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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사제(師弟)에서 도반(道伴)으로

승부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5-04-02 19:28:4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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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2025)는 사제지간의 대결을 다룬다. 전신(戰神)과 신산(神算)의 대결. 승승장구하며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조훈현(이병헌)이 1990년 최고위전 때, 자신의 문하에서 배운 내제자(內弟子·숙식을 함께하는 제자) 이창호(유아인)에게 패배를 맛보고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며 무관(無冠)의 신세로 내몰리다가, 와신상담 끝에 재기하기에 이르는 이 역전의 드라마는 이제까지 극화되지 않은 것이 이상할 만큼 극적인 요소가 풍부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세세한 면면이 각색되고 생략되었지만, 영화는 실화의 큰 틀에 충실하면서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의 관계를 조명한다.
영화 ‘승부’의 한 장면.
오프닝은 지극히 평범했다. 한국 바둑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고 업계의 정상에 선 인물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목적 외에는 펼쳐질 극의 전개와 모티브를 함축하는 정묘함이 보이지 않았고, 때문에 이 지점까지의 영화는 각본의 내용과 배우의 얼굴을 영상으로 실어 나르는 단순한 기능성에 급급한 한국 상업영화 문법의 문제점을 답습하는 범작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섣부른 예상은 소년 이창호가 약관의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기분 좋게 깨져나갔다.

바둑 경기에 중점을 두는 영화인만큼 영화의 성패는 흘러가는 승부의 형세를 어떻게 묘사하는가에 달려있었을 것이다. 김형주 감독의 연출은 바둑에 문외한인 관객이 보아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도록 유도하면서, 리듬감 있는 편집으로 액션을 방불케 하는 흥분과 박진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국에 임하는 두 기사의 기질과 성격 차이, 경기의 향방에 따른 내적 심리까지 자연스럽게 맞물려 표현되도록 안배하고 있다.

밀어붙이는 기세와 정석을 강조하는 날렵하고 불같은 스승. 정반대로 둔하지만 사려 깊게 큰 그림을 읽어내고 전체의 판을 차분히 짜나가는 애늙은이 같은 제자. 이창호를 가르치는 조훈현의 언어는 살벌하다. 그는 자신만의 바둑을 찾으려는 제자의 뜻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갠다. 그러나 사귐이 깊은 사제 관계는 일종의 유사 부자(父子) 관계이기도 하다. ‘아들’인 제자는 인정을 갈구하지만 ‘아버지’인 스승은 먼저 교육을 생각한다. 보통 스승은 제자가 충실한 계승자가 되길 바란다. 그는 자신이 일평생을 통해 터득한 비법을 전수하고자 다그치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아들은 괴로워한다. 이 충돌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간극은 여간해선 극복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란 가르치는 이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다듬어지지 않은 ‘꼴’로서의 이창호는 조훈현이라는 ‘틀’을 만나 사정없이 담금질 되고 깎여나가지만, 스승이라는 타자를 뚫어내며 되레 견고해진 제자는 오롯한 자신만의 ‘형’(形), 자기표현으로 나아가 실전의 공부를 완성하고 청출어람의 경지를 이룬다.

애초의 기대에서는 빗겨나 어긋났지만, 제자가 예상을 넘어선 성취를 이루고 그늘을 벗어나 대등하게 절차탁마하는 도반(道伴)으로 성장하는 것만큼 스승으로서 더 큰 기쁨과 보람이 달리 있겠는가? ‘승부’는 충성과 반역, 계승과 단절 사이를 오가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세대 간의 교우, 그 한 이상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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