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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투우의 풍경을 조명한 알베르트 세라 감독의 영화 ‘고독의 오후’. |
현대 사회의 투우는 위기에 처해있다. 특유의 화려함에 비례하는 잔혹함, 매혹적인 볼거리의 증가,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정권의 잔재라는 혐의까지.
투우는 다양한 맥락 안에서 논란이 되어 그 인기를 잃어가고,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투우라는 행위의 본질과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스페인의 주목받는 감독 알베르트 세라의 ‘고독의 오후(2026)’는 투우를 둘러싼 무수한 맥락을 제거한 채, 오직 투우 본연의 풍경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그 어떤 인터뷰나 자료화면, 해설 등을 배제한 채 오직 주인공인 세계적인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의 투우 경기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심지어 투우에 열광하는 관중마저도 거의 보이지 않도록, 카메라는 오직 안드레스 로카 레이와 소가 대결을 펼치는 경기와 그 전후의 얼굴과 신체만을 찍을 뿐이다.
그렇게 뼈대만 남은 투우 경기장에는 생과 사의 혈투만이 생동한다. 투우사의 칼이 소의 목덜미에 박히는 동안 둘은 누구의 피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다. 경기장 밖의 그 어떤 사정도, 논란도 사라지고 투우사와 소는 같은 운명에 묶인 두 생명으로 나란히 선다.
영화는 시작부터 인상적이다. 어둠 속에 서서히 나오는 소의 첫 등장. 그리고 이내 벌어지는 첫 경기. 이는 투우사가 느끼는 위압감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영화관의 관객을 투우장으로 데려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고독의 오후’가 이야기를 지속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치열한 경기가 주는 긴장감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알베르트 세라는 투우장 안에 3, 4대의 카메라를 설치해서 경기를 찍었고, 다양한 각도에서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경기의 구조를 집요하리만치 반복한다. 14번의 경기는 언제, 어디서 벌어진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끝없이 순환한다. 시간이 지워진 반복 속에서 투우는 승패를 다투는 경기가 아니라 매번 똑같이 되풀이되는 하나의 ‘의례’가 된다. 스릴 넘치는 스포츠도, 매혹적인 예술이나 잔혹한 유희거리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문장이나 상징 혹은 의미가 아닌 하나의 감각만을 남긴다. ‘지금’ 자신이 투우를 보고 있다는 느낌 그 자체 말이다.
죽음이 예정된 존재와 죽음 언저리를 맴도는 존재. 그것은 알베르트 세라가 천착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내 죽음의 이야기’(2013)에서 그는 쾌락의 화신 카사노바를 죽음의 화신 드라큘라와 한자리에 세웠고, ‘루이 14세의 죽음’(2016)에서는 한 시대를 호령한 태양왕이 침대에서 서서히 스러져가는 과정만을 거의 영화 전체에 걸쳐 응시했다. 투우 역시 그렇게 사라져가는 존재이며, 투우사는 그 마지막 자리에 선 존재다. 알베르트 세라의 카메라는 그것을 구원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새겨둘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