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만추의 나뭇잎들을 쓸어가던 지난 주말, 눈길을 끄는 이메일 하나가 날아들었다. 천성산 지킴이로 잘 알려진 지율 스님의 메일이었다. 간추려 소개해본다.
'귀의 삼보하옵고.
어쩌다 계절을 보내고 문득 찬바람입니다. 며칠 전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공간초록'(부산 연제구 거제동)의 일 등을 챙겨보기 위해서죠. 글을 드리는 것은 '황새알 우물 건' 때문입니다. '공간'에 가게 되면 습관처럼 우물 주변을 살피게 되는데, 이번에 보니 우물 밑바닥이 검은 온바위였고 물은 바위틈에서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특이한 지형처럼 보입니다. …그날 영상운동을 하는 '평상필름' 친구들을 만났는데, 우물을 보고 많은 관심을 가지더군요. 지난달엔 전각과 토우하시는 분들이 보고는 '우물공원'이 조성되면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나서고 싶지 않아 주민들에게 그 얘기만 전하고, 내심 작은 야생화 공원이 조성되길 바라면서 꽃씨를 받아두고 있습니다. …'공간'도 그렇지만 그동안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흘러다니던 '시간들'을 이곳에 모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물공원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더 애써 주세요. 산막에서 지율합장'
인용이 다소 길었지만, 스님의 요청은 도심에 남은 좋은 우물 하나를 살려보자는 것이었다. 문제의 우물은 국제신문과 부산교대 중간쯤에 있는 황새알 우물이다.(본지 5월31일자 '데스크시각'에 소개) 역사가 100년쯤 된다는 이 우물은 지역민들의 생명수이자 토속신앙의 샘이었다. 그곳에 '용왕'이 산다고 믿는 주민도 있었다. 그런데 이 우물이 지난 봄 수질부적합 판정을 받은 데다, 얼마전 그 옆으로 길이 나는 바람에 폐쇄 위기에 놓여 있다.
지율 스님은 경북 영덕의 산막에서도 이 도심 우물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몇달 전, 우물이 좋으니 작은 쌈지공원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더없이 뜻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던 스님이었다. 그런데 그게 감감무소식이었으니 궁금할 만도 했겠다. 거기다 문화운동하는 분들이 우물의 의미를 얘기하며 흔쾌히 지원하겠다고 나서니 다시 우물이 생각난 게다.
관할 연제구청에 진행 과정을 물어봤더니, 씁쓸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물 주변의 길쭉한 공지는 3개 필지 130㎡ 남짓인데, 소유가 철도공사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로 나뉘어 있고, 우물이 포함된 33㎡ 상당(건교부 소유)을 제외하곤 매각절차가 진행중이라고 했다. "남은 거라곤 달랑 10평 정도인데 그걸로 공원이 될지…"라며 구청 담당자는 난감해했다. 우물 하나 지키는 일이 이리 어렵나 싶어 잠시 헛웃음이 나왔다. 수백, 수천억을 들여 토목공사는 잘도 벌이면서도 생명을 얘기하는 우물엔 관심이 없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우물은 단순히 물을 퍼 올리는 물 저장고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마을의 우물은 공동체 살림의 근간이었다. 우물은 오염이 되어서도, 말라서도, 누가 함부로 이용해서도 안 되었다. 소문과 풍문이 모이고, 인간의 길과 자연의 길이 만나는 교차점에 우물이 있었다. 이러한 전통적 우물의 의미에 더해, 황폐한 도심에 한줄기 문화 생태적 청량수를 만들고자 한 것이 지율스님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 꿈이 깨지려고 한다.
황새알 우물을 끝내 덮어버리고 말 것인가. 답을 찾기 어렵다면 권혁웅의 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참고해보자. '그해 여름 정말 돼지가 우물에 빠졌다 멱을 따기 위해 우리에서 끌어낸 중돈이었다 어설프게 쳐낸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돼지는 우물에 뛰어들었다 …가을이 되어서도 우물 속에는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그리고 돼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는 슬픈 얼굴로 혀를 찼다 틀렸어…'
목을 다친 돼지는 우물에 뛰어들어 '자진하는 슬픔'을 달랜다. 우물을 생명 자리로 여긴 탓일까. 시인은 그걸 의도한 것 같다. 우물은 결국 덮이고 그 자리에 노란꽃들이 꿀꿀거리며 지천으로 피어났다고 시인은 보고한다. 뭇 생명을, 우물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우화(寓話)다. 꽉 눌린 편육처럼 살아가는 도시공간에서 의식의 숨구멍 같은 우물을 지키라는 준열한 경고다.
남은 땅 얼마라도 지켜 황새알 우물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으면 한다. 우물 속엔 물을 관장하는 '용'이 살고, 도시의 내일이 숨쉰다. 우리들 마음속의 '용'은 죽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