 지구력 등을 끊임없이 시험한다. 삼각봉대피소에서도 백록담까지는 2.7㎞를 더 걸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 분배는 필수다.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 꾸준히 오르는 게 중요한데, 빨리 가야겠다는 마음만 앞서면 되레 체력 소모만 빨라지고 지구력도 바닥난다.

실제로 구비구비 이어진 계단이 언제쯤 끝날지 앞만 보고 걷다가 초반 체력 조절에 실패했다. ‘이쯤 되면 대피소가 나올 때가 됐는데’란 생각으로 앞을 보면 어김없이 새로운 계단이 이어져 다리에 힘이 빠질 정도였다. 당연히 경치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배낭과 스틱도 불필요한 짐처럼 느껴졌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몇 번의 승패를 겪은 후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했다.

■구름 가까이 신비로운 절경

삼각봉 대피소에서 만난 삼각봉.
비현실적으로 뾰족한 삼각봉이 내다보이는 대피소 계단에 드러누워 숨을 골랐다. 시간은 오전 10시10분을 지나고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는 하산 시간을 고려해 오후 2시30분(하절기 기준)이면 하산해야 한다. 휴식 등을 고려하면 남은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초반 체력 조절 실패를 가슴에 새기고, 이번에는 계단을 미리 보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눈앞의 계단만 하나씩 밟으며 백록담으로 향했다. 가끔 스니커즈를 신고 스틱을 소지하지 않은 등산객들이 가뿐히 앞질렀지만 초조해하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법이다.

“이제 거의 다왔어요.” 정오가 가까워지자 산뜻한 표정의 하산객들이 말을 건넸다. 비로소 오랜만에 고개를 들었다. 숲길은 어느새 사라지고 한라산 고지대의 절경이 사방에 펼쳐졌다. 태풍을 견뎌냈을 백록담 북벽의 위용과 눈높이와 비슷해진 구름의 느린 움직임, 그 구름 너머 이파리처럼 집들이 늘어선 제주도 전경이 펼쳤다. 은빛 고사목과 고지대에서 자라는 키 작은 양치식물 등이 숲의 탄생과 죽음 사이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정상석 인증샷 1시간 대기

이날 한라산은 정상에 오를수록 화창한 날씨로 등산객을 맞았다. 낮 12시10분 드디어 윤슬이 눈부신 백록담을 마주했다. 둘레 3㎞ 깊이 108m 타원형 분화구인 백록담은 만수위는 아니었지만 바람에 물결이 일 정도로 찰랑거렸다. 이 바람에 이따금 안개가 백록담을 덮었지만, 곧 다른 바람에 밀려나갔다.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를 통한 등반객 100여 명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해발 1950m에서 휴식을 만끽했다.

정상석 인증샷을 찍으려면 백록담의 자세한 감상은 잠시 미루는 게 좋다. 이날도 어림잡아 70명이 넘는 등산객이 인증샷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당 30초 안팎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대기 시간만 1시간이 넘었다. 정상에서 하산해야 하는 시간까지 계산해 식사와 사진촬영 등은 계획적으로 진행하는 게 좋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백록담을 떠났다. 내리막길에서 무릎 보호를 위해 스틱을 가슴 높이 정도까지 길이를 더 늘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삼각봉 대피소에서도 오후 4시30분이면 하산해야 하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순 없다. 끝없는 계단 행렬에 지치지 않으려면 내려갈 때도 지구력과 정신력은 필요하다.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라산에는 총 5개 탐방로(어리목 영실 성판악 관음사 돈내코)에 85만744명이 찾았다.
‘한라산 백록담’이 새겨진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선 관광객들. 1시간 정도 대기는 각오해야 한다.
# 완만하지만 19㎞ 걷는 성판악 코스, 신비로운 경관 감상하는 관음사 코스

■ 탐방로 선택·예약

한라산 백록담으로 향하는 탐방로는 성판악과 관음사 탐방로 두 곳이다. 동쪽코스인 성판악탐방로는 총길이 9.6㎞(편도), 편도 4시간30분이 소요된다. 성판악관리사무실(해발 750m)에서 출발해 속밭→사라오름 입구→진달래밭대피소→정상으로 가는 동안 완만한 경사가 이뤄져 크게 무리는 없지만, 왕복 19.2㎞로 가장 길다. 탐방로 5.8㎞ 지점에 사라오름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600m 정도 오르면 산정호수와 한라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사라오름전망대가 있다.

한라산 북쪽코스인 관음사탐방로는 총길이 8.7㎞로 편도 5시간 소요된다.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하며 해발고도 차이가 커 신비로운 한라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화산폭발로 빚어진 뾰족한 삼각형 모양의 삼각봉과 은빛 고사목 등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듯한 신비로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탐방안내소→탐라계곡→삼각봉대피소→용진각→정상(백록담)을 거친다. 다만 경사가 가파른 구간이 2시간 넘게 이어져 초보자는 유의해야 한다. 정상 등반은 자신 없지만 한라산 절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1700고지까지 탐방 가능한 어리목코스나 영실탐방로를 추천한다. 이 두 코스는 예약하지 않아도 탐방할 수 있다.

등반 일정이 잡히면 ‘한라산탐방 예약시스템’ 홈페이지에서 탐방로를 먼저 예약해야 한다. 7월 예약은 전월인 6월 1일(주말·공휴일인 경우 익일) 오전 9시부터 할 수 있다. 1명이 최대 4명까지 예약할 수 있고, 주 1회 탐방 가능하다. 성판악·관음사 탐방로 중 선택해야 하며, 입산 시간(하절기 오전 5시~오후 1시)도 함께 지정해야 한다. 한 사람이 같은 날 두 코스 또는 일주일 내 2회 이상 예약할 수 없다. 또 예약 후 취소 없이 탐방하지 않으면 1회 3개월, 2회 1년간 예약이 불가능한 페널티를 받는다. 등산은 예약 시 선택한 탐방로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하산 때는 자유롭게 택할 수 있다. 한라산 등정 후 인증서를 받으려면 정상에서 사진을 찍은 뒤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인증서를 신청해야 한다. 이때 반드시 정상 반경 1㎞ 내에서 ‘GPS 위치 정보 저장’ 후 사진 촬영하는 걸 잊지 말자. 촬영 일자와 등정 날짜가 같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다. 예약번호와 사진을 업로드하면 출력번호가 발급되고, 하산 후 무인발급기에서 수수료를 결제한 뒤 인증서를 출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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