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발견한 일본어 편지 속
-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움 담아낸
- 영도 출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 BIFF 상영 뒤 각국 영화제 초청
- “영도에 정착한 어머니 추억 찾기
- 세 자매 삶까지 함께 그렸어요”
오랜만에 부산을 배경으로, 부산 사람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이야기하는 신인 감독이 등장했다. ‘교토에서 온 편지’(개봉 6일)를 연출한 김민주 감독이다. 영도 출신 김 감독은 어머니와 외할머니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재 부산에 사는 젊은이들의 고민도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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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를 연출한 부산 출신의 김민주 감독.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이야기와 부산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부산 출신의 배우들과 함께 영화화했다. 판씨네마 제공 |
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교토에서 온 편지’는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일본어 편지에서 50년 전 어머니가 일본에서 부산으로 왔고, 외할머니가 교토의 정신병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 자매 이야기를 담은 가족 영화다. 세 자매 역을 한채아 한선화 송지현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일본에서 부산으로 건너온 어머니 역을 차미경이 맡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판씨네마 사옥에서 만난 김 감독은 “2019년에 영화에서처럼 가족이 편지에 적힌 일본 주소를 찾아갔는데 경찰서, 동사무소를 가봤지만 별 소득 없이 돌아왔다. 엄마가 일본 고향을 찾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연출하려 했으나 당시 노재팬 운동이 일어나고, 팬데믹이 이어지며 일본 가기가 힘들어졌고 극영화로 선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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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일본어 편지에서 50년간 가슴속에만 묻어왔던 어머니의 소중한 비밀을 알게 된 부산 세 자매 이야기를 담은 가족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다수의 세계 영화제에 초청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판씨네마 제공 |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는 자전적 이야기에 영도에 사는 각기 다른 나이대인 세 자매의 삶이 덧붙여지면서 전체 영화의 틀이 잡힌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엄청 구조적으로 쓰는 편이다. 아빠 없는 집안에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 영도를 떠나지 못하는 K-장녀, 서울에서 작가를 꿈꾸며 일하다가 다시 돌아온 둘째, 댄스대회를 통해 부산을 떠나고 싶은 고등학생 막내, 그리고 새로운 고향 영도에 정착한 어머니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순환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 중 어머니인 화자는 평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지 않다가 자신이 치매인 것을 인정한 뒤 처음으로 “고향(교토)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김 감독은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다”며 “치매라는 병도 어머니의 잊혀가는 기억을 딸들이 채워준다는 순환의 의미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세 자매가 사는 집과 주요 촬영지를 영도로 택한 것도 김 감독이 가장 잘 아는 동네이면서도 영도만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이다. 영도에서 고교 시절까지 보낸 김 감독은 “영도는 역사적으로 피란민이나 이방인이 정착해서 살았다는 점도 있고, ‘섬’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떠나고 돌아오는 느낌을 조금 더 증폭해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내용을 관통하는 무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영화에는 대형 카페나 맛집이 들어서며 관광지로 바뀌어 가는 영도 모습이 아니라 영도 토박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담겨 있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부산말을 쓸 줄 아는 것이 중요했다. 김 감독은 “부산말은 모든 배우에게 적용되는 것이었다. 배우들이 실제로 부산에 살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디테일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채아 한선화 차미경은 모두 부산이 고향으로, 진짜 부산 사람의 사연을 들려준다.
댄스대회를 준비하는 막내 역으로 송지현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는데, 부산 출신이 아니어서 녹음된 대사를 잠들 때까지 들으며 완벽해지도록 연습했다. 김 감독은 배우에 대한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부산 독립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부산 영화 퀸’이 된 한선화에 대해 “선화 언니는 시나리오를 보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모두 질문하고 필기를 많이 한다. 성격도 활발해 촬영장에서 많은 힘이 됐다”고 했다. 한채아에 대해서는 “제가 엄청 디테일하게 연기 연출을 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편안하다고 원하는 것은 다 말해달라고 하더라”며 만족해했다.
이 영화는 연출 주연 제작 촬영 조명 미술 분장 동시녹음 조감독 등 현장 모든 키 스태프가 여성인 진정한 ‘F-RATED’ 영화다. 김 감독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 같이 작업했던 여성 촬영감독님이 합류하면서 조명 감독을 데리고 왔는데 이분도 여성이었다. 조명감독님이 부산에서 활동하는 여성 PD님을 소개했다. 이런 식으로 키 스태프가 모두 여성이 돼 버렸다”며 웃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영된 ‘교토에서 온 편지’는 이후 프랑스 브줄국제아시아영화제, 스페인 이매진인디아국제영화제, 런던 한국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았다. 김 감독은 “처음 해외 영화제 갔을 때는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그 나라 관객들이 ‘우리 할머니는 어느 나라 사람인데 우리 가족도 비슷하다’며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 우리보다 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여서 더 공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자랑했다.
평범한 듯하지만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작들을 닮았다는 평을 듣는 김 감독은 “그런 표현은 영광이지만 너무 부담스럽고, 아닌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논리적이면서 입체적인 시나리오를 쓰는 능력과 일상에서 특별함을 담담하게 끄집어내는 연출력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