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두줄짜리 시 '섬'이다. 여기서 섬은 흔히 군중속의 고독,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해석된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것은 고독과 소외감을 메우는 한가닥 희망이자 여운의 메시지이다.

부산에는 마치 '섬' 같은 국회의원이 한명 있다. 파란색 한나라당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섬. 조경태(대통합민주신당·사하을) 의원이다. 4년전 총선에서 조 의원은 한나라당의 철벽 아성을 뚫고 단기필마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의 존재는 어떤 면에서 지역정치의 숨구멍이자 여운이기도 했다.

16대0, 21대0, 17대0, 18대1. 1990년 3당 합당 이후 한나라당(신한국당 포함)이 거둔 총선 성적표는 통렬하다못해 쓴웃음을 짓게 한다. 네 차례의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전체 72석 가운데 71석을 차지했다. 승률로 치면 98.6%. 딱 1석이 비었는데 그게 조경태 의원이 거둔 신승이다(당시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한 조 의원은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힙입은데다 박종웅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분전하면서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2006년 지방선거 역시 한나라당 독무대였다. 부산시장을 위시해 부산시의회 42석(지역구) 전부와 기초단체장 16명 중 15명, 기초의원은 158명 중 137명을 한나라당이 휩쓸어갔다.

'싹쓸이'같은 씁쓸한 말은 쓰고 싶지 않다. 대신, 일당독식의 그늘을 보려 한다. 이 그늘속에 부산의 고민과 과제가 숨어있을 것 같아서다.

부산은 1990년 이전까지 야도(野都)의 이미지가 강했다. 부산사람들의 개방적 진취적 성향은 야성적이고 저항적 기질을 낳았다. 1960년 4·19혁명과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7년 6월 항쟁의 중심에 부산이 있었음은 익히 아는 대로다. 야도란 말은 어떤 의미에서 진보나 저항과 맥이 통했다. 대통령 선거같은 정국의 주요 고비 때에도 부산은 목소리를 냈다. 변방에 있는 부산이 중심을 흔든 적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산은 보수의 안방처럼 돼 버렸다. 어찌보면 안방도 아니다. 오랫동안 지역 정치권을 취재해온 후배 기자의 평을 빌리면 '부산 정치권은 격동의 순간이 지나고 역동성이 사라진 뒷방 신세'(정순백 저 '변방의 정치, 지평의 확대 꿈꾸다') 같다. 뭔가 헐렁하고 실속마저 없어 보인다는 거다.

그럼에도, 주 투표층의 한나라 편향은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공천=당선' 등식은 올해도 여지없이 통할 것처럼 보인다. 한나라당 문전엔 예비후보가 철철 넘친다.

이쯤에서 '한나라 독식'이 무엇을 남겼는지 물어보자. 정치인들도, 유권자들도 이 물음엔 답이 궁해진다. 일당독식의 그늘을 정량화하긴 어렵지만, 여러 경제지표는 부산의 침체와 추락을 뼈아프게 일러준다. 인구가 줄고 기업이 떠나며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한다. 50년 후, 100년 후 뭘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도 없다. 부산 위기론이 난무하지만 이를 타개할 큰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외부 환경에 침체의 원인 일부를 돌린다고 해도, 지역 정치권의 주류인 한나라당의 책임이 여기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일당독식 체제에 균열을 가한 조경태 의원은 지난 4년을 이렇게 반추했다. "당정협의회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여당 의원이 끼어 있으니 어느 정도 경쟁과 견제가 되는 거죠. 공무원들도 그런 걸 느끼나 봐요. 긴장감이 있다고 하거든요. 국비 따는 데도 여야가 협공하면 당연히 도움이 되죠." 그의 말은 정치인의 수사라쳐도, 일당독식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건 자명하다. 독식·독점 구조속에서 다양성이 설자리는 없다. 이는 곧 경쟁력 상실을 뜻한다. 경쟁 없는 정치 구도 속에선 리더십이 자라기도 어렵다.

부산은 이런 난맥들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은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유권자들 사이에 '섬'이 있는 것 같다. 망국적 지역주의, 좋은게 좋다는 식의 지역구도를 벗고 큰 정치를 놓고 경쟁하고 견제하는 섬. 그 '섬'에 가고 싶다.

정치는 거센 담금질을 당할 때만 그나마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말을 곱씹어본다. 총선은 유권자들이 비효율의 정치를 담금질할 기회다.

기획탐사부장