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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노송의 마중길…그대 근심은 여기 놓고 오게나

신록의 계절…근교 숲산책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4-05-15 19:11:28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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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 가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를 알 줄 알았다.

다만,‘무’자를 춤출 무(舞)가 아니라 없을 무(無)로 잘못 아는 이는 좀 있겠거니 했다.

바람이 없음을 뜻하는 무풍(無風)지대, 무풍(無風)에어컨 같은 표현에 우리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춤추는 바람을 뜻하는 ‘무풍(舞風)’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지는 않는다.



꾸준히 나들이도 하고 세상 물정도 좀 아는 친구 2명에게 “통도사 무풍한송로를 기사로 써도 되겠느냐”고 물어봤다.

부산에서 무척 가깝고, 유명한 통도사를 여행기사로 쓰는 일이 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 반응은 똑같았다.

“무풍한송로? 그게 뭔데?”

아차! 그때 깨우쳤다.

통도사에 가더라도, 자동차를 몰고 산문에서 우회로를 달려 곧장 경내까지 오가는 사람이라면 이 멋진 흙길·숲길을 모를 수 있겠구나.

5월 신록 속에 아늑하게 빛을 내고 있을 무풍한송로를 기사로 쓸 자신감이 생겼다.


# 익숙한 통도사의 생경한 숲길 ‘무풍한송로’

5월 신록 사이로 사람들이 무풍한송로를 걸어 통도사로 걸어가고 있다. 짙푸른 소나무가 춤추며 손님을 반긴다.
통도사 영축문화연구원이 엮어 2022년 펴낸 책 ‘한 권으로 읽는 통도사’(담앤북스)를 보면, 통도사는 646년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지금 자리에 창건했다. 그 뒤로 1400년 통도사는 줄곧 지금 자리에서 줄곧 통도사였다. 물론, 지금도 통도사이다. 이건 참 대단한 일이다.

무풍한송로는 통도사 산문에서 경내 입구(통도사성보박물관)까지 이어지는 길이 1.6㎞, 폭 5m 솔숲 흙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산뜻하게 늙어가면서 더욱 아름다워진 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추는 춤을 느낄 수 있다. 소나무는 춤추고 통도천은 서늘한 기운을 내준다. 당신은 이 길 위에서, 착해진다.

춤추는 노송 사이로 걸으며 마음과 몸에 낀 때가 벗겨지는 느낌을 받을 즈음 1400년을 이어온 통도사 경내로 들어선다. 그 뒤로는 알아서들 하시면 된다. 금강계단을 구경하거나, 통도사 대웅전 고졸한 아름다움에 놀라거나, 찻집에서 연잎차를 마시거나.

김한수 종교전문기자가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성파 큰스님과 함께 2023년 쓴, 매우 재미있는 책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샘터)에는 성파 종정이 중심이 되어 통도사 일대 무분별한 관광 개발 시도를 막고 끝내 자연을 지켜내 무풍한송로가 탄생할 바탕을 다진 일화가 나온다. 통도사를 비롯한 7개 사찰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니, 고마운 혜안이다. 무풍한송로는 2018년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생명상)을 받았다. 통도팔경에서 무풍한송로는 제1경으로 꼽힌다. 무풍한송로는 마음이 복잡할 때, 세사에 시달릴 때, 조금 더 평화로워지고 싶을 때 생각나는 바람길·숲길이다.
경남 양산시 어곡동 카페 ‘시작’ 전경. 나무의 명소다.
# 전국 희귀수가 한 곳에…양산 ‘카페 시작’

이번 무풍한송로 취재에서는 뜻밖의 큰 수확이 하나 더 있었다. 널리 알려진 데다 꽤 가까운 통도사 무풍한송로만 소개하고 철수하기에는 보석 같은 5월 신록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몇 주 전 경남 양산시 어곡동 숲속에 보기 드물게 잘 가꾼 풀·꽃·나무 명소가 있다는 제보가 날아들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카페라고 했다. 지도를 보니 통도사와 직선거리 12㎞ 남짓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가기에 멀지 않다. 한 번에 두 군데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무풍한송로에 들렀다가 ‘카페 시작’에 가게 됐다. 정식 이름은 ‘어실정원 시작’이다. 어실(御室)은 어곡과 관련이 깊은 지명으로 보였다. 주소는 경남 양산시 어실로 383의 182인데 인터넷 지도에서는 ‘양산 카페 시작’ ‘어곡 카페 시작’으로 검색이 됐다. 어곡제2일반산업단지 공장을 지나 좁은 길을 따라, 여기 카페가 있을까 싶은 언덕배기로 올라서니 신비한 나무 나라, 풀꽃 천국이 나타났다. 삽 들고 장화 신고 풀·꽃·나무를 가꾸느라 여념 없던 심일(70·사진) 대표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저는 오랜 세월 부산 영도에서 선박 관련 사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제 고향은 밀양 산골입니다. 20대에 바닷가 부산으로 와서 열심히 살았지요. 15년쯤 전부터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이나 취미를 궁리하게 되더군요. 인연이 닿아 이곳에 터(1만3223㎡·약 4000평)를 마련했고 그때부터 가꾸고 또 가꾸었지요.” 양지바른 터와 응달진 골짝, 맑은 개울, 좋은 공기를 두루 갖춘 이곳에 ‘나만의 나무·꽃·풀 천국’을 가꾸는 일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심 대표와 가족은 카페를 열었다.

‘카페 시작’의 첫 번째 자랑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사들여 옮겨 심은 많은 나무이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도 많다. “이 향나무를 보시겠어요? 안동에서 사서 데려왔습니다. 수령이 450년쯤 됩니다. 기운이 참 좋은 나무입니다.” 심 대표는 봉화 영천 예천 고령 홍천 옥천 등지에서 매입하고 운송해 온 귀한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소개했다. “뒤쪽 언덕에는 수국 단지를 조성했습니다. 수국이 피면 참 아름답습니다. 조만간 방갈로를 몇 동 지을 예정입니다. 손님이 나무와 풀꽃 사이에서 편안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카페 1층에서는 숲과 산을 보며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2층은 모임·전시가 가능한 문화공간이다. 아직은 덜 알려졌고, 숲길·둘레길을 조성하는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외딴 카페여서 진입이 조금 까다로운 점도 있다. 그래도 이 ‘나무 명소’가 완연히 자리 잡고 더 알려지면 양산에 좋은 숲속 휴식처가 하나 더 보태질 것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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