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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밀수’ 신나는 장르영화의 외피 속 흐르는 휴머니티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8-02 19:33:17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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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2023)의 리듬감은 경쾌하다. 필요 없는 서사의 군더더기를 과감히 쳐버리고, 핵심만 붙잡은 채 거침없이 치고 내달리는 이야기 진행의 박력은 ‘최후의 증인’(1980) 같은 드라마 중심의 영화도 액션활극 호흡으로 다루었던 이두용의 스타일과도 닮아있다. 도중에 인물 관계와 동기, 공간의 지형도 등, 범죄계획을 펼치면서 기억해 둬야 할 설정과 장치를 고루 세팅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 ‘밀수’ 스틸 컷.
1970년대, 서해안 포구 마을 군천. 산업화의 일환으로 세워진 화학공장 탓에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물질로 생계를 이을 수 없게 된 해녀들은 바다에 던져진 밀수품을 건져 올리는 일에 가담한다.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최헌의 ‘앵두’는 서두를 여는 배경음악으로 흥겹게 깔리다, 뱃전에 앉아 쓸쓸한 곡조로 읊조리는 엄진숙(염정아)과 다방에서 가발을 벗는 조춘자(김혜수)의 흥얼거림으로 세 번 반복된다. 시대 분위기를 자아낼 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를 사전에 넌지시 누설하는 선곡. 세관원의 밀수 단속에 걸려 혼란스런 와중에 혼절한 채 체포된 진숙은 홀로 도망해 자취를 감추었다가 돌아온 춘자를 밀고자로 여기고 진의를 의심한다. 그러나 춘자가 서울에서 물고 온 밀수 의뢰를 받지 않으면 밥벌이와 동료의 수술비를 해결할 수 없다.

‘모가디슈’(2021)에 비하면 소품이지만 ‘밀수’는 류승완 필모그래피가 그리는 작가적 구도의 발전선상에 놓여있다. 이념과 진영이 갈리지만 생존을 위해 동행하는 남북 대사관 직원과 거액이 걸린 밀수를 성사시키기 위해 팀을 이룬 해녀 두 사람.

필요에 따라 손을 잡지만 아직 믿음을 주기엔 망설여지는 관계에 모종의 첨예한 긴장이 흐른다. 그리고 공동전선을 펼쳐 난관을 극복해 나가면서 서로의 진의를 확인한 양측은 잃었던 우정과 연대를 회복한다. 기본적인 플롯의 공통성, 그리고 ‘신뢰’와 ‘의리’ 문제를 줄기차게 다루는 점에서 두 영화는 동일한 주사위의 각기 다른 면이다.

이러한 신뢰와 의리의 화두는 춘자와 밀수왕 권상사(조인성), 적장을 끌어안은 논개 마냥 몸을 날리는 다방마담 옥분(고민시)과 세관직원 수복이의 사이에도 어김없이 관철된다. 달리 말하자면 ‘밀수’는 폭압적인 마초들의 범죄세계를 꿋꿋이 헤쳐나가는 ‘피도 눈물도 없이’(2002)의 수진과 경선이 종국에 ‘첩혈쌍웅’(1989)의 주윤발과 이수현처럼 화합하여, ‘영웅본색’(1986)의 이자웅처럼 의리를 저버린 옛 부하를 응징하는 영화인 셈이다.

한탕의 성공을 그리는 강탈영화에서는 놀이판에 뛰어드는 흥분과 쾌감이 강조되기 마련이다. 반면 류승완은 현실적인 무게감을 갖고 장르를 다룬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빈민촌 주민들처럼 ‘밀수’의 인물들은 개발도상국의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버려진 사람들이다. 살아가는 일 자체를 힘들어하지만,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탈출구를 찾아 몸부림치는 이들. 때문에 강탈영화에 따르는 일확천금의 횡재는 가상으로나마 시대의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에게 쥐어주고픈 보상이자 위안이라는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신나는 장르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작가 류승완의 바탕에는 여전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와 ‘주먹이 운다’(2005)의 뜨거운 휴머니티가 흐르고 있음을 ‘밀수’는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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