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큐레이션 서점 문 연 강동훈 대표
- 부산 최대 독서모임 ‘사과’ 운영자

- 골목 식당·카페 사장님 관심 둘 만한
- 마케팅·기획 주제 북토크 열다보니
- 자연스레 끈끈한 ‘문화 연대’ 생겨나
- 정부 ‘청년공동체 활성화’상도 받아

- “다들 왜 부산 안 떠났냐고 묻는데
- 왜 떠나야만 한다는 전제 하는가
- 지역서 문화생태계 뿌리 가꿔볼 것”

외부인이 부산을 떠올릴 땐 바다가 펼쳐진 광안리나 해운대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부산의 젊은이들이 찾는 ‘핫플’ 이라고 하면 단연 부산진구 서면 권역의 전포동 일대가 첫손에 꼽힌다. 낮에는 각종 공방을 찾아 사진을 찍고 밤에는 여러 맛집을 찾아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꽃을 피운다. 높지 않은 3, 4층 건물이 이어지고 새 건물도 거의 없는 전포동 일대지만 오래된 건물에 아기자기하게 인테리어 한 가게들은 오히려 ‘힙한’ 모습을 만들어낸다.

이런 전포공구길에서 커뮤니티형 책방인 크레타를 운영하는 강동훈(37)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일대 젊은 가게 운영자들의 연대를 꿈꾸고 있다. 최근 골목 커뮤니티 형성 노력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2023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 독립서점 크레타의 강동훈 대표가 책방 서가에서 크레타를 통한 커뮤니티 활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부산 최대 독서모임 사과의 대표이기도 하다.

■서점이 골목 커뮤니티 중심으로

강 대표는 ▷지역 소상공인 역량강화 북토크 ▷소상공인 브랜드 홍보영상 제작 ▷프로그램 참가자 네트워킹 모두 3가지 활동을 펼쳐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5월 커뮤니티형 책방 크레타를 전포공구길에 오픈했다. 지난 10월까지 마케팅이나 조직 기획 등 소상공인의 관심사를 겨냥한 강사 초청 북토크를 기획해 골목 소상공인을 책방으로 불러모았다. 초기에는 참여율이 높지 않았지만, 갈수록 참여가 늘어 사업 후반에는 공구·베이커리·음식점·찻집 등 다양한 업종의 골목 소상공인이 책방 크레타를 찾았다.

강 대표는 “결과보다 이 사업을 통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에 대해 그 가능성을 제시한 점을 높게 평가한 것 같다”며 “처음에는 골목 사장님들이 참석을 해주실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참석률을 높일 수 있는 시간을 고민하고,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고심해 실행에 옮기니 점차 찾는 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엔 이런 활동을 하려면 부산역의 유라시아 플랫폼 등 먼 곳까지 나가야 했는데 골목에서 출근 전에 만나볼 수 있는 북토크라 아주 좋다는 반응이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크레타 내부를 장식한 참가자의 후기.

책방을 운영하는 그가 골목 상인들을 연결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로컬’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답했다. 강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백양초 백양중 만덕고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한 지역 인재다. 그는 “부산에서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산 출판 업계는 계속해서 쪼그라들었다. 이 업계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선 돌파구가 필요했다”며 “책방은 책을 팔고 독서모임만 하는 곳이 아니다. 문화를 엮어내고 만들어 내는 앵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행사가 마음의 벽을 허무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본다. 내년에는 커뮤니티를 본격적으로 활성화하고 싶다. 아무 목적 없이 골목 가게의 소상공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무언가 만들어진다. 혼자만의 의지론 할 수 없지만 서로 뜻이 통한다면 내년에는 골목 브랜드를 소개하는 로컬 매거진과 골목 브랜드를 큐레이션해 묶는 작은 이벤트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강 대표는 “왜 부산을 떠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 질문 자체에 오류가 있다. 왜 부산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느냐”며 “우리는 부산을 못 떠난 것도 아니고 안 떠난 것도 아니다. 그저 부산에서 태어나 살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부산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독서모임 ‘사과’에서 크레타까지

크레타 간판.

강 대표가 커뮤니티형 책방 크레타의 문을 연 데에는 독서모임 ‘사과’의 영향이 컸다. 그는 2011년부터 이 모임을 운영 중이다. 현재 사과는 부산 최대 규모 독서모임으로 성장했다. 3~6월에 진행하는 상반기 모임과 9~12월 하반기 모임이 있다. 분기마다 10여 개 모임이 열리고 크레타를 찾는 모임원은 매월 200명가량이다. 모임 주제는 편독을 피하고, 주제의 확장성을 추구하는 ‘베이직’, 한 명의 작가 작품을 파고드는 ‘작가 읽기’, 소설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소설가와 소설 읽기’ 등 다양하다.

그는 “그동안 부산의 도서 생태계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동네 서점과 연계해 모임을 진행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모임 공간만 마련하려 했지만 제대로 책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 책방 크레타를 열었다”며 “크레타는 ‘이웃 작가’의 다양한 책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크레타는 강 대표가 선별한 책을 판매하는 ‘큐레이션 책방’이다. 책방 내부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셀프(Self) ▷글쓰기에 관한 책을 모은 리딩(Reading) ▷로컬사업과 이웃 작가에 관한 로컬(Local) 등 6개 섹션으로 나뉜다. 이웃 작가의 책은 상시 10% 할인해 판매하고 가장 눈에 띄는 매대에는 이웃 작가의 책이 진열돼 있다.

그는 “독서모임의 매력은 다양하다. 지적 허영심이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네트워크 장이 될 수도 있다”며 “개인의 독서와 사회적인 독서는 다르다. 모임을 통해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눴을 때 비로소 책을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사람도 있다. 진짜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골목의 힘이 부산의 힘

독립서점 크레타가 진행한 전포공구길 다양한 업종 종사자를 위한 프로그램 장면. 크레타 제공

크레타는 더욱 적극적으로 ‘골목의 브랜드 커뮤니티’를 추구하지만, 부산에는 느슨한 강도로 이웃과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독립책방도 많다. 각자 성격이 꽤 달라 대표하는 단체는 없지만 부산 곳곳에 50여 개 동네책방이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중구에서 책 만들기 클래스를 운영하는 ‘피스 카인드 홈’, 수영구 망미동에서 전시와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비온후’, 연제구 부산교대 앞에서 그림책에 맞는 공연·전시도 활발히 펼치는 ‘책과 아이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업계에서는 책방에서 만든 커뮤니티의 연대감이 부산의 문화생태계를 뿌리부터 건강하게 가꿀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남구에서 독립책방 ‘나락서점’을 운영하는 박미은(35) 대표는 “책방이 있는 골목과 없는 골목의 연결감은 차이가 있다. 책방은 지역에서 상생하는 방법을 찾는다”며 “책은 사람을 잇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 대한 애정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책방을 통해 만난 사람에게서 공감·위로·치유를 얻는다. 지역소멸은 복합적인 현상이다. 책방을 통해 얻는 지역에 대한 애정은 분명 희망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차미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커뮤니티가 지역소멸의 대응 축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끊이지 않는 지속가능성이 필요하다. 지역에 애정을 가진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