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송 선생이 수집해 지켜낸 문화재 전시
- 조선시대 대표 걸작들 화제…오픈런 인기
- 12월 1일까지 개관기념전 ‘여세동보’
- 보유한 국보·보물 40건 97점 한자리
- 정선·김홍도·김정희·신윤복 작품 총망라
- 38m 길이 반원형 스크린 실감 영상도
지난달 초 대구 간송미술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혜원 신윤복…. 이름만 들어도 탄성이 나올 만한 조선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그것도 가까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여서였고,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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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간송미술관에 전시된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오직 ‘미인도’ 한 점만을 위해 조성된 전시공간에서 소수의 인원이 독대하듯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김용관 촬영·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아침부터 줄 선다’는 소문을 미리 입수하고 일부러 연휴가 막 끝난 이후 평일 오전 미술관으로 향했다. 부산에서는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한 시간 남짓 달리면 미술관에 닿을 수 있다. 수성 나들목에서 멀지 않아 도심 교통체증을 감수하지 않아도 돼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로 도로가 아니라 주차장에서 맞닥뜨렸다. 평일 오전이었고, 바로 옆 대구미술관은 심지어 휴관이었는데도 미술관에서 가까운 주차장은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몇 바퀴를 돌아 겨우 한 곳을 찾아내 밀어 넣다시피 주차한 후 미술관으로 향했다.
■간송미술관 in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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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해례본. 김용관 촬영·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간송미술관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의 일대기부터 짚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까지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은 그는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文化保國)’는 위창 오세창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해 온 인물이다.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가 일본으로 속절없이 반출되는 시기, 증조부 때부터 쌓아온 부를 상속받은 간송은 해외로 유출되는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자 간송미술관의 전신이 되는 보화각을 설립했으며, 광복 이후 일평생 모아온 회화 서예 도자 불상 등 소중한 문화재를 공개하고 그 가치를 연구해 왔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보화각은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1년에 2번 전시를 열어왔지만,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쯤부터다. 당시 김홍도와 신윤복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계기로 이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자연스레 작품을 소장한 간송미술관으로 발길이 이어졌던 것.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013년 서울 동대문디지털프라자에 별도의 전시 공간까지 마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991년부터 학예사로 간송미술관과 인연을 맺은 백인산 대구 간송미술관 부관장은 “그런 정도로는 해소가 안 됐다. 특히 안타까웠던 건 지역에서 온 관람객들이었다. 제주 부산 대구 광주에서 왔는데 비행기·기차 놓칠 것 같으니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그러던 중 2013년께 대구와 인연이 닿으면서 지역 미술관 논의가 시작됐고,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가 민족·애국의 마인드가 탄탄한 지역이라고 판단해 최종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6년 건립 운영 계약을 맺은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대구시는 본격적으로 미술관 설립에 착수했고, 총사업비 446억 원을 투입해 2022년 1월 착공 지난 4월 완공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8003㎡ 규모로, 6개의 전시실과 보이는 수리복원실, 아트숍, 강당, 휴게시설, 강의실 등을 갖췄다. 우리 문화재를 선보이는 장소인 점을 감안해 한국식 정원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등 건축물 곳곳에 전통을 녹여 넣은 점이 눈길을 끌었다. 건립에 필요한 사업비는 대구시가 부담했으며, 현재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위탁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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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 내 실감 영상 전시실. 김용관 촬영·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간송미술관은 오는 12월 1일까지 개관기념전시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을 함께 보배 삼아’를 열고 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보물 40건 97점을 내보이는 전시인데, 국보와 보물의 수만으로도 설렌다.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개관 첫 달은 평일에도 줄을 서야 할 정도였고, 개관한 지 한 달 훌쩍 넘은 지금도 주말이면 각 전시관 앞에서 대기해야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백 부관장은 “작품이 좋고 관심이 많아서 오래도록 보시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고 귀띔했다.
머무는 시간이 왜 그렇게 긴지는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깨달았다. 첫 번째 전시실은 간송 전형필이 비교적 초창기에 수집한 회화로 채워졌는데, 대중에게 잘 알려진 정선 산수화, 신윤복·김홍도·김득신의 풍속화가 총망라되어 있었다. 인물마다 한두 점이 아니라 10~20m에 달하는 전시관 한쪽 면 전부가 한 인물의 작품으로 가득해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려있는 곳이 있어 들여다봤더니 신윤복의 그림이었다. TV, 책 분명 어디선가 한 번은 본 그림을 눈앞에서 보니 나도 모르게 ‘우와, 이게 여기 있었어?’를 연발했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고미술품으로 꼽히는 신윤복의 ‘미인도’는 별도의 전시실에서 ‘영접’ 할 수 있었다. 오직 ‘미인도’만을 위해 조성된 이 공간에서는 소수의 인원이 독대하듯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어두운 방 그 한가운데 조용히 자리 잡은 ‘미인도’는 공간의 마력 속에서 새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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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간송미술관 외부 전경.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살렸다. 김용관 촬영·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미인도의 아름다움에서 미쳐 빠져나오기도 전,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해례본을 만났다. 서울 간송미술관을 제외하면 그간 훈민정음해례본 진본이 전시된 경우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 한글박물관이 전부. 그만큼 실물을 보기 쉽지 않았던 문화재여서 전시장에서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훈민정음과 현대미술의 융합을 시도했다. 청각 장애인, 다문화가정, 성인 문해 교육생 등 한글을 다루고 새롭게 접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미디어 작품을 함께 버무렸는데, 훈민정음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불교미술과 도자기, 서예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에서 시작한 전시는 간송 컬렉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등 시대별 도자 전시로 이어졌다. 주요 전시품은 개별 전시해 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실감 영상이 기다리고 있다. 38m 길이의 반원형 스크린 가운데 앉아 간송미술관 대표 소장품을 주제로 한 영상을 보고 있으니 내가 역사적 현장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다.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며 우리나라 예술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애국’의 마음이 끓어오른다.
■전시관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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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실 앞에 관람객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
간송미술관은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간송의 삶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국보·보물이 가득한 전시관을 모두 돌아보고 나면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그래서 변하지 않으면 낙오한 것으로 낙인찍히는 시대에 ‘지킴’으로 대변되는 간송의 삶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백인산 부관장은 “뭔가 변하더라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파멸과 소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며 “K-컬쳐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수록 그 원류에 대한 관심도 당연히 커질 것이다. 누군가는 K-컬쳐의 원석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지킴과 기준이라는 관점에서 간송의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은 앞으로 교육에 방점을 찍을 계획이다. 고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의 지속가능성은 교육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고민도 이어간다. 보이는 수리복원실을 상시로 운영하는 것도 이 같은 연장선에 있다. 백 부관장은 “현대미술은 돈을 주고 보는 것이고 고미술은 공짜로 보는 것이라는 인식을 전환하고 싶다. 앞으로도 팬덤 커뮤니티 운영 등 다양한 소통을 통해 간송이 가진 아이덴티티를 마음껏 알려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