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민우의 인서트]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가능한 사랑’

  • 김민우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6-09-30 19:19:36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영화 ‘가능한 사랑’의 한 장면.
찌푸린 채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얼굴. 이창동 영화의 인상은 언제나 그랬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세상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서 마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간신히 버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박하사탕’(1999)의 영호(설경구), ‘오아시스’(2002)의 공주(문소리), ‘밀양’(2007)의 신애(전도연)가 그랬다. 물론 풀리지 않은 의문을 모호한 표정으로 숨긴 채 시치미를 떼는 ‘시’(2010)와 ‘버닝’(2020) 같은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가능한 사랑’은 지난 영화들과 달리 천진난만하리만치 투명하게 세상을 대한다. 마지막 장면의 환한 보름달처럼 말이다.

SP중공업 해고 노동자인 호석(설경구)은 해고 투쟁에서 실패한 뒤 아내 미옥(전도연), 아들 철(정섶)과 일상을 추스르면서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해고 노동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이들 부부 앞에 나타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예지는 호석의 증언을 끌어내기 위해 미옥과 친해지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도 이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삶과 마음, 욕망이 드러난다.

‘가능한 사랑’은 서사 구조에서부터 이전 작품과 차이를 보인다. 앞선 이창동의 작품은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한 사랑’은 실제 사건(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및 옥쇄파업 사태)을 모티프로 다룬 데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면서도 재현과 증언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문다.

영화는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는 예지와 그의 가족을 부유한 계층으로 설정한다. 이 대비는 관객에게 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예지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 안의 호석과 미옥, 파업 참여자들의 말은 실제 경험을 증언하는 것처럼 설정되었지만 관객은 그것이 배우들의 연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즉, ‘가능한 사랑’ 속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은 진실을 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것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마음이다. 영화는 인물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관객은 예지가 진행하는 인터뷰를 통해 미옥과 호석의 마음을 알게 된다.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집단 상담 장면에서는 그들이 끌어안고 살아온 상처와 감정을 마주한다. 오직 금수저 집안인 상우만이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작품 속 그가 드러내는 것은 육체를 통한 욕망뿐이다. 이렇듯 ‘가능한 사랑’은 인물의 행동과 감정에 숨은 의도를 두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동안 이창동의 인물들은 거대한 가치와 의문 앞에 짓눌려 왔다. 한국 현대사의 상흔, 장애, 신과 용서와 구원, 폭력의 가해와 이로 인한 감정들을 견뎌내느라 언제나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만 남은 이번 영화에서 비로소 그들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된다. 연기나 편집으로 통제할 수 없는 바다의 물결 속에서 미옥과 상우가 수영하는 장면을 보며 이창동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인물이 자유로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창동은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에서 사랑이 가능하다고 꿈꾸기 위해 자신의 인물들을 믿어보기로 한 것은 아닐까.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4. 4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5. 5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6. 6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7. 7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8. 8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9. 9[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10. 10[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3. 3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4. 4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종합)
  5. 5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6. 6李대통령 “국무회의 비공개 동의못해…할말 못하는 국무위원 없다 확신”
  7. 7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8. 8이 대통령, 김지용 첫 출근에 "피아구별 없이 엄중 수사하길"
  9. 9이혼소송 중 주소 노출…서울고법원장, 아내 살해 공무원 사건에 “제도개선”
  10. 10‘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1. 1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2. 2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3. 3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4. 4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5. 5‘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6. 6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7. 7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8. 8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9. 9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10. 10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6. 6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7. 7“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8. 8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9. 9거짓자백 받았나…法, 17년전 ‘창원 택시기사 살인’ 재심청구 인용
  10. 10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 배재정 전 의원 실형 구형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선수 공간까지 체험하는 돔투어…야구 테마 복합문화시설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