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三國志)'에 '자두연두기'란 말이 나온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는 뜻으로 형제들이 아귀다툼을 벌일 때 주로 사용하는 성어이다.
천하의 영웅 조조는 장남인 조비보다는 문재가 뛰어난 셋째 아들 조식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제위까지 물려줄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야심이 큰 조비는 이런 조식에게 경계심을 단단히 품었다.
조조가 죽자 조비는 후한의 헌제를 폐하고 스스로 위의 문제가 되어 동생 조식을 죽이려고 "내 앞에서 7보를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엄벌하겠다"고 하자 조식은 일곱발짝을 내디디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煮豆燃豆기(자두연두기) 콩을 삶는 데 콩깍지를 때니/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콩은 솥 안에서 우는구나./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난 것인데/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서로 지지는 것이 어찌 이다지도 급한가?'
삼국지(三國志) 한 토막을 글머리에 올린 것은 요즘 경남과 부산이 신항 명칭을 놓고 벌이는 싸움을 보고 있자니 이 고사성어가 문득 떠올라서이다.
부산은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부산항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선 부산신항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남은 부산·진해항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진해항 쟁취를 선언, 기존 부산항의 명칭도 부산·진해신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부산의 세계적인 브랜드론이나 경남의 지역 연고권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형제간인 경남과 부산이 이를 놓고 2년 넘도록 합의는 고사하고 점점 더 험악한 사이로 변해가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된 데는 재선을 의식, 자의반 타의반 싸움의 선봉에 선 두 광역자치단체장의 책임이 크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지난 4월 정부대책 촉구 성명서를 통해 "부산신항 명칭은 이미 항만의 주요 고객인 외국 취항 선사들이 선호하는 등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보유하고 있다"며 "신항은 반드시 부산신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남도 김태호 지사는 같은 달 진해신항명칭사수도민결의대회에 참석, "부산시가 진해신항에 부산항 명칭을 붙이려는 것은 남의 땅에 문패를 붙이려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박하면서 "반드시 진해신항이 되도록 도민들이 일치단결하자"고 촉구했다.
단체장이 자신의 자치단체 이익을 위해 소신을 피력하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양 단체장은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나 되돌아봐야 한다. 시장·도지사가 대중 앞에서 혹은 성명서를 통해 주장을 하면 그것은 시정·도정 목표가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재선을 염두에 둔 신분이라면 그것은 사실상 차기선거의 공약이 되고 만다. 이렇게 될 경우 각 단체장은 이익이 상충되는 사안과 관련,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여지가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 양 단체장의 이같은 발언과 주장은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와 행정기관 등으로 확대 재생산돼 결국 경남 부산이 화해하기 힘든 갈등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신항 명칭과 관련한 경남 부산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첫 걸음은 양 단체장이 부산시민과 경남도민 앞에서 신항 명칭 관련, 단체이기주의적 주장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 시장과 김 지사는 지난 8일 부산에서 간담회를 갖고 '부산 경남은 형제이자 운명공동체임을 확인하고 상생 공동번영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차제에 시장·지사는 조만간 다시 한번 만나 신항 관련 갈등 해소를 위해 '무대응 입장'을 천명해주길 바란다. 이것은 점차 극단으로 치닫는 양 시·도의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해법 찾기 노력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신항 명칭을 놓고 부산 경남이 벌이는 싸움은 마치 부모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형제간의 아귀다툼과 다를 바 없다. 신항이 한탄한다. "동기간이면서 어찌 싸움이 이다지도 모진가."
/사회2부장 pin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