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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표절과 사칭 /정지창

베끼는 것쯤은 반성거리도 못되니 새만금·4대강 같은 거짓이 판치는 것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31 20:10:2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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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덕혜옹주'(권비영)가 일본 작가의 '덕혜희 - 이씨 조선 최후의 황녀'(혼마 야스코)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인 작가 혼마 씨가 최근 한 일간지에 편지를 보내 권 씨의 작품이 자신의 작품을 30여 군데나 표절했다고 유감을 표명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는데, 이에 대해 권 씨는 혼마 씨의 작품에 기술된 역사적 사실을 일부 참고했을 뿐 '덕혜옹주'는 자신의 상상력에 의한 완전한 창작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황석영 씨의 화제작 '강남몽'이 월간지 '신동아'에 실린 기사의 일부를 표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황 씨는 '신동아' 기사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소설에 사용한 점을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일단 논란은 잦아드는 것 같다.

작년에는 소설 '혀'를 둘러싼 표절 논란으로 문단이 시끄러웠다. 꽤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인 조경란 씨가 모 일간지의 신춘문예 응모작인 주이란 씨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주장에 대해 조 씨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결국은 소설가 김영현 씨가 표절을 묵인하는 언론과 출판사, 문단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면서 표절 시비는 문학적 양심과 진정성의 문제로까지 번졌다.

표절 시비는 그 후로도 그치지 않았다. 금년 초 국회위원인 전여옥 씨가 쓴 왕년의 베스트셀러 '일본은 없다'가 재일 언론인 유재순 씨의 원고를 표절했다는 기사를 보도한 인터넷 신문을 상대로 전 씨가 제기한 5억 원의 손해배상금 청구소송에 대해 1심과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법원은 전 씨의 주장이 근거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것은 결국 그녀의 저서가 표절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셈이어서 새삼스럽게 표절 논란이 되살아났고 인터넷에는 전 씨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비난 여론이 들끓어도 절필을 선언하거나 공직을 사퇴한 작가는 없는 것 같다.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경우도 황석영 씨가 아마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대부분은 그것이 무슨 표절이냐는 식이고 비난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침묵으로 버틴다. 그러니 표절곡으로 문제가 된 가수 이효리는 여전히 매스컴에 등장하고, 작곡가만 처벌을 받는 기괴한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양심보다는 돈과 권력을 섬기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지만 사실 그것을 조장하고 묵인해온 것은 정치인과 언론이다. '잃어버린 10년'이나 '공정사회', '바보야, 문제는 00야'라는 의제와 구호를 일본과 미국에서 그대로 표절해온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을 일본과 미국 등 외국 텔레비전에서 그대로 베껴온 우리 언론의 관행이 결국 표절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런데 표절보다 더 나쁜 것은 허위를 진실로 포장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이른바 사칭(詐稱)이다. 가령 언론이 사실 보도를 할 수 없었던 유신시대에 많은 시민들이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거짓말이 진실의 탈을 쓰고 떵떵거리며 활보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진실을 전파하면 '유언비어(流言蜚語) 유포죄'로 처벌을 받았고 이를 소재로 한 김지하 시인의 담시 '비어'(蜚語)는 당연히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1980년대에는 군사독재 정권이 광주의 진실을 유언비어로 몰아 정보를 원천봉쇄하려고 우격다짐을 했으나 얼마 못 가 진실은 만천하에 알려지고 그것이 결국 군부독재의 종말을 앞당겼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다음에도 만천하가 다 아는 거짓을 진실이라고 우기는 일은 없어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새만금 사업의 강행이었다. 쌀이 남아돌아 휴경 보상금을 지급하는 마당에 '농지 확보'라는 거짓 명분을 내걸고 공사를 밀어붙이더니 완공 후에는 골프장 수십 개를 만들어 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얼마 전 열차를 타고 부산을 오면서 삼랑진에서 물금까지 낙동강 곳곳에서 벌어지는 4대 강 사업 공사 현장에서 나는 파렴치한 거짓말이 버젓이 진실을 사칭하는 것을 목격했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은 생명 살리기'는 약과이고 '우리가 꿈꾸는 강의 이름은 행복입니다' 따위의 광고 문구는 우리가 아직도 표절과 사칭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뼈아프게 각인시켜주었다.

영남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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