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원자폭탄의 아버지’ 삶과 고뇌…비극적 아이러니에 관한 통찰

오펜하이머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8-30 18:25:31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영화 한 편에 한 사람의 일대기를 온전히 담는 일이 가능한가. 현대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고 갖가지 논란을 몰고 다닌 인물.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렸지만 개발 이후에는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고, 진보적 이념을 지향한 휴머니스트였지만 양육에 불성실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등, 인격적으로 모순된 면모를 보여준 과학자. 남긴 업적의 여파로 오늘날의 인류와 세상에까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어떤 천재적 기인(奇人)의 삶을 손쉽게 미화하거나 전형적인 극의 구도 안으로 밀어 넣고 여과하려는 유혹을 뿌리친 채, 밀도와 긴장을 잃지 않고 3시간의 러닝타임을 들여 다루어야 한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기영화 ‘오펜하이머’(2023)는 그러한 야심의 산물이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스틸 컷.
‘오펜하이머’는 극단적으로 다른 화면 톤을 오가며 진행된다. 학창시절과 맨해튼 프로젝트, 1954년, 영화의 중심축인 문제의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컬러로 그려진 반면, 1959년, 오펜하이머(배우 킬리언 머피)의 몰락을 주도한 정적 루이스 스트로스(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상무부 장관 임명을 위한 청문회는 흑백영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편집은 시간대의 구분 뿐 아니라, 때로는 동일한 공간과 사건에 처해서도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두 개인이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로 쓰인다.

스트로스가 프리스턴 고등연구소로 오펜하이머를 초청해 소장직을 제안하는 순간은 두 번 중첩되며 영화의 핵심을 드러낸다. 스트로스의 관점에서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실무가와 과학자 양측 간의 괴리감이 강조된다.

오펜하이머의 관점에 들어와서야 우리는 둘 사이에 오갔던 대화의 내용을 알게 된다. 동상이몽(同床異夢).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험담을 하는 건 아닌가에 전전긍긍했지만, 정작 둘은 원자폭탄이 끼칠 사회적 영향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염려를 공유한다.

스트로스가 눈앞의 현실을 마주해 머리를 굴리며 처세에 매진하는 정치적 인간이라면, 오펜하이머는 현상의 이면에 자리하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 메타(meta)적인 문제를 염려하는 지성인으로 그려진다. 상반된 두 인간형의 충돌, 같은 현상을 바라봄에도 서로 이해될 수 없는 시선의 엇갈림과 어긋남. 오펜하이머의 몰락은 그가 과학자로서의 야망은 있지만, 이상의 실현에 필요한 정치적 수완은 모른다는 순진함과 단순성에서 비롯된다. ‘오펜하이머’는 천재와 범재의 대비를 그린 ‘아마데우스’(1984)의 정치적 재해석이다. 또한 영웅으로 추앙받은 개인이 경력의 정점에서 추락하고, 자신이 거둔 성취로 인해 도리어 고통받으며 스스로가 운명의 톱니바퀴 부속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아 가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의 현대적 변주에 다름 아니다.

천문의 이치를 읽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는 정작 발밑의 도랑을 보지 못해 걸려 넘어지고, 세상의 운명을 결정지을 힘은 저열한 속물과 광인(狂人)들에게 쥐어진다는 현실의 얄궂음이란. 단언컨대 ‘오펜하이머’는 위대한 영화이다. 건축적으로 구조화된 영화의 형식적 엄격함, 기교의 정밀함을 추구해온 놀란의 영화적 화술은 감정의 뿌리를 흔드는 숭고의 지경에 도달하고, 인류 역사의 좌절과 실패에 깔린 비극적 아이러니의 근원을 건드리는 통찰에까지 이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도청도설] 발가벗겨진 사우디
  3. 3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4. 4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5. 5[시민기자] ‘핑크 가을’ 내려앉은 대저생태공원
  6. 6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7. 7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8. 8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9. 9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10. 10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1. 1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2. 2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3. 3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4. 4[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北 적반하장 용납 못해…추가 도발 감행시 단호하게 대응”
  5. 5"법령 검토해 결정하겠다"던 김지용 중수청장, 국무회의 참석
  6. 6[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7. 7여도 야도 시중은행 연쇄 해킹 사태 집중 질타
  8. 8이 대통령, "생애 첫 연금 지원사업 신청한 사람만? 실질적 불평등"
  9. 9통일부. 北 대남확성기 재개 위협에 “문제 해결 노력에 호응” 촉구
  10. 10이 대통령 "관행·절차 얽매이지 말고 주택 공급 전격전 펼치길"
  1. 1금양 부활할까…AI 데이터센터 진출 임시주총서 가결
  2. 2[뭐라노] 금양 부활할까
  3. 3데이터센터로 돌파구…이차전지 공장 유치권 등은 과제
  4. 4부산 명물 삼진어묵, 상하이 입맛 잡는다
  5. 5내년 주목할 세계 여행지 톱10에 부산… 국내 유일
  6. 6부산 몸집 키우는 해양금융 생태계
  7. 7"원전 사업자 한수원, '안전 미준수' 과징금만 5년간 338억원"
  8. 8선원노련 김두영 위원장, ITF(국제운수노련) 집행위 선출
  9. 9“사업비 턱없이 부족”… BS한양, 가덕도신공항 컨소시엄 탈퇴 의사 밝혀
  10. 10이번엔 할리스…고객 개인정보 276만 건 유출(종합)
  1. 1연 300만 찾는 청사포, 대중교통 하루 8대 마을버스뿐
  2. 215년 발암 석면지붕 슬레이트 치웠는데 증가? 실태조사부터 부실
  3. 3공항공사, 김해서 5년간 2575억 벌고도 투자 451억뿐
  4. 4양산 사송신도시 거점 준공…수영장·도서관·건강센터 한곳에
  5. 5태종대 집와이어 안전 괜찮나…시험탑승 정상도착 40% 그쳐
  6. 6이번에는 진짜 가야할 때…‘부캉이’ 다시 바다로 보낸다
  7. 7“미래대응기금 조성, 교부세 축소 안 돼”
  8. 8어린이집 앞 석면지붕 빼곡…소유주들 빈집 등 이유로 방치
  9. 9상습 음주운전 꼼짝마…후 불어야 시동 걸린다
  10. 10양산시, 종합장사시설 후보지 오룡마을 선정…2030년 말 준공 목표
  1. 1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2. 2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3. 3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4. 4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5. 5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6. 6돈으로 우승은 못 샀다…MLB 월드시리즈 연봉 하위팀 반란
  7. 7‘통산 최다안타 3위’ 손아섭, 두산에서 방출…선수 생명 이어갈까
  8. 8배드민턴 '세계 최강' 안세영, 여자 단식 최다우승 기록세워
  9. 9부산시청 고은, 전국체전 金…女사격 비공인 세계신기록
  10. 10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