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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잠’ 은밀히 감춘 문제의식…웰메이드 공포물의 표리부동 미덕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09-13 18:25:4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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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만큼 겉과 속이 다른 장르도 없을 것이다. 호텔에 관리인으로 투숙하다 망령에 빙의된 작가의 광기를 그린 ‘샤이닝’(1980)이 미국이란 국가의 역사와 실상에 대한 상징과 암시로 가득 차있고, ‘기담’(2007) 또한 일제강점기에서 유신시대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은유로 비판의 칼날을 감추고 있지 않았던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서사와 장르적 컨벤션의 이면에 이스터 에그(Easter Egg) 마냥, 문제의식을 은밀히 감춰놓는 숨바꼭질에서 감독들은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을 법하다.
영화 ‘잠’ 스틸 컷.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 ‘잠’(2023) 역시 웰메이드 공포영화에 따르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미덕을 관철해낸다.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장르 관점으로 보거나, 감추어진 코드와 논리를 읽어내려는 분석적 관점에서 보나 말이 성립하는, 이중적 독해가 가능한 모호성의 설계에 있다.

아내인 수진(정유미) 시점에서 남편 현수(이선균)의 몽유병 발병,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상증세는 아파트 이웃이던 할아버지의 귀신이 들린 탓이다. 그러나 ‘친절한 금자씨’(2005) 이래의 박찬욱 영화가 그러하듯, 감독은 줄거리와는 별개로 이미지의 축적을 통해 의미를 조형하는 교묘한 화술을 취한다.

감독의 연출력이 지닌 탁월한 면면은 여러 군데서 관찰된다. 남편이 잠결에 투신하는 걸 막기 위해 설치한 철창은 어두워져 가는 화면의 밝기, 밖에서 쏟아지는 비의 수직적 운동, 젖어 들며 곰팡이가 번질 듯 침윤하는 천장, 화장실 욕조로 내몰리는 지속적인 공간의 축소 등, 다중적인 이미지의 조합과 맞물리며 폐소공포증이 일 듯한 감옥의 분위기로 신경을 옥죈다. 화목한 신혼부부 가정의 표어는 부감으로 잡히는 문지방의 경계선, 자물쇠라는 차단의 이미지와 충돌하며 배반당한다.

영화의 비밀은 빛과 어둠의 변화에서도 발견된다. 침상에 같이 누워있어도 수진은 스탠드 빛이 닿는 위치에 있는 반면, 현수는 어둠에 묻혀 모종의 경계가 만들어진다. 현수는 낮에는 멀쩡하지만 밤에는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데, 전자가 깨어있는 표면의 의식과 인간성의 시간이라면, 후자는 무의식과 광기, 동물적 욕망의 시간이다.

침낭에 들어간 현수는 마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유아의 이미지와 포개지는데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무당에 따르면 다른 귀신이 묻어왔다지만, 현수의 정신분열적 면모는 동일인물의 이중적 심리, 즉 욕망은 채우고 싶지만 결혼에 따른 책임감은 지고 싶지 않은 남성의 이기심 또는 유아적 퇴행성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정상적인 의식과 무의식적 욕망의 대치구도는 수진이 온 집안을 부적으로 도배한 3막에서 정반대로 역전된다. 가정과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광기의 모성, 강박충동의 세계에 빠진 수진에겐 붉은빛, 치유된 현수에게는 흰빛이 비치며 대비를 이룬다. 현수에게 배우라는 직업을 부여한 설정은 결말에 이르러 장르적 매무새와 내적 메시지, 영화의 분리된 양면을 모두 매듭짓는다. 설득되지 않는 아내 앞에서 가장 배우다운 수단인 연기로 일생일대 승부를 던지는 현수의 모습은 재치 넘치는 극적 마무리인 한 편으로는, 다른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한다.

결혼이란 소꿉놀이와 같은 일종의 연극적 실천이며, 따라서 진심이 담긴 수준의 감동적인 연극을 수행하지 않고서는 사랑도, 관계도 유지되지 않는다는 인간사의 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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