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낡은 고전 속 흡혈귀의 부활

노스페라투(2024)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5-02-05 19:21:49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노스페라투’(1922)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고전으로 꼽힌다. ‘드라큘라’의 판권을 얻지 못하자 저작권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꾸고 각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자 브람 스토커의 부인이 제기한 소송에 패해 원본 네거티브 필름을 없애는 비운의 역사를 겪은 이 무르나우의 걸작은 장르의 효시가 되어 후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햇빛에 약한 흡혈귀와 같은 관습적 표현 상당수가 실은 이 작품에 연원을 두고 있다.
영화 ‘노스페라투’의 한 장면.
로버트 에거스의 ‘노스페라투’(2024)는 이 걸작 무성영화의 두 번째 리메이크다. 앞서 베르너 헤어조크가 클라우스 킨스키, 이자벨 아자니 주연으로 ‘노스페라투’(1979)를 내놓은 바 있다. ‘더 위치’(2015)와 ‘라이트 하우스’(2019)에서 도저했던 음울한 오컬트적 무드와 잔혹성과 고딕적 취향이 반영된 양식미, 중력처럼 인물을 짓누르는 깊이 있는 암부 표현을 떠올리자면 그 외에는 이 클래식의 부활에 적임인 감독을 찾긴 어려웠을 것이다.

무르나우의 기본적인 이야기에 헤어조크의 몽환적인 시각화와 캐릭터 해석(쥐 떼로 들끓는 적막해진 도시, 오랜 고독에 지친 남자로 노스페라투를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 양자 모두를 충실히 계승하면서 거기에 자신의 신경증적인 연출을 덧대는 일종의 총집대성. 현대화된 각색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이 정공법이 도리어 놀라울 법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현대의 ‘노스페라투’가 충실한 계승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이 낡은 고전을 되살리기로 한 건, 그 안에 담긴 의외의 동시대성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외로움에 떨며 곁에 있어 줄 누군가를 갈구하는 엘렌(릴리 로즈 뎁)의 기도로 열린다. ‘엑소시스트’(1973)에서 그랬듯 악마는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공허한 영혼을 좋아하고, 부모의 무관심에 방치되어 애정의 그릇이 텅 비어버린 사춘기 소녀는 훌륭한 표적이 된다. 애정 결핍으로 남편에게 집착하며 분리불안을 호소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암시되듯, 진정한 공포는 관계성의 부재에 말미암은 영혼의 파괴에서 오는 것이다.

엘렌을 찾는 노스페라투의 그림자가 마을을 뒤덮자, 일대는 쥐 떼와 전염병에 휩싸인다. 이때 감독은 이전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팬데믹 상황을 전면에 부각하고, 비상사태를 맞은 사람들의 혼란과 상실에 주안점을 둔다. 만연한 감염의 공포와 관계의 붕괴. 19세기 흑사병을 은유했던 흡혈귀의 저주는 코로나의 전 지구적 유행, 고립과 단절을 상기시키는 역사적 대응물로 우리가 경험한 재난의 기억에 고스란히 포개진다. 이로써 해묵은 고전의 리메이크는 시대의 초상을 반영한 우화라는 동시대적 의미를 새로이 획득하는 것이다.

무르나우의 원전은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직후 독일의 사회적 불안을 반영한 것이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혼란한 정치 상황과 불안한 경제, 원망의 대상을 찾는 외국인 혐오의 만연은 나치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새로운 리메이크의 등장과 반향은 ‘오래된 미래’의 위기를 다시 맞이해 흉흉해져가는 우리 시대의 무의식에 조응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도청도설] if, 손아섭
  2. 2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3. 3[포토에세이] 가을의 꽃 코스모스
  4. 4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5. 5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6. 6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7. 7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8. 8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9. 9[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10. 10부캉이 머물던 북항서 기름 유출…8시간째 모습 안 보여
  1. 1[속보] 국정원 "김정은 사망설 허위" 국회 정보위에 보고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4. 4이 대통령, 최길수 특별감찰관 임명
  5. 5李대통령 지지율 소폭 상승해 40% 회복…부정평가는 50%
  6. 6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7. 7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8. 8‘남북 MDL 상호확인·군통신선 복원’ 정부, 군사회담 北에 제안
  9. 9김민석, 소방노조 만나 “정책·예산으로 안전·처우 개선” 약속
  10. 10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3. 3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4. 4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5. 5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6. 6[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7. 7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8. 8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9. 9한은 기준금리 3% 동결…긴축 유지, 속도조절 속 내달 다시 인상 가능성(종합)
  10. 10한전, 개인정보 유출 1만1000명 추가 “조사 과정서 발견”
  1. 1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2. 2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3. 3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4. 4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5. 5부캉이 머물던 북항서 기름 유출…8시간째 모습 안 보여
  6. 6[속보] 여전히 수로 주변 배회하는 ‘부캉이’…“환경 적응하면 바다로 간다”
  7. 7[속보]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오세훈 2심 무죄
  8. 8“거제 양대 조선소와 상생 협의…남부내륙철도에 행정력 집중”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10. 10부산교통공사 노사, 파업 직전 잠정 합의…도시철도 정상 운행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5. 5‘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6. 6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7. 7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8. 8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9. 9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10. 10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돔? 재건축? 미래가치 따져야” “전문가 주도적 역할 부여를”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