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영화 ‘가능한 사랑’의 한 장면. |
찌푸린 채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얼굴. 이창동 영화의 인상은 언제나 그랬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세상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서 마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간신히 버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박하사탕’(1999)의 영호(설경구), ‘오아시스’(2002)의 공주(문소리), ‘밀양’(2007)의 신애(전도연)가 그랬다. 물론 풀리지 않은 의문을 모호한 표정으로 숨긴 채 시치미를 떼는 ‘시’(2010)와 ‘버닝’(2020) 같은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가능한 사랑’은 지난 영화들과 달리 천진난만하리만치 투명하게 세상을 대한다. 마지막 장면의 환한 보름달처럼 말이다.
SP중공업 해고 노동자인 호석(설경구)은 해고 투쟁에서 실패한 뒤 아내 미옥(전도연), 아들 철(정섶)과 일상을 추스르면서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해고 노동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이들 부부 앞에 나타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예지는 호석의 증언을 끌어내기 위해 미옥과 친해지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도 이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삶과 마음, 욕망이 드러난다.
‘가능한 사랑’은 서사 구조에서부터 이전 작품과 차이를 보인다. 앞선 이창동의 작품은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한 사랑’은 실제 사건(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및 옥쇄파업 사태)을 모티프로 다룬 데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면서도 재현과 증언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문다.
영화는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는 예지와 그의 가족을 부유한 계층으로 설정한다. 이 대비는 관객에게 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예지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 안의 호석과 미옥, 파업 참여자들의 말은 실제 경험을 증언하는 것처럼 설정되었지만 관객은 그것이 배우들의 연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즉, ‘가능한 사랑’ 속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은 진실을 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것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마음이다. 영화는 인물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관객은 예지가 진행하는 인터뷰를 통해 미옥과 호석의 마음을 알게 된다. 파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집단 상담 장면에서는 그들이 끌어안고 살아온 상처와 감정을 마주한다. 오직 금수저 집안인 상우만이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작품 속 그가 드러내는 것은 육체를 통한 욕망뿐이다. 이렇듯 ‘가능한 사랑’은 인물의 행동과 감정에 숨은 의도를 두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동안 이창동의 인물들은 거대한 가치와 의문 앞에 짓눌려 왔다. 한국 현대사의 상흔, 장애, 신과 용서와 구원, 폭력의 가해와 이로 인한 감정들을 견뎌내느라 언제나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만 남은 이번 영화에서 비로소 그들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된다. 연기나 편집으로 통제할 수 없는 바다의 물결 속에서 미옥과 상우가 수영하는 장면을 보며 이창동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인물이 자유로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창동은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에서 사랑이 가능하다고 꿈꾸기 위해 자신의 인물들을 믿어보기로 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