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회사원들이 꿈꾸는 정상의 자리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것인지, 부진한 사업을 정리할 것인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기업과 제휴할 것인지, 모든 것이 최고경영자에게 달려 있다. 일정기간 자율성을 갖고 회사를 경영하지만 최고경영자의 운명은 경영성과가 결정한다. 뛰어난 실적은 승진을 보장한다. 스톡옵션이 수십억~수백억 원의 성과급을 안겨줘 단숨에 벼락부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적이 나쁘면 가차없이 쫓겨난다.
대통령은 공공부문의 최고경영자라고 할 만하다. 입법 행정 사법 국방 외교 등 국가의 모든 일에 대통령의 뜻과 생각, 철학이 반영된다. 사기업의 최고경영자와 대통령은 활동무대의 규모와 성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의사결정의 최종 선택권을 갖고, 구성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물러날 때의 모습은 크게 다르다. 최고경영자는 일을 잘했을 때와 못했을 때의 혜택이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특별한 하자만 없다면 퇴임 후 부티가 나는 노후가 보장된 게 한국 대통령이다. 화수분과 같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덕분이다.
퇴임한 대통령에게는 재직 당시 연봉의 100분의 95에 상당하는 연금이 지급된다. 현재는 매월 844만 원 정도라고 한다. 차량 사무실 운영비도 지원받는데, 매월 542만 원 정도 된다. 연금과 운영비를 합쳐 매월 1386만 원이 퇴임 대통령에게 지원된다. 별정직 고위공무원 신분인 비서관 3명이 수족 노릇을 한다. 퇴임 후 7년 동안 청와대 경호실이 경호도 해준다. 공무로 여행할 때는 여비가 지급된다. 철도 무임 승차, 공항 귀빈실 이용, 외교관 여권 사용과 같은 특별 대우도 받는다.
사후에도 예우는 계속된다. 국립묘지에서 가장 넓은 264㎡(80평) 공간이 전직 대통령에게 제공된다. 사후에도 배우자에게 연금(70%)이 지급된다. 자잘한 것들을 빼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혜택은 이렇게 풍성하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참 요상한 법이다. '아낌없이 예우를 주는' 규정은 많고 예우를 제한하는 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연금 혜택을 주지 않는 게 눈에 띄는 정도.
그런데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지만 딱히 잘한 것도 없거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면? 전과가 없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국민 대다수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생각한다면?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면? 취업난이 심화되고 실업자가 늘어났다면? 전문성 없는 낙하산·코드 인사로 제 식구만 챙겼다면? 끝없는 정쟁, 측근비리로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줬다면? 이런 경우에도 예우를 해야 하는 게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다. 국민 대다수의 정서와 무관하게.
퇴임 대통령에 대해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스포츠 경기가 끝난 후 선수 개인별 평점을 매기듯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임기가 끝날 때 곧장 하는 게 좋다. 방법은 간단하다. 새 대통령을 뽑을 때 퇴임을 앞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설문항목을 하나 만들면 된다. '○○○ 대통령의 임기 중 대통령으로서의 국정수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국민들의 표를 의식해 선심성 정책을 펴지 않을까.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정책도 있는데. 한 번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나….
이렇게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국민들은 선심성과 진정성을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니까. 한 번으로 부족하면 퇴임 때 하고, 5년 뒤 또 평가하면 된다.
해 보지도 않고 부작용, 실효성, 현실적인 방법상의 어려움 등을 걱정하지 말자. 청와대에 들어갈 사람을 뽑을 때는 지도자로서의 됨됨이를 국민투표로 평가하면서, 청와대에서 나올 때는 국민의 의견을 묻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퇴임 대통령에 대해 국민이 평가하고, 그 결과를 예우에 반영하자.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은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하자. 연말 대선을 앞둔 지금, 대통령이 되기를 꿈꾸는 정치인들이 자진해서 약속하면 더 모양새가 좋겠다. "대통령이 되면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 "퇴임 시 국민 평가가 나쁘면 일체의 예우를 받지 않겠다" "전직 대통령을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