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지율 스님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귀의삼보하옵고'로 시작된 e메일은 한 중앙 일간지의 최근 천성산 관련 기사에 의문을 제기하며 보낸 공개서한이었다. 문제의 기사는 천성산 공사 현장 르포였는데 '지하수 유출 거의 제로', '도롱뇽사건 경제적 손실 총 2조5161억 원 추산' 등의 부제가 스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 대법원 기각 결정 이후 조용한 산촌에서 지내오던 스님이 이 기사로 인해 다시 천성산의 현장에 나서게 됐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요즘 사실 지율 스님 관련 기사 쓰기는 참 조심스럽다. 대법원 판결로 천성산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흐름에 지율 스님의 주장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율 스님은 대법원 판결문이 이 시대를 역설적으로 증언하고 있다며 자연권 소송에서 법정에 선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이 사회이며, 판결의 결과는 자연의 위기이자 이 사회의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공개서한은 다음 네 가지에 대해 진실을 밝혀줄 것을 언론에 호소하고 있다.
첫째, '지하수 유출 거의 제로'에 대해 제대로 확인했는가 하는 것이다. '지하수 유출 여부'는 천성산 문제의 화두였다. 대법원 결정 근거의 하나가 고산습지와 계곡이 있는 천성산에 장대터널이 뚫려도 '단 한 방울의 물도 흐르지 않을 것'이라고 법정 증언을 했던 전문가들의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지율 스님은 최근 지역언론을 통해 수차례 지하수 유출 문제가 기사화됐으며 천성산 주변 마을 주민들이 이미 수천만 원의 보상비를 받은 사실 등을 상기시키고, 자신이 최근 사흘간 직접 터널 배수로를 답사한 결과 시간당 수십에서 수백t으로 추정되는 지하수가 유출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둘째, '공사 중단으로 인한 연간 2조5000억 원 손실'의 출처를 밝히라는 것이다. '2조5000억 원 손실' 운운의 내용은 전국 대부분의 언론에 400회 이상 기사화됐으나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지율 스님이 제기해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다. 스님은 고속철도공단과 대한상공회의소에 3차례에 걸쳐 '2조5000억 원 손실' 보고서의 출처를 밝힐 것을 요구했으나 대한상의는 공단 측으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았지만 연구자는 밝힐 수 없다고 했고, 공단 측은 대한상의에 자료를 준 일이 없다는 공문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지율 스님은 2005년 1월에 'SK건설이 3개월 공사 전면 중지로 입은 손실이 45억 원, 전체 매출 손실이 150억 원이었다'는 기사를 써놓고도 2년 뒤에 다시 '2조5000억 손실' 운운하는 것은 악의에 찬 보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셋째, '2002년 착공 후 3차례나 중단'이나 '허송세월한 1년'이란 표현도 명백한 오보라는 것이다. 천성산 구간의 공사 시작은 2002년 6월이 아니라 2003년 11월 27일부터이며, 고속철도공단의 공문과 감사원 감사 결과 확인된 천성산 구간의 공사 중지기간은 '2차례에 걸쳐 6개월'이었다는 것이다.
넷째, '노 대통령 재검토 지시'가 문제인 것처럼 몰아친 데 대한 반론이다. 지율 스님은 2002년 대선 당시엔 노 후보뿐만 아니라 이회창 권영길 후보 모두 천성산 노선의 재검토 혹은 백지화를 공약했고 이러한 사실이 기사화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 신문이 노 대통령의 지시를 '공약=실패한 정책'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생명과 환경문제를 정치문제로 변질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4일 기자는 지율 스님과 함께 천성산 터널 지하수 유출 현장을 찾았다. 유량 측정에 선뜻 동행하겠다는 전문가들이 없어 아쉬웠다. 현장 관계자는 지나가는 말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 끝난 이야기지만 터널을 뚫는데 어찌 물이 안 나올 수 있겠습니까… ." 지율 스님은 "기자님, 이런 것들을 제대로 확인해 보도해야 하는 것이 언론 아닌가요"하며 되물었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내내 머리가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