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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오로지 백성의 입장에서 보라 / 장희창

공직자의 도리는 권력 누리기보다 봉사하는 자리임을 가슴에 새겨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15 21:02:3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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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난생처음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황당한 일을 당했다. 사회자가 참석자들을 소개했다. "아무개 판사님 오셨습니다. 아무개 검사님 오셨습니다. 이만하면 됐지요? 이하 생략합니다." 아, 이렇게 촌스러울 수가. 그때 '이하 생략' 당했던 씁쓸한 기분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후 다시는 동창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판사와 검사라는 권력은 제법 대접받는다. 그 특권의식과 냉철한 거리를 두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상화한 특권의식, 그것은 후진 사회의 명백한 증거다. 판검사에게 중요한 것은 명판결이고 큰 도적을 때려잡는 정의감이다.

딸 특채 사건으로 밀려난 외교통상부 장관의 처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후회스럽다"고 답변했다. 공인의 입장에서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해도 시원찮은 판에, 사적인 개인의 입장을 드러내며 이번 사건만 아니었으면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의 감정을 토로한 것이다. 얼마 전에 총리직에 지명되었던 어떤 인사는 의기양양해하며 "내가 여기까지 왔다!"라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공직에 임해 그 책임을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다고 말해야 할 자리에서, 그만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말았던 것이다.

왜 이렇게 권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가? 공직을 봉사의 관점이 아니라 출세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에 진출한 이들이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를 일삼은 것도 출세지상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다. 공직자로서의 도리는 제쳐놓고 권리만 누리려고 하는 권력 동물들의 행태는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리와는 참으로 멀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가 영국군에 포위당해 패배했을 때의 일이다. 점령자인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한 책임을 묻자 도시에서 가장 부유했던 자가 처형을 자청했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이 동참하였다. 이후 이 이야기는 서구 시민사회의 역사에 있어서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 다산 정약용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리를 보다 격조 있게 표현한다. 그는 '목민심서'에서 공직자의 도리를 이렇게 설파한다. '수령으로서 천박한 자는 관아를 자기 집으로 알아 오랫동안 누리려 한다. 그러나 현명한 수령은 관아를 여관으로 여겨 이른 아침에 떠나갈 듯이 늘 문서와 장부를 깨끗이 해두고, 항상 행장을 꾸려놓아 마치 가을 새매가 가지에 앉아 있다 훌쩍 날아갈 듯이 하고, 한 점의 애착도 마음에 품지 않는다'. 관직에 연연하지 않는 이런 공직자라면 애지중지하는 딸을 특채로 뽑아 자기 옆에 둘 리 없고, 총리직에 지명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할 리도 없을 것이다. 고시 합격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 '수령으로서 부모를 모신 자가 가끔 부모의 생신날에 풍악을 베푸는데, 자신은 이를 효도로 생각하지만 백성들은 이를 저주하기 마련이다'. 오로지 백성의 입장에서 보라는 말이다. 공사를 엄히 구분하라는 말을 참으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고전은 두고두고 읽어야 한다.

공직사회의 진입을 위한 각종 고시과목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지혜의 책, 고전은 필독서가 되어 마땅하다. 세계 최대의 고시촌임이 분명한 신림동 고시촌의 뜨거운 열기를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에너지로 바꾸려면 인문학의 기풍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경쟁의 불길 가운데서도 연대와 공동체를 논하는 인문 정신은 싱싱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육법전서만 달달 외우면 영혼 없는 권력기계가 될 가능성이 크고, 고전의 양식을 깊이 새기면 인간을 이해하고 아끼는 참된 공직자가 될 확률이 높다.

청문회에 나와 온갖 비리를 추궁당하면서도 관직에 연연하는 인사들은 다산의 심경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관직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홀가분함을 다산은 이렇게 말한다. '돌아가는 길에 토산품을 싣지 않고, 책수레만 가지고 돌아온다면, 어찌 맑은 바람이 길에 가득하지 않겠는가?'

동의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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