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국 감독의 ‘원정빌라’(2024)는 일종의 B무비이다. 여기서 우리는 B급이라는 말에 갖기 마련인 선입견을 어느 정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저예산이라는 물적 조건의 상이함에서 기술적 완성도와 스펙터클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가난한 영화에는 다른 방식, 다른 매력으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데서 생겨나는 모종의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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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빌라’의 한 장면. 케이드래곤 제공 |
영화의전당에서 2024 부산영화기획전을 통해 선보인 다섯 편의 ‘메이드 인 부산’ 작품 중 한 편인 이 영화에선 익숙한 지역 사회의 풍경들이 장르를 구성하는 요소로 동원된다. 언제 재건축이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는 낙후된 지역 부동산 문제와 심심찮게 횡횡하는 사이비 종교의 현실은 스릴러를 위한 공간과 배경으로 재활용된다.
일단 영화의 큰 결함은 틀에 박힌 드라마의 진부함. 예컨대 삼촌인 주현(이현우)과 어린 조카 사이의 친밀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집어넣었을 장면의 상투성이나 대사의 낮은 품위는 극의 설득력을 적잖이 해친다. 호의를 가장한 컬트 교단의 교리가 서서히 퍼지면서 마을 공동체 전체를 잠식하고, 고립된 주인공이 이에 맞서거나 탈출한다는 식의 플롯 또한 숱하게 반복, 재생산 되어온 만큼 참신하다 보긴 어렵다.
그러나 예비 서사 부분을 넘기면서부터 ‘원정빌라’는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힘은 현실의 어떤 풍경, 익숙한 일상의 면면을 겨냥하고 환기하는 순간에 생겨난다. 주현 가족이 사는 203호의 위층 303호의 주민으로 주차 문제와 층간 소음 문제로 마찰을 빚는 신혜(문정희)의 변질된 모성애, 주변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며 민폐를 끼치는 개념 없는 행동과 교회에 들어 성실한 종교인을 가장하면서도 배어 나오는 타인에 대한 멸시와 선민의식, 끝없는 자기중심성은 배우의 호연과 맞물리며, 한국 사회에서 익히 보아온 인간형의 한 전형을 재현하는 강렬한 기시감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장르의 틀을 가져오면서 ‘원정빌라’는 남은 여백을 한국적 삶의 모습들을 실어 나르는 데 할애한다. 사이비종교 세력이 한편으론 부동산 이권의 배후라는 설정은 작위적이지만, 비밀 집회의 묘사에서 우리는 종교를 믿으면서도 내세의 구원에 대한 관념은 빈약하고, 대신 재산의 증식을 갈구하며 기도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된 종교관과 현세 중심적인 일원론적 세계관을 엿보게 된다.
다수의 ‘상식’과 ‘평균’에 부합되지 않는 이에게 집단적 압력을 가하며 ‘표준’의 존재가 되기를 요구하는 ‘조리돌림’은 성실함으로 주민들의 인심을 얻던 주현이 역으로 마을공동체의 이단으로 몰리는 상황으로 드러나는데, 이처럼 작은 다세대 주택은 장르 영화의 폐쇄적 무대공간인 동시에 한국적 습속을 집약한 미니어처의 소우주가 된다.
분명 ‘원정빌라’는 말끔한 만듦새나 예술적 독창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지역 기반에 독립영화 규모의 자본을 갖고, 장르영화의 몰입감을 자아내면서 그 안에 한국적 삶의 현실을 담고자 한 이 시도는 주목하고 응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직 미약하지만 ‘영화의 도시’라는 말에 걸맞을 미래의 부산 영화, 또 다른 ‘지역성의 영화’를 기대해 보는 것도 더는 단순한 몽상에 그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