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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네 꿈은 내가 꾼다? /배유안

스스로의 선택 잘 해낼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것, 청소년 위한 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17 21:35:3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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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강의 요청을 해온 모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날짜만 정하고 전체 행사 스케줄이 잡히면 정확한 시간을 연락하기로 했다. 여름 방학을 시작한 무렵, 학생들이 단체로 편지를 보내왔다. 이번 행사 대상 책을 읽고 방학 중에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누구 역을 맡았는데 기분이 어떻다, 만나면 물어볼 게 많다 등등. 그런데 개학을 하고 날짜가 열흘 전으로 다가왔는데도 구체적인 진행 계획서와 기타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속으로 '진행이 좀 그러네' 하면서 차표 예약 때문에 먼저 연락을 했다. 나름 부드럽게 '○○○선생님, 준비에 애쓰시지요'로 시작해서 '그런데……'로 연결해 지극히 형식적으로 몇 가지 필수사항을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왔다. 자신은 선생님이 아니고 문학토론부 부장 2학년 누구라며 서툴러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구체적인 사항과 진행 절차를 보내온 것이다.

학생이 직접 섭외를? 처음이었다. 언짢았던 마음이 싹 녹아서 격려의 답을 보냈다. 당일 행사장에 가서 만난 지도교사는 한술 더 떴다. 책을 선정하고 강사를 초빙하고, 예산을 책정해 학교에 요청하는 기획 단계부터 준비며 연습, 홍보까지 모든 게 학생들 자율에 있고 지도교사는 간단한 보고를 받을 뿐이라고 했다. 연극이 시작되려는데 내게 팸플릿이 주어지지 않았고, 관객 입장은 소란했다. 인터뷰 질문지 혹시 받았느냐고 해서 고개를 흔들었더니 지도교사는 빙긋 웃으며 "많이 서투르죠?" 할 뿐, 진행자 학생을 불러 시정을 지시하거나 조언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스탭 학생이 옆으로 지나가자 "팸플릿 하나 줄래?" 하자 학생이 아차, 하며 갖다 주는 정도였다.

사회자의 실수가 제법 눈에 띄고, 무대 커튼이 제때에 닫히지도 않았다. 게다가 학생들이 각색한 대본은 연결이 툭툭 끊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은 아이들 구미에 맞아 연방 관객의 폭소를 자아냈다. 뒤이은 인터뷰 질문은 풍성했고 객석 학생들도 질문이 넘쳐났다. 멋진 행사였다.

"서투른 거 그냥 보고 있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했더니 지도교사가 싱긋 웃었다. "입 안 대는 게 제일 어렵죠. 속에서 엄청 올라오지만 참아요. 기다리면 서투른 대로 다 돌아가요. 완벽할 필요 없지 않나요? 자기들끼리 해내야 남는 게 크죠." 참으로 느긋하고 즐거운 대답이었다. 최소한의 지도가 가장 훌륭한 지도라던가? '내 삶은 내가 가꾼다'라는 주제에 걸맞은, 바로 그들의 행사였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에는 나환자를 위한 완벽한 공동체를 만든 원장이 나온다. 뭍과 격리된 섬에 나환자들을 위한 의료시설을 갖추고, 농장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개척해 서러움과 배척이 없는 천국을 만드는 대단한 프로젝트, 그러나 나환자들은 줄기차게 야밤을 틈타 탈출을 시도했다. 원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마워해야할 판에 탈출이라니! 단속을 강화하자 희생자가 나왔다. 그곳은 원장의 성취욕과 봉사한다는 자만심을 한껏 북돋운 원장의 천국이었지, 나환자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자율적으로 영위하는 천국이 아니었다. 원장의 눈에는 그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안부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 없는 안전한(?) 울타리 속의 천국은 정해진 계획과 시간에 따라야 하는 노동 현장일 뿐이었다.

작년 청소년의 자살률이 전년에 비해 47%나 늘었다는 보도에 이어 요즘 청소년들은 자아 존중감이 낮고 발달 단계에 맞는 자아 정체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래서 부모의 손이 많이 필요한 건가, 아니면 부모의 손이 많아서 그런 건가? 청소년한테 가장 절실한 행복 요건은 뭘까?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그들 자신이 답을 찾도록 기다려주어야 할 일이다. 스스로 기획하고 선택해서 이뤄 나가는 느린 과정을 답답해도 참고 보아주는 것, 에둘러 가고 자갈길로 가더라도 믿고 기다려주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네 꿈을 내가 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날, 그 서투른 연극의 압권이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내가 이렇게 너를 밀어주고 있는데 어떻게 너는…" 하며 아버지가 아이를 힘껏 떠민다. 아이가 꽈당 넘어지며 말한다. "밀면 엎어지잖아요" 관객은 웃었지만 웃음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연극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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