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한국 상업영화 영상문법의 문제들

하얼빈(2024)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5-01-01 18:18:19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우민호의 ‘하얼빈’(2024)은 기능적이다. 정해진 각본대로 안중근의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역할에 머물 뿐 그 이상이 없다. 영상을 배우의 대사와 표정을 담아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만 다룰 뿐, 예술적 잉여를 창출하고 감정을 고양하는 지점까지 이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하얼빈’의 한 장면.
독립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떳떳하게 빛을 받으며 침대에서 편히 잠들 수 없다는 듯 방 한구석 그림자에 숨은 채 괴로워하는 안중근의 모습 등, 몇몇 장면은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상주의자 청년의 내적 심리를 드러내는 데 꽤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상은 순간에 그칠 뿐, 영화 전체를 곱씹어볼 지속적인 잔상은 남지 않는다.

‘남산의 부장들’(2020)에 이어 ‘하얼빈’에서 감독은 다시금 결말이 정해져 있는 역사적 사건을 운명의 소실점으로 삼고는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첩보극을 펼친다. ‘마약왕’(2018)에서 한 인물의 연대기 전반에 걸친 개별적인 에피소드를 두서없이 나열하면서 산만해진 플롯의 구멍을 노출했다면, 그와는 반대로 시간대를 압축하는 구성을 취함으로써 극의 밀도를 유지하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이건 발전이라기보다는 단점을 최소화해 나아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편법이자 착시효과에 가깝다.

배우의 얼굴과 연기를 담는 기능에 그치는, 평이한 선을 넘어 무감각한 샷과 리버스 샷의 반복은 이미지의 낭비를 낳는다. 만약 안중근의 저격이 극적으로 큰 감정적 충격과 울림을 자아내려면, 우선 저격 대상인 이토 히로부미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연출이 필요했을 것이다. 메이지 정부의 실권자가 가진 권력의 크기를 시각화하기 위해선 주변을 둘러싼 군중 이미지의 위압감, 호사스러운 미장센 가운데를 걸어가는 왜소한 노인의 대비를 이동촬영으로 포착했을 법하며,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하는 정략가의 노회한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선 릴리 프랭키의 연기에 실린 세부적인 뉘앙스를 포착하는 정밀한 클로즈업과 더불어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좀 더 늘려야 했다.

안중근의 최후 또한 사형대를 오르는 한 걸음마다 실리는 묵직한 무게감, 비장함을 끌어낼 연출의 안배가 필요했다. 그러나 감독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멀뚱히 서서 연극무대를 비추는 식의 평면적인 풀샷, 현빈의 근사한 얼굴이 안중근 역에 덧씌워짐을 과시하는 의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정면 클로즈업 등으로 안이하게 임한다. 장면에 들어가면 인물의 동선이 생생하게 재현된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프레이밍과 컷의 연결을 여기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의 연출 호흡이란 대개 이런 식으로, 물적 규모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딱히 전달할 의도랄 것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필름 누아르를 방불케 하는 극단적인 명암 대비에 차갑게 가라앉은 톤과 색조, 과감한 와이드 앵글로 할리우드 고전기 영상미학에 닿고자 하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역량이 추락 직전에 간신히 붙잡은 생존의 동아줄일 따름이다. ‘하얼빈’은 내러티브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급급한 나머지, 극에 정서적인 에너지를 더하지 못한 채 전시적 기능성으로 겉도는, 오늘날 한국 상업영화 영상 문법의 문제를 여실히 증명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3. 3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4. 4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5. 5‘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6. 6“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7. 7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8. 8경로당 어르신·어린이집 아동들 “홀몸 어르신 고소한 전 드세요”
  9. 9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10. 10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1. 1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2. 2“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3. 3“피지컬AI 항만 실증사업, 광양항 아닌 부산항서 해야”
  4. 4李 지지율 2주째 상승 37.9%…양당 지지도 오차범위 접전
  5. 5여야 만난 강신철 국방부 장관 “北 지뢰 확인 땐 상응 조치…은폐 없다”(종합)
  6. 6靑 재제청 요구 거부 조희대 “국감서 밝히겠다”(종합)
  7. 7부산시 ‘도시계획’ 조직개편 여파…시의회 상임위 간 신경전
  8. 8北 외무부상 "핵보유국 지위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어"
  9. 9‘인천대 교수 임용 특혜 의혹’ 유승민 딸, 입건없이 10개월째 수사만
  10. 10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3. 3HJ중공업 조선업계 첫 올해 임단협 타결
  4. 4안주고 덜준 보험금, 5년간 1000건 육박
  5. 53년물 국고채 4.1% 돌파…美 금리 급등 여파
  6. 6빚 갚으려고 또 빚…카드론 대환 23%↑
  7. 7“금융위 경험·네트워크로 부산 금융생태계 강화”
  8. 8부산 유주택 신혼 반토막…‘6억 초과’ 보유는 2.5배 급증(종합)
  9. 9시중銀, 부울경 전략산업 금융 확대…지역銀 영역침범 우려도
  10. 10AI로 ‘해상 교통 혼잡도’ 예측한다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3. 3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4. 4‘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5. 5“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6. 6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7. 7약발 없는 바가지 대책…인센티브·숙박세로 실효성 키워야
  8. 8약사 면허 빌려 28억 부당이득…환수 거부에 法 “토해내라” 쐐기
  9. 9공소시효 이틀 앞두고 세금 포탈 업자 송치…검·경 합동수사 빛 발해
  10. 10부산대 양산캠 유휴부지, 양산시도 나섰다…개발 TF 꾸려 대응
  1. 1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2. 2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3. 3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4. 4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5. 5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6. 6안세영, 천위페이도 가볍게 압승…결승 진출
  7. 7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8. 8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9. 9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10. 10[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부산 야구장 미래는
사직 역사성 있지만 대체구장 부담…북항 돔은 재원 관건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