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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피아노만 쳤는데…데뷔작 칸 초청돼 영광”

영화 ‘찬란한 내일로’ 유선희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4-05-29 19:20:39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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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伊서 피아니스트로 활약 도중
- 우연히 친구 따라 배우 오디션
- 거장 모레티 감독의 선택 받아
- 분량 적지만 중요한 인물 연기

- “영화도, 음악도 ‘예술적 표현’
- 두가지 다 빼어나게 하고 싶다”

영화 ‘아들의 방’‘나의 어머니’ 등을 연출한 이탈리아의 거장 난니 모레티 감독의 영화 ‘찬란한 내일로’(개봉 29일)에는 처음 보는 한국 배우가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는 유선희로, 모레티 감독의 선택을 받아 연기에 첫 도전했다. 작은 분량이었지만 “처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 “주목해야 할 새로운 얼굴”이라는 외신의 호평을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찬란한 내일로’에서 한국인 통역사 역을 맡은 유선희. 이탈리아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난니 모레티 감독의 ‘찬란한 내일로(아래 사진)’를 통해 첫 연기에 도전했다. 본인·에무시네마 제공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찬란한 내일로’는 영화도 일상도 위기에 처한 명망 있는 감독 조반니가 찬란한 내일로 향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모레티 감독이 직접 조반니 역으로 출연했으며, 이탈리아 대표 배우 마르게리타 부이가 아내 파올라 역을 맡았다. 유선희는 위기를 맞은 조반니 감독의 영화에 구세주가 되는 한국 제작자의 통역사로 출연해 적은 분량이지만 영화의 모멘텀을 끌어내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최근 ‘찬란한 내일로’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은 유선희는 “이탈리아 배우 친구가 자기 에이전시에서 한국계 배우를 찾는다고 해 우연히 시작한 일이 상상도 할 수 없게 커졌다”며 “한국 관객과 만나게 돼 설레고 영광이다”며 피아니스트가 아닌 배우로 한국을 찾은 소감을 전했다.

올해 42세인 유선희는 서울에서 예원학교 졸업 후 14세 때 이탈리아 로마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 조기 졸업을 하고, 산타 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거장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과 만나고 계속 이탈리아에 남아 각종 국제 콩쿠르 수상과 함께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에 초대받으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모레티 감독님은 이탈리아에서 워낙 유명하고 거장이어서 될 것이라는 기대 없이 그냥 오디션에 갔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여러 가지 버전의 연기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1주일 후 감독님이 저를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줬다”고 오디션을 떠올렸다. 그런데 정작 캐스팅 소식을 들은 것은 그 후 한 달이 더 지난 2021년 가을이었다. 실은 다른 배우들을 더 만난 것인데, 결국 그녀가 한국인 통역사 역을 맡게 됐다.

‘찬란한 내일로’ 촬영은 2022년 시작됐다. 유선희는 “그런데 제가 음악만 해서 영화나 연기 세계를 전혀 몰라 준비도 못 한 채 촬영장에 갔다”며 “제가 너무 ‘무대뽀’였다”고 웃었다. 대본이라도 먼저 받으면 대사 연습이라고 했을 텐데, 현장에서도 대본이 수정되기도 하는 모레티 감독의 스타일상 조연들에게는 전날 대본이 주어져 힘든 점도 있었다.

그녀는 “저는 항상 밤새 대본을 달달 외워 세트장에 갔다”며 “그렇게 세트장에 처음 가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사람이 있더라. 장면 하나하나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작업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배우로서 가지게 된 초심을 전했다.

신인 배우로서 첫 영화에서 세계적인 거장 모레티 감독과 명배우 마르게리타 부이와 호흡을 맞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직접 주인공을 연기한 모레티 감독에 대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어서 당연히 감독님이 하는 연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며 “감독님의 연출과 연기를 직접 볼 수 있어 큰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공통된 지인이 있고, 같은 동네에 살아서 알고 지냈다는 마르게리타 부이에 대해서는 “처음 촬영장에서 만났을 때 ‘너 여기 웬일이니?’라고 하더라”며 “평소에는 약간 소녀 같은 분인데 촬영에 들어가니까 ‘하늘에서 이렇게 내려와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감탄했다. ‘찬란한 내일로’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유선희가 한국 제작사의 이탈리아 영화 투자를 기념하며 소주를 준비해 와 “먼저 잔을 부딪치고 ‘건배’라고 외쳐 주세요”라며 건배를 제안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 대해 “감독님이 저보고 한국 문화를 잘 알 테니 즉흥적으로 해보라고 했다”며 실제로는 소주 대신 물을 마셨고, 하루 종일 촬영해 물배가 찰 정도였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찬란한 내일로’는 지난해 칸영화제(5월)에 앞서 4월 이탈리아에서 개봉했다. 미공개(미개봉)작 상영을 원칙으로 하는 칸영화제이지만 거장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이렇게 멋있는 작업을 내가 했구나’라는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영화관에서 자신의 첫 영화를 본 기분을 유선희는 전했다. 칸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것도 “사진기자분들이 ‘선, 선’ 하면서 자기를 봐달라고 부르는데 마치 다른 별에 갔다 온 것 같았다”며 즐겁게 떠올렸다.

연기에 첫발을 뗀 유선희는 “수많은 사람이 영화라는 한 가지 목표, 꿈을 위해 노력하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제 인생의 큰 경험이었다”고 영화 촬영을 통해 공동 작업의 맛을 진하게 느꼈음을 전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음악 스케줄을 잠시 뒤로하고 넷플릭스 미국 드라마와 이탈리아 단편영화 등에 출연하며 연기에 전념했다. 올해에는 음악에 전념해 6월에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연주, 여름에 이탈리아 투어, 9월에 솔로 피아노 앨범을 공개한다. 앞으로도 피아니스트로서,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약속한 유선희. “궁극적으로 두 가지 모두 예술적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목표다”라는 그녀의 말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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